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의 '우리나라의 등대'

2004.10.15 15:46

문인귀 조회 수:1500 추천:24

<시와 함께하는 산책 2>

우리나라의 등대

                     마종기/시인오하이오의대교수현재 프로리다거주


누가 우리나라의 등대를 만들까.
세상은 오늘도 가늠하기 어렵고
죽기 아니면 살기, 살기 아니면 다시 시작하기.
잔잔히 속삭이던 바다는 처음부터 없었지만
누가 우리나라의 큰 등대를 만들어
좁고 험한 바닷길을 밝게 보여줄까.
진흙을 모아 벽돌을 굽는 몇 사람이 보인다.
그 벽돌을 나르는 몇 사람과 몇 사람.
설계를 마친 몇 사람과 벽돌 쌓는 몇 사람 사이
파도가 쳐 와도 일손 쉬지 않는 몇 사람이 보인다.
높은 층계를 끝까지 올라가서 그 하늘 가까이
달덩이만한 조명등을 사면에 달면
보인다, 환하게 서 있는 우리나라 강산.
그때면 벽돌 반쪽이 되어 이끼를 덮어쓴들
우리가 무엇을 억울해하랴.
흥겨운 장구 소리, 꽹과리 소리 들리는 바다,
온 나라의 땀과 눈물이 춤춘다.
누가 우리나라의 환한 등대를 만들까.
그때면 굴껍데기가 되어 물결에 흔들린들
우리가 그 어느 바다를 두려워하랴.


등대의 사명은 어둠을 밝히는 것에 있다.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바다에 묵묵히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 세상의 어둡고 험한 곳에도 그 빛을 발하며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있다. 그렇듯 우리에게도 나라를 지키는 등대가 있다. 그런데 그 등대는 과연 누가 만들고 있는 것일까, 똑똑한 몇몇 사람들이나 정치하는 몇 사람들?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진흙을 개서 벽돌을 굽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것을 나르고 또 그것을 하늘 높이 쌓아 올리며 달덩이만한 조명등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일에도 일손을 멈추지 않고 그렇게 묵묵히 일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등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들은 우리나라를 밝히는 바로 그 등대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등대를 만들고 등대가 되는 사람들은 비록 반쪽 벽돌로 남아 오랜 세월 이끼를 덮어 쓴 채 그렇게 살아간다 해도 아무런 불만을 가지거나 억울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나라, 환하게 서 있는 우리나라, 그리고 굿 한 판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흥겨움을 비추는 그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노력하는 땀과 견디는 눈물 있으니 아무리 힘든 역경이 닥친다 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 문인귀/시인


*2004년 10월 15일자 '일요신문'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