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I20150511_0010926693_web.jpg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어미가 죽고 나라가 없어졌다. 수향은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두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듯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세 칸 밖에 안되는 집이었지만, 한밤중 월례와 둘이서 지키노라면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수향은 누군가 담장 밑을 지나는 기척만 들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43쪽)

갑신정변 때 목숨을 잃은 하급 군인의 유복자인 이갑진은 제물포항의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다.

그는 사탕수수밭의 고된 노동으로 연명하다가,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에야 고국의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하와이 한인 교회를 통해 신붓감을 구한다. 이갑진은 김수향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로 겉돈다. 머나먼 하와이 땅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끝내 별거하게 된다.

이갑진은 십수 년만의 고국 방문길에 우연히 동행하게 된 국민회 간부의 권유로 3·1 만세 운동에 가담한다. 일본 헌병의 칼날에 갑진이 종로의 만세 현장에서 숨을 거둘 때 수향은 하와이에서 아들을 낳고, 유복자인 갑진의 아들 삼일은 또다시 유복자가 된다.

"수향은 편지 위로 또다시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전장을 옮겨 다니느라 어느 땐 소재가 불분명해 수향을 불안하게 했던 아들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앉아 긴 편지를 쓰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철모를 벗어 놓고 군복 차림으로 펜을 휘갈기는 삼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진을 빼다 받은 기름한 얼굴, 수향을 닮은 흰 피부는 전장을 헤매느라 어지간히 그을어 있으리라."(308쪽)

2013년 소설집 '빛나는 눈물'로 통영문학상을 수상한 박경숙이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출간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났지만, 그 조국과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작가는 100여 년 전 하와이로 떠났던 이민 1세대의 곤고한 삶과,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희망과 좌절, 파란의 역사를 그렸다. 거센 변화의 물결과 세계 열방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국을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민 1세대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이 무언인가를 느끼게 한다.

박경숙은 작가의 말에서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후 나의 삶은 평생을 떠도는 듯 하다"며 "고국을 떠나던 날, 연로한 어머니는 공항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서울 유학을 한답시고 너무 어릴 때 부모 품을 떠난 것도 서운한데, 이제는 미국까지 가느냐며 가슴 아파 하셨다. 그 때는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토록 많은 세월이 흐르도록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잉태에서 출간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이 소설을 이제 세상에 내보낸다"며 "미진하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우선은 누군가 읽고 기억해줘야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 쓸 힘을 얻을 것 같은 예감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336쪽, 1만3000원, 문이당.

                                2015.5.1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4 박보라 수필집-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file 미주문협 2022.02.27 167
343 김소희 시집-비커가 있는 오후 file 미주문협 2022.02.10 126
342 고대진 에세이-순대와 생맥주 file 미주문협 2021.12.30 120
341 유진왕 시집-그대의 노래 하나 더하시게 file 미주문협 2021.12.02 154
340 김외숙 장편소설-엘 콘도르(El Condor) file 미주문협 2021.11.08 144
339 김영교 수필집-물처럼 바람처럼 file 미주문협 2021.10.18 209
338 안규복 시조집-사랑은 작은 집에서 file 미주문협 2021.09.07 375
337 신현숙 시집-생각하는 의자 file 미주문협 2021.09.01 371
336 글벗동인 소설집-사람사는 세상 file 미주문협 2021.08.18 139
335 성민희 수필집-아직도 뒤척이는 사랑 [2] file 미주문협 2021.08.06 168
334 이신우 수필집-사랑의 물레가 돈다 file 미주문협 2021.07.11 158
333 김준철 시집-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 [3] file 미주문협 2021.06.20 645
332 정해정 시화집-꿈꾸는 바람개비 file 미주문협 2021.06.06 180
331 이희숙 시집, 동시집 출간-부겐베리아 꽃그늘, 노란 스쿨버스 [1] file 미주문협 2021.06.02 180
330 김수영 한영 수필집-잊을수 없는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 file 미주문협 2021.05.15 99
329 손용상 운문집-부르지 못한 노래...허재비도 잠 깨우고 file 미주문협 2021.04.24 170
328 서진숙 시조집-실리콘 밸리 연가 file 미주문협 2021.03.22 144
327 박윤수 회고록-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file 미주문협 2021.03.15 100
326 엄영아 수필집-수를 놓듯 연서를 쓰듯 [1] file 미주문협 2021.02.21 315
325 김미희 시집-자오선을 지날때는 몸살을 앓는다. [1] file 미주문협 2021.01.19 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