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시인의 '멀리 있기'

2004.10.08 03:24

문인귀 조회 수:1084 추천:15

<시와 함께하는 산책1>


멀리 있기


          유안진 / 시인. 수필가. 서울대교수


멀어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갈 뿐입니다

멀어서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짝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여요
죽어서 나
빛나는 별이게 하여요.



사람과 사람, 너와 나의 관계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보다는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이다. 그것은 상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아름다운 유지는 ‘너’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내’가 확인되는 길이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 두고 있는 것 보다는 가까이 두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있기를 원해 한 몸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지면 과연 한 몸이 될 수 있을까? 결국은 가깝게 하다가 상대의 존재를 흡수하고 마는 이기적 소유욕으로 인해 관계는 무너지고 아픔만 창일(漲溢)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좋아하는 그 사람, 더 가까이 못하는 사연, 그것은 아쉬움이며 아픔이며 그것은 고통도 되며 그것은 가슴을 찢는 슬픔도 될 것이다. 그러나 멀리 있음으로 인해 유지되는 관계는 그에게 향기로 다가가는 아름다운 꽃이 되고 그에게 빛으로 다가가는 별이 되어 그 가치는 죽어서도 유지되는 아름다움일 것이 분명하다.
                                                  - 문인귀/시인


참고: 이 글은 '일요신문'에 게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