송수권 '아내의 맨발'

2004.08.0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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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권 '아내의 맨발'



*** 2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송수권 (1940 - ) 「아내의 맨발ㆍ1 - 蓮葉에게」부분

蓮葉은 송수권 시인 아내의 이름이다. 그녀는 똥장군을 져서 수박을 키우고 30리길을 걸어 수박을 팔았고, 보험회사를 18년간 다니면서 남편을 우리나라 정상의 서정시인으로, 교수로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백혈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 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송 시인은 그런 아내의 발을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음에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자신이 견딜 수 없었으리라.
최근에 송 시인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내의 "피를 먹고 자란 詩"를 바친 것이다. 시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시인의 무력한 몸짓이다. 쓰지 않는 시. 그러나 세상의 어떤 시가 이보다 더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이었던가.
나는 그의 아내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입술로만 사랑하고 현란한 수사로 꾸며대는 이 위선의 시대에 피를 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노래하는 시인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004-01-05 23: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