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수 「새」

2004.08.20 02:12

솔로 조회 수:3024 추천:10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1918 - 1994) 「새」전문

   1975년부터 약 20년간 미국의 뉴저지에 거주했었기에 미주동포에게는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는 고 박남수 원로시인의 대표작이다.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활자로 인쇄된 시보다도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통기타 가수의 목소리로 먼저 기억해내기도 할 것이다.
   이 시는 슬픈 결말을 갖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새는 총에 맞고, 포수는 자기가 노렸던 순수 대신에 매양 한 마리 상한 새만 보게 될 뿐이다.    
   행복이나 순수, 사랑과 같은 고귀한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을 겨냥하고 있다면 한 덩이 납과 같은 차가운 물질을 사용해서는 어림도 없다. 노 시인이 피에 젖은 새를 손에 들고 이래도 모르겠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