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균시인의 제2안경의 추억

2004.10.26 01:18

문인귀 조회 수:1257 추천:45

<散策詩篇>

제2안경의 추억

                             유장균

깨진 안경 하나 버려져 있다
안경이 눈과 처음 만났을 때
안경은 미처 눈의 속셈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좀 살 만큼 살아 보면 다 짐작할 만한 세상
바로 보나 뒤집어 보나 뻔한 세상의 상식을
눈은 뛰어넘으려 했을 것이다
눈에 핏발이 서고 속셈은 드러나
더 좋은 행복, 더 편한 길을 찾아내라고
욕망의 욕망의 욕망의 끝, 아무리 뒤져도
이 세상에는 애당초 없는 환상을 찾아내라고
다그치는 눈의 지나친 허영에
걸렸을 것이다. 견디다 못해
보아야 할 것과 안 보아야 할 것 사이
그 허망한 거리감을 오락가락 하다가
안경은 자폭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비치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보기위해서 자신의 시력에 맞는 안경을 쓴다. 그러나 몇 년을 지나고 나면 시력은 또 떨어지고 그 안경 대신 새 안경을 쓰게 된다. 물론 시력에 따라 안경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안경과 시력의 관계는 단순한 시력과 안경의 관계에 있지 않다. 버려져있는 안경을, 그것도 깨어져 있는 안경을 보며 이 시인은 끝없는 욕망에 희생되는 인간의 가치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인 눈의 속셈,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그 욕망은 안경을 통해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 없는 환상의 세계에까지 넘보는 것이 되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늘 불안정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써 지켜야하는 마땅한 가치관은 상식과 질서를 뛰어넘는 이러한 스스로의 욕심 앞에 무력해지고 말아 보아야할 것과 보아서는 안 될 허망한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자멸하게 된다.
시인 유장균은 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이곳으로 이민 와서 조그만 팻샾을 하며 시작(詩作)생활을 하다가 6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문인귀/시인


*일요신문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