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섬 / 이월란

2010.02.22 14:22

미문이 조회 수:723 추천:1

핀 어 같은 해저의 암호가 떠오른 것이다 바다가 결코 해독해내지 못하는 무성필름에, 새겨진 자막처럼 떠 있어 절망의 정부처럼 거적을 쓰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독설만 먹고도 가라앉지 않는 이 눈부신 부력 감추고 싶은 바다의 하체가 가슴까지 떠오른 것이다 결박당한 물의 사슬들이 밤새워 끊어지는 소리 허구의 영토를 적시고 또 적시는 것이다 미친 해풍이 뒤통수를 후려치더라도 길 잃은 바람의 신호등처럼 간간이 피어 있는 섬꽃들은 뭍이 그립지도 않은 것이다 자객처럼 뛰어드는 통통배 한 척 없어도 격랑의 발언조차 그늘의 영토가 되는 무인의 섬 바람이 물 위를 걸어와 전설 한 마디씩 던져주고 가는데 멀어지는 넋도 한 번씩 뒤척여 보는 흙의 몸이 되고파 바다의 음부가 유방처럼 솟아 오른 것이다 두려워라, 고립되어버린 질탕한 이 자유 끝나지 않는 끝말잇기처럼 파도가 말을 걸어와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가 말을 걸어와도 대답이 없다 꽃의 철망이 자라는 유배지는 밤마다 별빛의 축배를 들고 바다가 뜯기는지 섬이 뜯기는지 출렁이던 비극이 딱지처럼 앉아 있는 이 자리 한 번씩 수정된 알들을 바다 깊숙이 빠뜨리면 부서져 돌아오는 이름, 이름들 사이로 바다 속 섬아기들이 열매처럼 자라는 소리 수평선을 잘라 만든 문장들이 하늘과 바다를 다시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멸종 당한 물고기들이 환생하는 쥐라기의 바다처럼 바다의 탈을 쓰고 두근두근 밤새 춤추는 섬 매일 아침 백지로 눈을 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