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승차권

2005.01.26 16:07

김병규 조회 수:1224 추천:36

내 인생의 승차권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심화반(주) 김병규

세상에는 세월이란 열차가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몽땅 싣고 가는 거대한 특별열차다. 그 열차가 달리는 길에는 쉬어갈 역이나 간이역도 없다. 수많은 세월을 싣고 달려가는데도 고장 한 번 없는 특별열차다. 승객들이 소지한 승차권에는 저마다 하차지가 기록되어있을 테지만 승객은 자기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 전혀 모른다. 다만, 여객전무의 지시만을 따를 뿐이다.

우리 인생의 승차권에는 70년이 고작이고 강건해야 80년이란다. 80년 세월은 길고 멀게 보이지만, 주저 없이 달려가는 급행열차로서는 순간이다. 내 인생의 승차권에도 분명히 하차지가 기록되어있을 터인데도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69년을 살아왔으니 노루꼬리만큼 남아있을 세월을 짐작할 따름이다.

내가 세월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 헛되이 보낸 시간이 너무나 많았다. 신호등 기다리는데 2년, TV시청 2년, 친목계 모임에 2년, 여행에 2년, 공상에 젖어 2년, 한눈팔기 2년, 방황하기 2년, 철모르던 어린 시절 6년, 그리고 잠자는데 무려 20년이나 보내버렸다. 40년을 의미 없이 넘기고 고작 29년만 뜻 있게 살아온 셈이랄까?
29년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동안 나에게는 급하고도 중대한 일, 급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일이 있었다. 급하였으나 중대하지 않은 일, 급하지도 않고 중대하지도 않은 일도 있었다. 급하고도 중대한 일과 급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일을 챙겨서 정진해야 했으나, 나는 급하지도 중대하지도 않은 일의 틈바구니에서 방황하고 허송한 세월이 너무나 많았다. 그 후회만 남긴 흔적들이 상처로 돌아와, 내 정수리를 찌르는 뼈아픈 고통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기성찰(自己省察)의 거울이 되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든 것 같다.

인간의 삶이란 전쟁이다. 추위와 싸우고 더위와도 싸운다. 불의와도 싸우고 질병과도 싸운다. 패거리 정파간에도 싸우고 영역간에도 싸운다. 영적인 갈등과도 싸우고 가난과도 싸운다. 실패, 시련, 좌절, 노쇠와도 싸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이 틈바구니에서 아직 남아있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승차권이 10년만 더 남아있다면, 중대한 일만 찾아 정진해야 하고, 옳은 길만 찾아서 매진하련다. 내 마음 속에 싫거나 미운 사람이 없도록 마음도 닦아 따뜻한 인정을 지녀야 하고, 잡념이나 욕심은 몽땅 털어 버리며, 자기본위의 아집도 버려야겠다. 내 잘못을 살펴 뉘우치고 참회하면서 허물을 씻어내는데 힘써야겠고,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깨닫는 공부도 더 해야 한다. 능력이 허용되는 대로 물질과 정성을 모아 이웃에 베푸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겠다. 고난을 참고 극복하며 노년의 저력을 길러 남의 일도 내일처럼 도와야겠고,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믿고 정진하여 티 없이 맑고 밝은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련다. 양심을 속이는 일은 절대로 말 것이며, 남아있는 정열을 모두 모아 내 이웃을 사랑하겠다.
내 인생의 승차권이 얼마나 남았을까? 할 일이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은데 을유년을 출발한 세월열차는 쾌속으로 시원하게 잘도 달린다.
            (2005.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