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성불사의 밤」

2004.08.0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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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이은상(1903 - 1982) 연시조 「성불사의 밤」중 첫 수

점 하나 찍혀 있으면 대조가 되어 백지가 더욱 하얗게 보이는 것처럼 조그만 풍경소리가 성불사의 밤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어준다. 스님들의 정신세계를 더욱 깨끗하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화두나 백지를 돋보이게 하는 점은 하나면 충분하다. 주승에 이어 손마저 잠이 들고 풍경소리 하나만 남는다. 독자는 마침내 홀로 남은 손이 되었다가, 혼자 우는 풍경 소리 그 자체가 된다. 너와 내가 없고 복잡한 세상일도 버리고 자연 속에 침잠해보는 체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짧은 3장의 글 안에 우주를 담은 절창이다. 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시, 시조의 힘이다.
작년은 이은상 님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1920년대에 이미 최남선, 이병기 시인 등과 함께 시조부흥운동을 펼쳐 전통 시조의 맥을 잇고 현대시조의 초석을 깔았다.
"나는 시를 즐기지 않는다, 시조를 모른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자. 가고파, 고향 생각, 그 집 앞, 동무생각, 옛 동산에 올라, 봄처녀, 그리워,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랏다, 사랑, 장안사 등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그 수많은 노래들이 이은상 시인의 시(대부분은 시조)에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