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시인의 '민들레 9'

2004.08.02 23:18

문인귀 조회 수:303 추천:6




민들레9

김동찬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일 다닐 때
아파트 계단에서 늦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집도 사고 좀 안정되었을 때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오면
늘 문열어주시던
아버지

오늘도
현관 문 앞에
가만히
내려와 계시네


민들레 꽃, 그 노오란 금관(金冠) 같은 것이 진초록 이파리 가운데 피어났다가 씨가 맺히면 입김에도 유유히 부유(浮遊)하며 새 자리를 찾는 의연함이란, 예쁘고 멋있는 꽃이다. 그런데 제대로 '꽃 같은 취급'을 받기는커녕 눈에 뜨이면 뽑혀버리고 오가는 발길에 무참히 밟혀 문들어 지기 일수인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 흔한 꽃이기 때문일까.
김동찬 시인의 씨리즈 시 "민들레"는 우리 이민자의 질겨야만 하는 삶의 여정을, 그리고 그보다 더 질기디 질긴 인간애증(人間愛憎)의 연(緣)을 민들레의 속성에서 찾아 노래하고 있다. 특히 <민들레 9>에서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밤늦게 귀가하는 아들의 안위에 온 신경을 집 앞에 모두고 계셨던 부모님을 회상시킨다. 집 앞을 지나다니며 힐긋, 한 두 번 쳐다보기나 했을까 싶은 하찮은 꽃, 민들레의 겉모양만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님의 이러한 질긴 애정을 대하지나 않았을까... 부끄러워진다. 아파트 입구에서도, 집 현관 입구에서도 언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민들레는 결코 흔한 꽃이 아니라 여겨지는 밤이다.


2003-12-09 17: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