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 만에 본 한국의 결혼식 풍경. 도무지 낯 선 / 성민희

2010.10.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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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의 결혼식이다. 웨딩홀이라 이름 붙인 고층 건물을 들어서니 에레베이트 앞에 두 아가씨가 서서 버튼을 누르며 반겨준다. 결혼식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온 걸 잘 했다며 칭찬이다. 좀 있음 20분은 기다려야 에레베이트를 탈만큼 복잡해질거란다. 20분이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5층에 내리니 두 개의 결혼식장이 나란히 붙어있다. 신부가 웨딩마치에 맞춰서 걸어들어갈 통로 양쪽으로는 8개의 테이블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입구에는 신랑 ooo, 신부 xxx라는 이름 밑에 한 홀은12시, 다른 홀은12시 30분이라는 사인판이 세워져 있고, 복도 중간에 걸린 시간표 가 홀마다 1시간 간격으로 결혼식이 계속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맞은 편에는 한 사람이 앉을만한 작은 방이 각각 두 식장을 마주보고 있는데, 문도 없고 커텐도 없는 곳에 신부들이 닭장에 앉은 닭마냥 오두마니 앉아 있다. 눈 둘데 없어 어색해 하는 두터운 화장의 신부와 방정스레 눈이 딱 마주쳐 조금 민망하다. 신부 곁에 서서 두런대는 친구들도 탁트인 공간이 수줍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밀려들어와 양가 부모들이 서서 손님을 맞이한다. 접수대 앞은 길게 늘어선 하객들이 봉투를 내밀고는 식권을 한 장씩 타간다. 참석 못한 사람의 부조금을 대신 갖고온 사람들은 그 몫까지 두 서너장 받아 간다. 한번 밖에 못 먹을 점심 식권을 왜 저렇게 많이 가져가나 싶다. 신랑 신부 엄마의 화려한 한복에 들러리라도 서는듯 한복차림이 많다. 화사한 모시도 보이고 장농속 깊숙이에서 나온 듯한 색바랜 비단도 보인다. 한복 입고 와주는 것이 큰 부조라며 어제 오후 내내 전화를 해대던 친구의 부탁이 효과가 있나보다. 결혼식이 시작된다는 사회자 목소리가 울려 나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한 테이블에 열 명씩 앉아도 80명 밖에 되지 않는 곳에 아이들까지 한자리씩 차지하게 만드는 젊은 엄마의 얼굴이 한번 더 쳐다봐진다.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많은 손님들이 입구에 서서 남의 어깨 너머로 이리저리 시선을 날리며 주례사를 듣고 있다. 며칠 전 시댁 조카 결혼식에서도 앉아서 스테이크를 썰며 신랑 신부 입장을 보는 것이 참 생소했었는데, 오늘은 음식을 먹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테이블을 펼쳐두어 손님들을 고생시키는지 이해가 안간다. 아직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지 아님 30분 뒤에 시작되는 옆 홀의 수선인지 왁자지끌 소리가 주례사와 뒤엉켜 발까치하고 서있는사람들이 몹시 힘들어 보인다. ‘세계적인 일류 대학을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신랑과 oo 대학을 졸업한 재원인 신부의 어쩌고 저쩌고…’ 70년대 내가 결혼할 때 들은 듯한 주례사를 무심하게 귓등으로 흘리며 테이블 위 꽃을 만져 보니 싱싱한(?) 조화다. 신랑 신부 옆에 세워진 큰 화분의 꽃들도 모두 조화다. 신부 손에 얌전히 들려 있는 부케는 설마 아니겠지? 피식 웃음이 난다. “이모, 이모” 주례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친구 딸이 내 손목을 끌어 당긴다. 여섯살 박이 아들이 배가 고픈데 굳이 미국 할머니(내가 언제 할머니로 승격된건지 원.) 하고 같이 식당에 가겠다고 한단다. 작은 손목을 잡고 8층으로 내려가니 뜻밖에 ‘토다이’ 식당이다. 엘에이에서 시작된 식당이 어느 새 한국까지 와서 고급 부페집으로 자리를 잡았나보다. 7층은 일반 손님 전용이고, 8층은 결혼 손님 전용이라고 한다. 식권을 디밀고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식장에 있어야 할 손님들이 어느새 한무리씩 둘러 앉아 식사가 한창이다. 먹고난 접시들도 옆에 나뒹굴고 있는걸 보니 시작한지가 꽤 된듯하다. 가까운 친척들 모습까지 보인다. 꼬마의 배가 조금 채워지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녀석도 가족 사진을 찍어야 할텐데…… 주섬주 섬 식탁 위 접시 정리를 하자 복도가 와글와글해진다. 식이 끝났나 보다. 급히 꼬마를 앞세워 밖으 로 나오니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에서는 1시 결혼에 참석할 사람들. 위에서 내려오는 것에서는 12시 결혼 마친 사람들. 도무지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할수 없이 식당에 토해놓고 빈몸으로 내려가는 에레베이트를 타고 내려갔다. 아래층 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 등이 벽에 꽉 끼인 채 입으로 겨우 숨을 쉬며 올라왔다. 아침에 들었던 20분이란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예상대로 식이 끝났는지 친지들이 앞에 도열하고 서서 옷매무시를 고치고, 사진사는 우스개 소리 로 사람들의 표정을 깨운다. 모델역으로 고정된 신랑 신부를 싸고 친구들이, 사촌들이, 직장 동료들이, 엄마 친구들까지 밀물썰물이 되고 있는데. 사진 찍기에 열중한 사람들을 이리 저리 밀치며 다음 식을 준비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테이블 위의 조화를 손으로 쓰윽 쓰다듬고 흩트러진 의자도 바로 놓는가 했더니 곧바로 마이크에서 소리가 난다. “죄송하지만 다음 결혼식 을 위해 빨리 자리를 좀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 복도에는 어느 새 1시간 전에 연출된 그대로 연극 세트가 갖추어져 있다. 환한 미소의 신랑 신부 부모들, 접수대에 늘어선 하객들, 닭장 속의 안절부절 신부와 친구들. 또 다시 사람들에게 실려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벌써 식사를 마친 하객들은 포만감에 가재 걸음을 하며 에레베이트 앞으로 몰려 오고, 식당 입구에서 식권을 받는 직원이 쇼핑백을 나눠주고 있다. 들여다 보니 와인 한병과 케이크다. 미처 점심을 못먹고 가는 사람은 이걸 받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식사를 하고도 받아간다. 두 개를 받아 가는 사람도 있다. 세 개도 받아간다. 참석 못한 사람들 몫이라며 식권을 몇 장씩 챙기던 이유가 있긴 있었다. 허지만 그걸 어떻게 일일이 전달할까 하는 주제넘은 걱정이 생긴다. 식당 여기저기서 음식 떨어졌다며 아우성이다. 단체 손님이라 푸대접이라는 불평도 들린다. 식구들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새 손님들이 밀려든다. 우리 뒤의 예식이 끝났나보다. 직원들의 손길이 쿠당탕 시끄럽다. 음식을 울걱거리며 먹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물도 못마시고 일어났다. 또 다시. 에레베이트가 아닌 사람들에게 실려서 내려왔다.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의 대열에 끼여 집으로 갔다. 친구 시댁 형제들과 조카들 몇 명이 웃통들을 벗어제끼고 편한 차림이 되어 모여 앉았다. 인물평이 벌어졌다. 신랑 신부가 잘 어울리더라. 장모감이 인자해 보이더라. 시어머니감이 너무 젊더라. 서로 칭찬 경쟁을 벌이는 식구들이 보기 좋다. 친구는 과일과 떡을 계속 갖다 나른다. 어느새 술병도 몇 병 비워졌다. 온돌방에 다리를 뻗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주고받는 웃음들이 정겹다. 이 풍경이 바로 내 무의식 속에서 그리워하던 고향의 한조각인가 싶다. “우와~~~~ 엄마, 큰일 났어. ” 안방에서 부조금 정리를 하던 친구의 아들과 조카가 봉투들을 손에 움켜쥐고 뛰쳐 나왔다. 불콰한 얼굴의 남자들이 우우 일어나 봉투를 들여다 보니 하얀 종이 뿐.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속이 텅 비어 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모두들의 머리 속에는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말로만 듣던 축의금 도둑. 그런데 이 도둑은 축의금을 훔쳐간게 아니라 양복까지 갖춰입고 와서는 젊쟎게 식권을 받아간 애교 도둑이다. 겉봉에는 알지도 못하는 회사 이름을 쓰고. 여러장인 걸 보니 단체 출장이었나 보다. 축의금 가방은 제가 야무지게 움켜쥐고 다닌 덕에 무사했다며 휴 한숨을 쉬는 아들의 말에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와 웃었다. “옛날에는 잔치가 벌어지면 온 동네 식구들은 물론 이웃 동네 거지들 까지 와서 포식을 한다던데, 현대판 동네 잔치 한번 했다. 그자?” 친구의 넉넉한 말에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이리 인심을 써놨으니 너그 아이들 앞으로 자알 살겠다.” 한국 떠난 지 30년. 검불덤불로 비쳐진 조국의 결혼식 모습이었지만 따뜻한 가족애와 인심은 그대로니, 나는 내 고향을 그리워할 이유가 아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