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근 깨 - 김효자

2005.04.11 01:13

미문이 조회 수:1469 추천:50

    '주 근 깨'                               김효자

  나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다. 여학교 시절에는 짓궂은 남학생들의 놀림도 꽤나 받았다. 어떤 심술쟁이가 대문 앞까지 졸졸 따라오면서 한사코 놀려댄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학교 예술제에선가 연극 주인공 노릇을 했을 때에는 분장을 한 관계로 주근깨가 보이지 않은 탓이었던지 연애편지 같은 것도 꽤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사춘기 시절에 주근깨 때문에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 어쩌다 미장원엘 가면 "주근깨만 없으면 얼마나 훤하겠어요. 모 전문병원에 가면 깨끗이 밀어준다는데......." 하면서 친절한 미용사들은 성형외과를 권하기도 하고 특효약에다 별별 비방을 귀띔해 주며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마워요"하고 대답했을 뿐, 그들이 권하는 녹두물이나 뜸물 세수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상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대하면서도 남이 상기시켜 주지 않는 한 내 얼굴에 쭉 깔린 주근깨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용사 아가씨의 친절한 코치를 받고 있는 동안 거울 위에 확 돋아났던 나의 주근깨는 미장원 문만 나서면 또 어느 샌지 모두 잦아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 자연 성형의원을 권하는 이조차 없어져 그것을 의식할 기회도 점점 더 줄어가고 있다.
  다정한 친구들은 주근깨 없는 나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나의 얼굴이 갖는 흠까지도 나의 일부로서 사랑해 주고 있다. 본인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 흠을 남들인들 뭣이 그다지 안타까워 박박 기를 쓰며 미워할 까닭이 있겠는가.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나의 얼굴, 나의 젊음, 나의 여성을 의식적으로 생활의 무기로 삼으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짧고 한계가 들여다보이는 밑천이요, 가장 딱이지 않은 원형적인 자산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딸은 곱게 길러 시집이나 잘 보내고 싶다는 것이 아직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꿈이다. 하기야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공통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곱다는 것이 어떻게 평생 살아가는 밑천이 될 수 있을까.
  앞 세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생각은 그렇다 해도 내일을 살아가야 할 젊은 여성들이 제 용모, 제 젊음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의존적 생활 무기를 삼으려 하는 속셈이 들여다보일 때, 늘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밑천이 달랑달랑한 장사꾼 같아 불안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필집 '두고 떠나는 연습'에서)  

*미문이 주: 2005년 여름호부터 수필 계간평을 쓰게된 평자 김효자 수필가의 수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