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서쪽언덕에도 뜬다 - 전지은

2005.11.0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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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깊어진다. 마당가를 차지하던 단풍은 조금씩 까칠해 지는 가 싶더니 지난 주말부턴 붉은 색으로 제법 익었다. 군데군데 아직 푸른 잎으로 버티어보는 가지들이 있지만 이제 곧 나무 전체는 말 그대로 단풍이 짙게 들것이다. 지난 해 늦가을,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나무 한 그루에 마당 전체가 붉게 타는 느낌을 받았었다. 짙은 가을이구나, 그 황홀함에 넋이 빠져 나물을 무치다가 혹은 채를 썰다말고 또는 개수대의 수돗물을 틀어 놓은 채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 바람을 동반한 겨울비는 그 우아함에 넋을 놓은 몰골을 추슬러 주려는 듯 고운 색깔의 옷들을 몽땅 벗겨 버리고 앙상한 몸매를 들어내 보이는 겨울을 불러왔다. 나목 속으로 불어들던 바람에 가슴은 더욱 스산해졌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하얀 눈 옷도 한번 얻어 입지 못하는 계절을 더욱 을씨년스럽고 춥게 만든다.
'좀 만날까' 그녀의 전화를 받는다. 그래. 별일 없고. 만나서 이야기 해. 응, 그 찻집.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까진 아직 시간이 있다. 늘 가던 길이지만 오늘은 좀 찬찬히 보아 두기로 한다. 낙엽이 흩날리는 거리, 치자색으로 물든 이름 모를 나뭇잎과 검붉은 자줏빛으로 물든 너른 나뭇잎, 그 넉넉함 속에서 조화를 이룬 노란 은행잎. 암수가 딴 것인 은행나무는 서로 마주보고 섰다. 수컷은 자태도 크고 고고하며 제법 많은 잎사귀를 달고 있다. 암컷은 꽃도 피지 않은 채 열매를 맺은 탓일까 몸매가 부실하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 열매는 농익었다.
차는 시속 5마일도 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 채...한낮인 탓인가 서행을 방해 할 지나는 차들이 없다. 지나는 바람에 떨어졌을 말랑말랑한 은행 알들은 나무의 밑 둥을 덮고 있는 흙과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보도 블록 위로 수북히 쌓였다. 떨어지며 제 살을 짓이겼을 고통들. 아직 단단함이 남아 제 모습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것들. 그러나 누구의 시선도 그들에 닿아있지 않다. 흩어진 것에 대한 어지러움 만 계절의 끝자락에서도 제자리를 지킨다. 돌아오는 시간이 좀 넉넉하다면 비닐 봉지에 주워갈까, 생각이 든다.
모퉁이를 돌아 작은 하이웨이에 들어선다. 한겨울의 유도화는 더욱 진홍색으로 길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유혹에 빠져 옛 조상들은 유도화 뿌리를 다려 사약으로 내렸을까. 필요 이상의 아름다움은 독이 되어 내린다.
바다가 보이는 찻집은 늘 연인들을 부른다. 아직 털보송이 같은 두 사람은 어깨를 잡고 이마를 맞대고 창가에 앉아 키들거린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젊음. 숨막히는 정열과 사랑이라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냥 가장 거창한 명제로 치부되던 날들. 헤어져 돌아서는 괴괴하고 습한 골목에서도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손을 놓지 못했던 안타까움. 얼마나 많은 밤들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그이 생각을 했던가. 사랑의 키들거림을 방해하는 창가의 기러기 소리. 오래된 찻집의 나무바닥을 딛는 삐걱 이는 발소리. 그녀가 돌아본다. 엷은 미소를 띠는 얼굴엔 눈 밑으로 잔주름이 가득하다.
"오래 기다렸어?" 건조한 음성에
"한 십분, 앉아." 고개 짓을 한다.
옆자리에 앉으며 어깨에 손이 닿았다. 잠시 움칠한 것 같았으나 이내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바른 자세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 창 앞에 내려앉은 바닷새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구경하려는지 몇 마리씩 날아든다.
집안에서 키우던 새를 잃어버린 것은 날씨 탓이었다. 새장에 갇혀 있는 것이 안쓰러워 집에 사람이 있을 땐 새장을 열어 놓았다. 제법 제 목소리를 내며 위층 아래층을 날아다녔다. 작은 공간을 날며 흩어 놓은 새의 작은 깃털들이 온 집안을 날아 다녀도, 창가에 내려앉아 창틀을 허옇게 쪼아대도 그냥 예쁜 짓거리로 봐 주었다. 아이의 어깨에 내려앉아 '안뇽? 안뇽? 꼬마 안뇽?' 두어 마디 소리의 재롱밖에 피울 줄 몰랐어도 아인 제 어깨 위에 제 주먹보다도 작은 것 한 마리가 앉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는 듯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곤 하였다.
앵무새 과에 속한다는 푸른 녹색과 노랑 색이 혼합된 깃털을 가진 코리 한 마리를 얻은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세 번째 결혼을 했던 친구는 그의 새 남편의 고상한 취미인 새 기르기를 어쩌지 못하고 함께 좋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세 쌍이나 되었던 앵무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쳐서 가족을 불려나갔다. 피아노만 한 크기의 새장이 있었어도 신혼에, 남편의 아이들과 자신이 데려간 아이들과 함께 여간 손가는 일이 아니었다. 새끼가 나는 족족 조류전문점에 내다 팔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선물도 했다.
세 번째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결혼임을 호언 장담하며 그들이 함께 동거했던 집의 마당에서 질펀하게 벌렸던 야외결혼 파티. 한껏 예식으로 차려입고 갔던 한복. 빨간 원피스에 붉은 꽃 화관을 쓴 신부와 청바지를 입은 신랑을 보고 아연실색을 했을 수밖에. 초대되어 왔던 친척과 친구들도 모두들 편안한 차림이었던 걸 보면 극복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노력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눈 밑의 기미처럼 밀어도 밀어도 베껴지지 않는 흔적처럼 붙어있다.
친구가 준 생일 선물은 아이에게 더 가까워졌다. 갓 태어난 아기 새는 깃털도 짧고 고르지 않아 조금은 흉물스러웠으나 아이의 작은 손안에서 발랑발랑 숨을 쉬며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아이는 그 따스함을, 그 생명 성을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앵무새는 높고 가는 소리를 더 잘 따라 한다던가 나이가 들어가는 중년의 목소리보다는 청아하고 맑은 고음의 아이소리를 더 잘 따라 하였다. 물론 아이의 쉬지 않는 등교하기 전 아침 시간과 방과후의 쉬지 않는 말시키기 연습의 정성도 한몫 했다. '꼬마' 라는 이름을 얻은 작은 새는 조금 자라자 깃털에 반짝반짝 윤을 내며 제 어미들처럼 구애를 시작했지만 짝이 없던 새는 알을 낳을 수 없었다. 아이는 윤기 나고 길어진 깃털의 새를 더욱 좋아했다.
집안의 창마다 방충망이 되어 있다. 초대받지 않은 한철 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러나 어느 날 아인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새의 무게를 잠시 잊었는지 방충망이 없었던 베란다로 성큼 걸어 나갔다. 소리를 질렀을 땐 이미 늦었다. 어쩌면 탁한 고함소리에 새는 더욱 놀라 순간 더 높이 날아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 손을 저으며 잡아보려 했지만 날개 달린 것은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새의 이름을 불러보고 새장의 문을 열어 베란다에 놓아두고 목욕물통엔 새물을 떠놓고 새가 제일 좋아했던 연한 조 이삭을 통 채로 메달아 놓았어도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의 상심은 생각보다 컸다. 몇 일 동안 아이는 저녁식사도 마다하고 노을진 산허리를 쳐다보며 새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는 왜 그리 처량 맞던지. 아이의 심란해 함에 똑같은 것을 한 마리 사주겠다고 달랬으나 아이가 걱정하는 것은 커다란 야생 독수리 같은 것에게 잡혀 먹히지나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밤이슬이 내리고 싸늘한 바람에도 아인 들어 올 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가족 모두가 밖으로 나가 새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헤집고 다녔어도 허사였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새장 문을 열어두고 물을 갈아주며 새 모이를 넣어주며 일주일을 지낸 아이는 조금씩 포기하는 것 같았다. 학교의 또 다른 친구가 새끼를 하나 낳으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새장을 잘 손질하고 닦아 차고에 보관했다. 아직 아이의 친구 네로부터 아기 새를 분양 받은 적이 없고 보면 친구네 새는 아마 수컷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신혼인 그들의 새장에선 새로 분양되는 새들의 소식이 없는 것으로 봐선 피아노만 한 새장을 통 채로 조류 파는 집에 갖다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혼의 걸림돌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커피에 크림 하나 열어서 넣고 젓는다. 뿌우옇게 흐려지는 커피 향은 짙고 상큼하다. 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마른침만 넘어 갈 뿐. 그녀도 말이 없다. 짧은 침묵도 한참 길게 느껴진다. 커피를 졌던 스푼을 달칵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한 모금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마신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우ㅡ리 다--시 만--나."
그녀는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끊어서 한다. 천천히 다시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신다. 난 아이가 있어, 그렇게 말해야할까, 아니면 그래 나도 너 없인 안되겠어, 라고 말할까. 잠시 마음이 휘청거린다. 창가의 바람에 휙 모래가 인다. 파도도 제법 높아진다.
남편과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성실한 남편이고 아이의 아빠다. 중년의 위기라던가 마흔이 넘으면 남들이 다 그렇다는 바람한번 피우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한번도 들키지 않았다. 불경기를 잘 넘기고 승승장구는 아니더라도 꼬박 꼬박 승진을 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골프도 못 치고 하루치의 용돈을 타가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산행을 즐기거나 동네 분식 점에서라도 외식을 시켜줄 줄 아는 남자. 기념일이라고 하여도 쑥스러움에 꽃 한 송이 사오지 못하지만 꽃꽂이가 잘되어 있는 집안 분위기를 기꺼워 할 줄 아는 남자. 아이와 만화 영화를 보면서 손뼉을 치며 웃는 남자.
예비고사가 끝난 겨울. 입시를 치른 후 고등학생도 아니고 더더욱 대학생은 아닌 어정쩡한 상태. 남학생들은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고 여자아이들은 까만 스타킹에 엉덩이만 가린 짧은치마를 입고 얼치기 아가씨의 흉내를 내며 겨울 거리를 할 일도 없이 활보하던 때. 겨울 찻집의 따뜻한 보리차 잔에 손을 녹이며 쓸데없는 일들로 심각하던 때. 때론 당위성이 부여되지도 않은 일들로 자학적이기도 하고 다분히 염세적이었던 시간. 그 다방에서 홍차 한잔을 시켜 놓고 양희은의 작은 연못을 청해들었다. 차를 날라다 주던 아가씨는 비슷한 나이 또래쯤 되 보였고 붉은 입술이 상스럽지 않았다. 짧은치마 밑으로 나온 흰 다리도 나처럼 굽어있지도 않았다. 아가씨와 자주 눈을 마주쳤고 자주 아가씨와 이야길 나누었다. 그해 삼월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오기 전까지.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그래. 이렇게 만나서 함께 바다를 보고 파도소리를 듣고 바람을 만나고. 사는 이야기가 뭔지, 동 세대를 사는 우리들이 아픔이 무엇인지, 고향을 떠나온 자들의 밀려오는 목 메이는 그리움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투정처럼 한번 해 보는 푸념인지, 숙제 안 하는 아이 흉도 보고 때론 천재 아이를 둔 것 모양 허풍도 떨고 남편자랑, 시집 흉, 그렇게 중년을 향해 가는 보통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을.
그녀의 손이 내 손을 꼭 잡는다. 어젠 참 따뜻했던 그녀의 손이 갑자기 징그럽다. 손등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손을 뺄 수 없다. 그녀의 손이 턱을 만진다. 고개를 돌려 외면 할 수가 없다. 그만해, 커피 식어 어서 마셔, 몸을 조금 움직여 간격을 떼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더욱 꽉 잡는다. 놓아줄 기세가 아니다. 점심 먹고 드라이브나 좀 하자, 그녀가 잡아끄는 대로 인형처럼 따라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차 속에서도 어쩌다, 어쩌다 하는 한 단어만 정리되지 않은 머리 속을 맴 돌뿐.
양희은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했던 빨간 입술 아가씨는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음악을 바꾸었다. 혼자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한계령'에서 '하얀 목련'이 피고 '일곱 송이 수선화'가 질 때까지. 눈인사를 하며 살짝 웃어 보이던 것이 옆에 와 앉거나 잘 지냈어, 하는 인사로 이어졌다. 무료한 날들은 정연희의 연애소설 한 권을 들고 다방으로 가기 시작했고 아무리 오래 죽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청하지 않아도 따뜻한 보리차를 갈아주었다. 아가씨의 쉬는 날. 겨울 바다 구경을 제안해 왔다. 하루를 때우기엔 안성맞춤.
200원 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살이 에이게 매서운 겨울 바다를 찾았다. 인적이 끈긴 바다는 아무도 반기는 사람이 없다. 여름의 웅성거림은 얼다가 녹은 눈 위에서 얼룩이 되어 백사장을 덮고 추억의 흔적을 찾는 손들은 가슴까지 꽁꽁 얼어 붇게 만든다. 빨간 입술이 지워지고 짧은 스커트가 넉넉하고 따뜻한 바지로 바뀌었다. 긴 머린 뒤로 편하게 묶은 보통의 우리들과 다른 것이 없는 십대를 갓 넘긴 아가씨. 한참을 걸었다. 파도소리 속으로 우리들의 이야길 넘겨 버리고. 콧등의 감각이 없어질 만큼 얼굴이 아렸고 둘은 겨울 찻집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없는 찻집의 가운데에선 난로 위의 주전자에서 더운 김을 올리며 정겨움을 끓이고 있었다. 추운데, 이쪽 난로 가에 와서 앉아요. 의자를 밀어 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후한 것 같았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어 커피를 마시며 무슨 이야길 나눴던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몸이 녹자 시장기를 느꼈고 옆집으로 자릴 옮겼다. 산 오징어와 매운탕을 파는 횟집. 따뜻한 아랫목엔 둘 밖에 손님이 없었다. 아가씬 매운탕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처음 마셔 보는 소주는 알싸한 느낌으로 목 젓을 화끈거리며 넘어갔다. 가슴까지 따뜻하게 취하는 기분이었다. 아가씬 말을 많이 했다. 가끔씩 눈물이 고이는 촉촉이 적은 눈은 매일 무료한 일상 죽이기에 열중한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소주 한잔이 올랐을까 부끄러움에 취했을까 얼굴은 화끈거렸고 가슴도 두근거렸다. 아가씨의 슬프고 고된 일상사는 즐겨 탐독하던 정연희의 연애소설처럼 높낮이도 없이 계속되었다. 둘은 어깨를 기대며 가까이 다가앉았다. 아가씬 제 숟가락으로 매운탕을 떠선 내 입 속에 넣었다. 그것을 받아먹으며 더럽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가씬 제 입 속에 소주를 물곤 더워진 소주를 천천히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내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황홀했다. 눈을 감고 있었던가. 표정이 기억되지 않는다. 지금은. 차가운 손이 털스웨터를 지나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왔다. 알지 못했던 사이 유두는 이미 준비된 채로 봉긋이 서있었다. 아가씨의 손놀림에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엉켜있던 둘이 떨어진 것은 밖의 인기척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밖아 춥지요, 방으로 들어가세요. 아랫목이 따뜻합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 연인들 같아 보이는 한 쌍이 들어와 옆에 놓여진 상 앞에 나란히 앉았다. 둘은 매무새를 고치며 식어 가는 매운탕을 열심히 퍼먹었다. 물 좋은 오징어를 안주 삼아 아가씬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옆자리의 낮은 말소리들이 소곤소곤 들려 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시내에서 둘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놓쳐서는 안될 연인들처럼. 다방의 뒷문까지 따라갔다. 손을 놓아주며 내일 또 오마 약속을 했다. 아가씬 배시시 웃었다.
그날 밤 혼미한 꿈속에서 아가씨의 이야기들을 기억했다. 과외 공부는 필수였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인생일대의 최대 목표인양 살았던 십 수년은 무엇일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사는 것은 무엇일까. 머리 위에 바위산이 놓여진 것도 같고 가야 할 길이 꼬불거리며 어두울 것도 같았다. 지금 왜 살아 숨쉬고 있는가. 새벽엔 진땀을 흘리며 가위에 눌렸다. 지옥 같던 입시도 다 끝났는데, 매일 먹고 노는데 또 무슨 일이냐고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가물거리며 정신을 놓아 버렸다. 할머니는 우황청심환을 작게 떼어 혀 밑에 넣고 더운물을 조금씩 숟가락으로 떠 입 속에 흘려 넣으셨다. 뻣뻣해 지는 손발을 주무르는 할머니와 어머니. 소리는 들리지만 몸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빳빳이 굳어 가는 느낌을 안다. 누어서, 눈을 감고도. 경험이 있었던 어른들이 놀라지도 않고 앰뷸런스를 부르거나 병원에 싣고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삼 십분 실랑이면 끝나는 것을. 그리고 깊은 잠을 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온다.
다시 그 다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맛보는 자유로움에 재미를 붙이고 매주 있었던 미팅에도 이력이 났다. 사는 것은 때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름 방학이 되어 집으로 내려왔다. 여름 바닷가엔 연인들이 버리고 간 수많은 사연들이 쌓였다. 계절이 가면 사랑이란 이름의 흔적들은 얼룩이 되고 백사장 위의 상처를 감춰 버리려 흰눈은 내린다. 인적이 끊긴 겨울 바다의 상처를 성난 파도 속에 묻어 버리고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랑을 준비한다. 다방에선 그해 여름도 또 다음해 여름에도 양희은의 노래가 나왔지만 아가씨들은 늘 바뀌었다. 주문하던 차 종류도 바뀐다. 설탕과 크림을 넣은 커피에서 블랙원두 커피로, 홍차에서 녹차로...
남편을 사랑했고 결혼하는 덴 추호의 의문이 없었다. 신체 건강한 남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딸을 낳고 지금까지 기르는 동안에도. 아가씨의 추억은 가슴 아린 겨울 상처로, 어린 시절의 아픔으로 치부해 두고 있었을 뿐.
그녀는 낯선 도시의 영어 학교에서 만났다. 미군인 남편을 따라 왔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혼을 했다고 처음 만나던 날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줬다.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 열심히 배우려는 영어, 비슷한 나이, 가끔 수업이 끝나고 나면 찻집에 들려 사는 이야기들을 했다. 금새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아무도 없는 그녀가 곧잘 우리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별미라는 음식을 만들어 오기도 하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비가 몹시 내린 던 겨울의 초입 어느 날 그녀는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 우울의 이유는 복합성이었다. 혼자 밀려져 왔다는 것, 아무도 돌보아줄 가족이 없다는 것, 돌아가고 싶어도 두고 온 그 땅엔 어느 누구 반겨 줄 사람이 없다는 절대의 상실감. 엉킨 실타래 같은 허무의 늪을 휘적거리며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듯한 그녀가 안쓰럽고 불쌍했다.
사는 것은 다 똑같애. 신은 참 공평한 거야. 누구든 어느 가정이든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픔의 크기들은 참 고르게도 분배되어있다는 것이지, 그 말이 위로가 되었을 리 없지만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기꺼워했다. 아이가 돌아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더 지나 남편이 돌아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고 남편이 마시다 남겨 둔 코냑을 세 잔쯤 마셨다.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며 취해갔다. 불쌍하다는 생각에 아이 방에 자릴 깔아주었다. 다음날 늦게까지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며 걱정스런 표정이었으나 착한 여자이니 걱정 말라고, 깨어나는 데로 보내겠다고 했다. 아이도 학교를 간 시간, 해는 이미 창을 넘어 따스한 겨울 햇살을 창가에 드리우고 블랙 커피한잔을 놓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부스스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잘 잤어? 침대가 아니라 불편했지, 그녀는 옆자리에 앉았다. 마시다만 커피를 홀짝 마셨다. 저기 더 있는데...반쯤 열린 가슴으로 그녀는 내 어깨를 감쌌다. 숨막히게 날 안았다. 왜 이러는 거냐고 반문 할 사이도 없이 그녀는 내 위로 덮쳐왔다. 의자가 뒤뚱거리고 카펫으로 몸이 기울었다. 빠져나갈 사이도 없이 그녀는 얼굴 위로 입술 위로 가슴을 풀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아가씨의 얼굴이 지나간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얼굴. 그 빨간 입술. 그때처럼 유두는 한껏 부풀어져있다. 커피 향의 입술이 달짝지근하다. 그녀의 손놀림이 발라지고 능동적인 자세가 되어 그녀가 하는 데로 따라간다. 엉켜 붙었던 몸은 땀으로 베어간다. 둘은 떨어져 나가고 하늘을 향한 창엔 환한 햇살이 가득하다.
종종 그녀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다음엔 알 수 없는 수치심과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늘 함께 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어쩔 줄 몰라 허둥대기도 하고 필요이상으로 남편의 호기심을 사려 쓸데없는 교태와 아양을 떨기도 하였다. 남편은 좋은 친구가 생겨 외롭지 않겠네, 라고 말했고 그 아줌만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야? 라고 아이는 물었다. 선한 자의 눈에는 선한 것만 보이고 악한자의 눈에는 악한 것만 보이는 것인가. 가끔씩 찾아 들던 그녀의 방문은 일주일에 한번이 되더니 최근에는 일주일에 두 번이 된 적도 있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찾아오더라도 그냥 돌려보내리라, 전화가 오고 찻집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절대 나가지 말아야지, 생각 들다가도 그녀의 전화를 받으면 무엇인가 홀린 것처럼 허겁지겁 몸단장을 하고 차에 시동을 건다. 집으로 찾아들면 따뜻한 차를 준비하기도 하고 좋은 와인 한잔을 놓고 마주 앉기도 하며 향내 은은한 촛불을 침실에 켜 놓기도 한다.
언제까지 숨바꼭질 같은 이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잠 들 수 없는 밤들. 뭔가에 쫓기는 듯한 늘 허둥대는 일상. 알 수가 없다. 둘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녀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어느 편에 서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둘은 숨어 있을까, 아니면 믿음이 상실된 헛껍데기의 가정을 붙잡고 몸부림치고 있을까. 후자의 것은 아니어야 할 것 같다는 것은 이성일 뿐이다. 이 얽히고 설킨 관계.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가.
담배연기 자욱한 바의 조명은 어둡고 습해 괴괴하다. 빠른 레게음악이 흐른다. 짧은 음들의 연속, 그 음에 맞추어 빨간 머리의 바텐더는 진을 얼음에 넣어 흔들고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각종 색깔의 술을 흔들고 섞는다. 안개 속에 피어나는 꽃처럼 소나기 내리고 난 후의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향을 내는 칵테일. 목젖이 알싸해지며 간 지르듯 넘어가는 한 모금. 몸은 서서히 긴장이 풀어지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벗어간다. 자유로운 나의 모습. 날개를 달고 꿈속을 헤매기도 하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하는. 롤러 코스트를 타고 돈다. 올랐단 내리고 바람을 가르는 재미란 올라보지 않은 사람이면 모른다. 스릴과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 그러나 어떤 경우든 오르면 내려간다. 그것도 무게중심을 합한 아주 빠른 속도로. 풍경들은 휙,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 버리고 내린 종착역엔 얼떨떨한 느낌과 붕 뜬 듯한 휘둘림 만 남게된다. 그런 느낌 속에 한동안 잡아 두었던 것은 어느 바에서였다. 이름은 '무지개', 미국에선 동성끼리 모여 사랑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는 클럽을 무지개, 라고 하는 것도 그 바를 드나들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와 함께. 테이블마다 다정하게 살을 맞대고 앉아있는 여자와 여자들. 파격적인 자세를 불사하며 스툴에 걸터앉은 복장이 색다른 또 다른 여자와 여자들. 당구를 치거나 뺑뺑이 돌리기 판에 작은 화살을 던지는 남자와 남자들...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한껏 자유로운 움직임.
조울증의 증상처럼 어느 땐 한없이 붕 든 기분으로 날아다니는 듯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 땐 나락으로 빠지는 듯 한없이 쳐지는 기분. 기복이 심한 감정의 조절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벌써 며칠 째다. 어떻게 풀어 가야 하나. 이 엉킨 실타래.
남편은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냥, 좀 심란해서, 계절 타잖아 난. 그렇게 대답을 하고 등을 돌린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그녀의 머리칼. 길고 검은 생 머리칼 두 개가 베개에 붙어있다. 황급히 그것을 떼어 휴지에 싸서 버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또 숙면 할 수 없는 밤이다. 희미한 커튼 사이로 별빛이 새어든다. 몸을 눕힌 이곳은 진정 나의 쉴 곳인가. 뒤척이는 꿈속에서 만나고 있는 그녀는 누구의 쉼터에서 나그네 되어 있을까.
선잠을 깬 아침은 머리가 띵하다. 짙은 커피에도 머리는 아직 맑아지지 않았다. 아이가 등교를 한지 채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전화가 왔다. 감기 기운이 있으니 데려 가라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차에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딸아이는 차를 발견했는지 나풀거리며 정문 쪽으로 걸어온다. 한눈을 팔았는지 넘어졌다. 어, 작은 소리를 내며 차에서 내리려는데 친구인 듯한 금발 바비인형 같은 아이가 딸 곁으로 다가간다. 딸아이의 치마는 엉덩이가 보일 만큼 올라가 걷혀지고 엉거주춤 일어서려는데 인형 같은 친구는 아이에게 다가가 쓰다듬고 어루만져주고 손을 잡아 일으키려한다. 차에서 내다본 그 장면들에 끼어 들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핸드백 속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응, 나야. 어디 있어. 지금 좀 만날까?"
"...."
"듣고 있어?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면 이리로 올래?"
대답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전화가 울리지 않게, 메시지도 남길 수 없게 배터리까지 뺀 핸드폰을 창 밖으로 내던져버린다. 둔탁한 금속음이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 속으로 사라진다. 딸아이가 차에 탄다. 많이 아프냐고 물어 봐야 할 것 같은데 마음만 허둥거린다. 도와주던 금발 바비 인형 같은 아이는 누구인지도.
언제 해 비가 왔었을까, 시선을 돌린 언덕 위엔 희미한 무지개가 잠시섰다.
"엄마, 무지개네. 아휴, 예뻐....."
뒷 거울엔 인형 같은 아이가 정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하이웨이로 들어서며 속력을 내는 길가엔 유도화가 진홍색으로 흩날린다.

(미주문학 200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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