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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시집 『따뜻한 목소리』. 낭만과 리얼리즘, 센티멘털과 휴머니티가 공존하는 김희주의 시 세계에는 유독 부정이나 저항이 없으며 군더더기가 없이 배추 속처럼 말쑥하다. 이 책에는 '꿈이면 어때', '저 파도처럼', '그 봄, 아프다', '양파', '아프게 하지 마', '비꽃', '쉼표 하나' 등 주옥같은 시편을 담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희주

저자 김희주는
부산에서 태어남
경남여고, 부산 교대 졸업
초등 교사 근무(부산)
미국 이주(1982년도)
Early Childhood Education 이수
창조문학 ‘시 부문’ 신인상
제17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재미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해외문인협회 부회장
사민방 동인
미 연방 공무원(Anaheim P&D.F)
28년 근무, 은퇴

시집 : 살아가는 일도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물소리 바람 소리(공저)

책 속으로

엄마의 마지막 가을


깜짝이야
초록 잔디밭 위
핏빛 얼룩진 돌배 나뭇잎 하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놀라 올려다본 돌배나무
아직 싱싱한 초록 꿈 소리

이파리 하나
나 홀로 낙엽이 되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엄마 손때 묻은
성경책 갈피 속에
납작 엎드려 있던 그 낙엽

꿈꾸는 구순 소녀의
숨결을 보았던 그날처럼
숨이 가빠 옵니다

엄마의 피로 뭉쳐진 딸
당신처럼 등 굽혀
낙엽 한 잎 줍고 있습니다

힘겨운 투병
길게 늘어뜨린 투명 줄 타고
요도에서 뚝뚝 떨어지던 그 낙엽 핏방울
마지막 엄마의 가을이었습니다.

복福주머니


2011년 12월 31일
임진년 새해 하루 전날
곱게 접은 복주머니 카드와 함께
한국에서 날아온 택배 상자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말렸거늘
구수한 누룽지에
금보다 귀하다는 배추 시래기
홍삼 절편, 고구마 삐들이
항균 수세미와 실크 머플러

지금의 네 나이,
나의 중년은
동해도 서해도 아닌 이민의 바다
태평양을 외국어로 헤엄치느라
떨어져 나간 비늘 사이로 스며든
소금기에 아프고 시린 만신창이

이젠
모든 것 다 내려놓은

홀가분한 생의 저녁노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부끄러운 하루
나는 어쩌라고
선생님 노릇 제대로 못한
40년 전의 스승의 마음 알기나 하는지

그땐 내가 너를 가르쳤지만
지금은 네가 나의 스승
이렇게 한없이 베풀며 살라고
어이, 고맙네
그 복 네게 천 배 만 배 돌려주마.



쉼표 , 하나


몸이 바삭바삭
타들어 가는 갈증
물 한 모금이면 그만
가슴 바짝 조여 오는
삶의 버거움
큰 숨 한 번 몰아쉬고
쉼표 하나 찍어 보자.



양파

비집고 들어갈
틈새 없는
완벽한 보신保身

모난 곳 하나 없는
둥글둥글한 너의 원판圓板

심장을 찌르는
칼끝과의 만남

너는 쏟아 내었다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아픈 사랑의 둘레와
슬픈 이별의 숱한 지름

나는
오늘 너를 벗긴다
홀랑

벗겨도 벗겨도
하얀 껍질만 나오는

너는 언제
빨간 피를 토해 낼 것인가.



눈물도 익어야 제맛이 난다


붉은 저녁노을 머리 위에 앉으면
신나는 깡통차기 끝내고
에움길 돌아 대문 박차고 들어오는 집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장관청
높은 담벼락 아래 까마중 한 그루
오빠와 따 먹던 유년의 열매

급히 연락받고
태평양 건너 달려간
어느 중환자실
빡빡 머리에 대롱대롱 비닐 호스
이리저리 엉켜 흐늘거리는
문어가 되어버린 오빠의 끝자락
덜 익은 까마중 목에 걸려
꺼억꺼억 초록 눈물만 쏟아낸다

누가 떨어뜨렸나
검은 씨앗을
내 척박한 이민의 뜨락에

반가운 그 까마중
검은 눈물만 주렁주렁 달고 있다
한 줌 따서 입에 넣었다 그때처럼
익었다, 아주 익었다
눈물도 익어야 제맛이 난다.


사랑이란 그런 말


나,
사랑이란 그런 말 안 해도

당신의 뽀오얀 러닝셔츠
두 손으로 빡빡 문지르면
오래 전 안겼던 그 넓은 가슴
생각나 피식 웃어 보고

볕 좋은 가을날
빨랫줄에 널려 있는
초록 점퍼 어깨 곡선에는
쓸쓸한 삶의 노을이 내려앉아
괜스레 촉촉한 사슴의 눈망울로
푸른 하늘 한 번 올려다본다오

어제는 된장국에 부추전
오늘은 동글동글 잘생긴
당신의 돌 사진 같은 동치미 무로
시원한 물김치 만들어
얽히고설킨 마음 시원히 뚫어 주고 싶어요

우리, 사랑이란 그런 말 안 해도
아이들이 다 떠나간 빈 둥지에서
저녁상 마주하고 모락모락 김 오르는
따뜻한 밥 한 술이라도 더 얹어 주고 싶은
그 마음 하나면 우리 잘 살아온 거지요

사랑이란 그런 말 안 해도 마지막까지
이렇게 따뜻하게 웃는 사람 되고 싶어요. 닫기

출판사 서평

김희주 제2시집
따뜻한 목소리

시제처럼 ‘따뜻한 목소리’의 시편들로 수놓은 작품들은 오래 떠나 있던 고향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웃간의 사랑과 제자와의 정 등을 마음의 시로 담아 놓는다. 어려운 시가 아닌 우리 삶과 동행하며 삶의 애환들을 다독이며 품어 주는 것이 김희주 시인의 시 특징이다.
평안의 미풍처럼 감미로운 애상 속에 펼쳐 놓은 시편들마다 회화적 영상을 떠올리게 하고, 쉼표 하나 찍고 싶은 우리의 일상을 잘 표현해 준다.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등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절대 가치인 사랑이 그의 시 속에서 애잔하며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한다.

** 발문 - 시의 르네상스, 다시 보는 순정파 서정 시인

시적詩的 평범한 과제를 불연중에 안고 김희주 시인이 나타난다. 시의 난이한 벽을 무너뜨리고 아름답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정의 문을 연다.
그는 시와의 따뜻한 동행을 제창하며 시인과 독자와의 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아름답고 따뜻한 목소리로 언제나 주변에 깔려 있는 훈훈한 사랑 이야기들을 적막한 삶의 벌판에서 낙수처럼 주워 올리며 향기로운 샘물에서 사랑, 눈물, 인정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된다. 나지막하게 촉촉이 젖은 은은한 목소리로 삶의 애환을 다독거리며 속삭이며 끌어안는다. 그게 바로 김희주 시의 판타지를 이룬다.
그의 시는 대저 세 가지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그의 시에는 한 편의 꽁트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가 스며 있어 감미로운 애상을 유발한다.
둘째, 그의 투명한 직서의 시어 또는 구어체의 표현이 안온한 평안을 주고 미풍처럼 다가온다.
셋째, 그의 시에는 작품마다 끝없는 그리움이 먼 아지랑이처럼 피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랑에 울고 정에 사무치는 천성의 시인으로 먼 어제의 일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낭만과 리얼리즘, 센티멘털과 휴머니티가 공존하는 김희주의 시 세계에는 유독 부정이나 저항이 없으며 군더더기가 없이 배추 속처럼 말쑥하다.
삶의 굴곡을 넘어서는 고독과 아픔의 숨가쁜 소리가 은밀한 생의 틈새를 비집고 관조와 성찰의 시학으로 멀리 달아났던 시의 서정을 끌어안고 오솔길을 시를 사랑하는 수월한 동행자와 환락을 같이하며 걷는다.
그는 관념어나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직정, 직감, 직경으로 오직 순일純一한 정서와 냉철한 확집確執, 고귀한 희생으로 그리움의 깊이, 기다림의 파장波長,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며 안으로 차돌멩이 같은 단단한 하늘의 소리, 땅의 속삭임, 사람의 숨소리를 축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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