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 클럽-노 기제

2004.08.13 02:17

미문이 조회 수:539 추천:15

인라인 클럽
                                                                        노 기제
        Inline Skate를 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빙판에서 즐기던 스케이트를 길에서 즐긴다는 차이점만을
생각하며 시작 하고 싶던 운동이다. 마침 동호인들 모임이 있다니 쉽게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막상 스케이트를 사렸더니 남편의 걱정스런 반대 의사다. 여지껏  해오던 운동 이라도 위험한 운동은 그만두어야 하는 나인데  새로운 것을 시작 하는 건 무리란다. 난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잖아. 그거하곤 또 다르지.
        사려던 스케이트를 놓고 스포츠 마트를 나왔다. 두달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과연 그렇게 걱정을 할
만큼 위험할까?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인가?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 한 번 해 본후에  못 할것 같으면 그때 그만두면 될것 아닌가. 첨엔 대책없이 넘어질텐데 우리나이의 뼈는 잘 부러지고 잘 붙지도 않고 늘그막에 고생하지 말고 아예 생각을 접으라는 주위의 권고도 만만치 않다.
        또 생각을 해 봤다. 가슴도 콩콩 뛰며 약간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난 요즘 재미있게 하는 운동이 없다. 늘상 하던 수영도, 등산도, 동네 헐리웃 산 걷기도 다 시들해졌다. 큰 맘 먹고 수상스키 좀 탔더니 비용이 너무 든다. 돈 들인 만큼 재밋지도 않고 시간도 너무 짧아서 운동 양이 안 찬다. 수상스키 한 번 탈 비용이면 인라인 스케이트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 한 번 해보고 못하면 그만 두어도 아까울 게 없겠다. 그렇게 계산이 끝나고나서 곧 시작된 나의 인라인 생활이다.
        동호인 클럽에 얼굴을 내밀고 한창 젊은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자격증까지 가진 강사가 강습비도 안 받고 아주 확실한 강습도 해 준다. 잠간 머뭇거리며 할까 말까 했던 망서림은 기우였음이 확인 됐다. 두 번 강습에 난 벌써 로드 런을 즐기게 된 것이다.
        파도가 밀려 온다. 그리고 또 밀려 온다. 자꾸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난 가슴을 편다. 세상 걱정에 찌들지 않은 새파란 하늘도 거기 있다. 때론 작은 무리를 지은 순수한 구름도 만난다. 제각각 다른 세상을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회원들은 13세 케빈으로 시작해서 20대 꽃 같은 무리와, 30대 탱크같은 무리에, 편안한 승용차 같은 40대를 이어 양념으로 섞인 50대까지 다양하다. 난 바로 그 양념이다.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만나는 회원들은 닉네임으로 인사를 한다. 왜냐하면 웹사이트에서 인사를 나누고 이미 친해진 사이들인 때문이다. 난 아직 그들의 본명이 무언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하며 생활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참석 한다. 모이는 시간이 되면 산타모니카 비치 파킹장으로 간다. 세 번 출석에 난 제법 탄다. 행여 실력이 너무 쳐지면 나 스스로 자퇴 할 맘을 먹었었는데 웬걸. 진짜 제법 탄다.
        난 내가 좋다.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려드는 열성이며 시작만 하면 제법 잘 하는 실력도 신통하다. 난 나를 이쁘게 본다. 절대 실망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마음가짐이 이쁘다. 곁에서 보는 사람이 아슬아슬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수도 있겠지만 난 언제나 편안하게 쉽게 생각하며 산다.
         단순하게 생각하며 사니까 어디에 속하던 곧 그 무리에 잘 어울린다. 20대 꽃 같은 무리가 쓰는 글쓰기를 흉내 내어 웹사이트에 올린다. 글만 보면 아무도 내가 양념과에 속하는 사람인 걸 모른다. 30대 탱크 같은 무리와 주거니 받거니 그들 특유의 농담을 할 수도 있다. 40대 편안한 승용차 같은 무리와 조용히 인생을 얘기 할 수도 있다. 물론 양념세대 끼리도 잘 놀 수 있다
        특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말리부 비치까지, 그리곤 다시 베니스 비치까지
달리는 종목에도 난 아주 잘 해낸다. 그래서 그들이 “아직도 청춘인 에세이스트” 라고 나를 칭한다. 자칫하면 노인 구릅이라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양념과에 속하지만 오히려 그 들에게 웃음을 주고,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어쩐지 힘든 세상에 부대끼며 엿새를 살다가 태양이 대충 힘을 빼기 시작하는 시간을 중심으로 만나는 우리 클럽은 만나서 웃을 수 있고, 만나서 건강할 수 있고, 만나서 그냥 좋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딘가 잔잔한 우수를 느끼게 하는 귀공자 타잎의 웹 사이트 주인장 크리스는 40대의 총각이다. 아래세대들 잘 거느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을 무리 없이 잘 이끌어 가는 괜찮은 리더다. 매주 로드런을 마친후, 후기를 작성해서 웹에 올리는 청랑은 훤칠한 키에 10대 고등 학생마냥 청순하다. 기사작성하는 글솜씨가 프로급이다. 귀여운 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스캇은 웃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장난스런 행동도 마구하지만 청랑과 같이 30대다. 스캇과 닮았지만 몸집이 훨씬 커서 형님이라 생각드는 추진위원장. 뭘 추진하는지 모르지만 어쨋던 웹에 올라오는 닉네임이다. 특히 왕초보들을 가르치는 오렌지님은 인라인 스케이트
강사. 자격증을 소지한 40대의 찬찬하고 꼼꼼하게 강습하는 선생님이다. 나 같은 초짜를 2번 강습에 길거리를 달리게 만드는 굉장한 실력가다. 그외에 대장금이 있고, 주부습진, 시민K가 있고 난타가 있고 유진, 쎅쉬마마, 그린비도 있다. 내가 아직 감지하지 못한 많은 회원들도 있다. 특히 나와 같이 양념세대인 아드모어님은 십대인 케빈의 부친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제거 될까 두려워서 지난 달에는 회원 모두를 집으로 초청해서 아주 거하게 한 턱 쏘신 모양이다. 가끔 젊은 오빠로 자칭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어떤 모임에서도 얻어 올 수 없었던 즐거움이 나에게 온다. 점점 쳐져가던 내 모습에 생기가 돈다. 피곤을 잊고 밀린 집안 일도 후딱 해 치운다. 원기 왕성한 20대로 나를 이끌어 내는 인라인 클럽에 나의 마음을 쏟는다. 내 지난 세월 속에 주위에서 많이 받아 지금의 풍성한 나를 형성해 준 사랑 조각들을 하나씩 둘씩 클럽 회원들에게 적절하게 나누어 주고 싶다. 아주 멋지다고 얘기 해 준다. 아주 잘 한다고 말 해 준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확신을 준다. 무궁무진하게 내 속에 쌓아진 보물들을 한 없이 퍼 올려 나누어 주련다.  내게 활력을 되 찾아 주는 인라인 클럽 회원들에게.
        날마다 모이고 싶은 클럽이다.


2004년 8월 10일 한국일보 문인광장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