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피쉬 - 최영숙

2004.08.28 02:13

미문이 조회 수:753 추천:36

단편소설

   블루 피쉬


               최 영숙


“ 다음 토요일에 아빠가 오신다는데 공항에 나갈 수 있니? ”
나는 달구어진 프라이 팬에 계란을 깨뜨려 넣으면서 짐짓 태연하게 물어 보았다. 치이익 소리를 내면서 팬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어느새 계란 가장자리가 거무스름하게 타있었다. 얼른 접시에 옮겨 담아 놓고 계란을 하나 더 깨뜨렸다.
“ 제꺼는 그만 두세요. 전 안먹어요 ”
준일이는 읽고 있던 컴퓨터 광고지를 들고 일어섰다. 엉거주춤 서서 식탁 위에 놓여있는 우유를 급히 마셔대는 아들 애의 면도 안한 얼굴이 회색 잠옷 위에 고단하게 매달려 있었다. 나는 계란 흰자위가 묻어서 끈적거리는 손가락을 앞치마에 문지르다가 그제서야 생각난 듯이 씽크대로 다가가 손을 대고 물을 틀었다. 갑자기 세차게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에 오른쪽 옷소매가 젖어 버렸다. 나는 마른 행주를 소매에 갖다대며 양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 너, 내말에 아직 대답 안했어 ”
“......... 약속 있어요”
“ 무슨 약속? 바꿀 수 없는거니? ”
나도 이번에는 호락호락 안넘어 가겠다는 기세로 물고 늘어 지기 시작했다.
“ 지난 주에도 엄마가 가구 옮겨 놓자구 해서 이번 주로 바꾼건데 또 취소 하면 친구들한테 제 크레딧은 뭐가 되겠어요? ”
준일이는 들고 있던 광고지를 식탁 위에 던져 놓고 몸을 돌렸다. 거실로 나가는 아이의 발소리가 쿵쿵 울려왔다. 나는 행주를 손에 든 채 아이의 등판을 바라보며 먹먹하게 서 있었다. 잠시후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어디선가 아침 뉴스에서 일기예보 소리가 들려 왔다. 플로리다에 물난리를 일으킨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소식일테지.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식어버린 계란 위에 치즈를 한 장 얹어 호밀빵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한입 베어물었다. 아무런 맛도 나지않는 빵조각이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나서야 간신히 목구멍을 내려갔다.
*
나는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은 생각해 본적도 없었는데 어쩌다가 나는 유배 당하듯이 이곳에 보내졌다. 비행기가 알래스카를 지나 아메리카 대륙 위에 떠있는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아니었다. 모두들 변함없이 떠들고 먹고 마시고 돌아가는 일상에서 나만 별똥별처럼 다른 세계로 떨어져 나가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의 손을 내내 생각했다. 그는 정갈한 손톱을 갖고 있었다. 긴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 그의 갸름한 손톱은 양복 소매 끝으로 살짝 보이는 하얀 셔츠 아래에서 더욱 돋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럴때마다 나는 남편의 손이 내가 닿지 않는 세계 저만큼에 가버린 것처럼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신학서적 속에 파묻혀 그가 논문을 쓰는 밤이면 나는 그의 등뒤에 서서 쉴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보드에서 손을 들어 흘러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거나 양 손에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내게 무심히 말했다.
“먼저 자, 밤새워야 돼”
그말은 나의 조금치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나는 그걸 방문을 걸어 잠그는 거로 갚았다. 하지만 남편은 한 번도 방문을 두드린 적이 없었다. 잠긴 걸 확인하면 그 뿐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서재에 놓인 소파 위에서 눈을 붙이고 나가고는 했다.
그가 강의를 위해 일찍 집을 나간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의 손이 닿았던 책상 앞에 앉아서 쓰다만 논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그가 펼쳐 놓은 책들을 뒤적거렸다. 그의 글들은 언제나 유일신의 존재에 대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가 삼년 째 방학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은 동남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섬들이었다. 현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문명과 떨어진 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갖고 있는 토착 종교가 유일신에 대한 신앙에서 어떻게 타락하고 변질 되어 왔는가를 규명하는 일이었다. 그가 돌아 올 때 그의 가방 속에는 나뭇 가지로 만든 작은 갈고리라든가 세로로 쪼갠 대나무 토막, 반질반질한 돌맹이. 알갱이 크기가 각각 다른 구슬로 만들어진 색색의 팔찌들. 불그죽죽한 무늬의 보자기들이 비닐 봉투에 한가지씩 밀봉되어 들어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그것들이 유리문이 달린 책꽂이 안쪽에 일련번호를 달고서 자리잡을 때까지 남편의 신경은 나와 준일이를 향해, 심지어는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까지 곤두서 있었다. 그의 책상 앞에는 확대한 아시아 지도가 펼쳐 있었고 형광펜으로 원을 그려 놓은 곳은 말레이 반도였다. 그리고 점점이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그가 다녀온 지역이었다. 동쪽으로 남지나해를 끼고 태국과 싱가포르 사이에 누워 있는 그 반도는 반이상이 말레이 족으로 그들의 대다수는 모슬렘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는 그곳에서 모슬렘에 의해 변화 되기 전 토착인의 종교의식을 찾아 내기가 상당히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가 확신하는 것은 우주의 신비와 두려움에 대한 인간의 적응은 영혼 불멸을 믿는 데서 나타나고 또한 어디에서나 그 형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행해지는 영혼 사냥에 관한 주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처방이라고 그는 적고 있었다.
이제 막 달이 떠올라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을 때 달빛을 받으면서 왼쪽 엄지 발가락 위에 오른 쪽 엄지 발가락을 포개고 오른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노래한다.
“나는 화살을 쏜다. 내가 화살을 쏘면 달이 흐려진다.
나는 화살을 쏜다. 그러면 태양이 기운다.
나는 화살을 쏜다.그러면 별이 흐려진다.
그러나 내가 쏜 것은 해도 달도 별도 아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 그사람의 마음의 줄기다.

닭이 울 때 나를 기억하라.
그대 태양을 바라볼 때 나를 기억하라.
작은 새들이 노래할 때 나를 기억하라.
그대 달을 쳐다볼 때 나를 기억하라
저 사람의 영혼이여 나에게 오라.
너의 영혼으로 하여금 나에게 오게 하라”
이것을 세 번 되풀이 하여 부르고 그때마다 손나팔을 분다.
그리고는 밤마다 일곱 번 달을 향하여 두건의 끝을 흔든다. 그리고 그것을 베개 밑에 두고 잔다.

나는 그 주술의 노래를 여러번 읽었다. 외워질 때까지.

*

“ 토요일날 준일이가 공항에 나올 수 있나?”
남편이 한국에서 전화로 물어 왔을 때 나는 잠깐 숨을 들이 쉬었다.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 나지 않았다. 다시 묻는 그의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못나온대?...... 준일이 좀 바꿔봐!”
“...... 지금 없어요”
시계는 열한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밤낚시 갔군? ”
남편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았다.
“시험 끝나고 머리 식힌다고....”
“머리 식히는 방법이 그래 낚시질 밖에 없다는 거야? 그건 도피형 취미야!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밖에서 그렇게 해결하려는 것도 긍정적인 방법이 아니라구.”
“이젠 못갈꺼예요. 씨즌이 끝나간다구 마지막이라던데......”
“그애 말을 믿어? 애를 그렇게 감싸기만 하니까 그 모양 아냐! 당신은 어떻게 애랑 똑같애!”
남편은 준일이를 마치 앞에 앉혀 놓기라도 한 듯이 열을 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눈이 뭔가에 눌리듯이 아파오고 뒷통수가 당겨왔다. 시야가 흐려지고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내가 해야 할 말들이 머리 속에서 모음 자음으로 갈갈이 분해되어 알 수 없는 암호처럼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도대체 뭐가 되겠다는 거야”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내게도 말할 기회를 줘. 나도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말은 터질듯한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부터 내게는 남편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의 말소리가 단음절로 끊어져 들리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이미 아무 의미없이 귓등을 넘어갔다.

아이는 여전히 놀이터를 돌고 있었다. 벌써 한시간은 지났을 텐데. 푸른 색 세발 자전거는 아이의 가느다란 발목 아래에서 힘겹게 굴러 가고 있었다. 이월의 햇볕은 텅빈 놀이터에 인색하게 내려 쬐이고 잿빛으로 변한 잔설은 아파트 주차장 구석에서 질척하게 녹아가고 있었다. 그네 옆 모퉁이에서 아이가 자전거를 멈추고 바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전거 앞바퀴가 돌맹이에 걸린 모양이었다. 잠깐 주춤하더니 아이는 두 발을 땅에 대고 선채로 자전거를 앞으로 밀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전거가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동시에 와악 울음을 터뜨렀다. 머잖아 아이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앉아 바퀴를 굴려대고 있었다. 울음이 쉽게 멈추지 않는 지 아이의 어깨가 가끔씩 들썩거렸다. 이내 아파트의 그림자가 놀이터를 덮었고 찬바람이 그림자를 뒤따라 들어왔어도 아이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계속 돌고 있었다.
네 살이 되었어도 준일이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간단한 단어로만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그랬어도 나하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 말은 내가 그애를 위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유치원에서 발생했다. 아이가 자기 이름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개의치 않는 다는 선생의 말이었다. 한달도 못되어 준일이는 유아원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이일을 아이가 내성적인 탓으로 돌렸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준일이는 결국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이가 자라서 학교를 들어갔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담임 선생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야만 했다. 아이는 학교 성적은 그런대로 쫓아가는 편이었지만 교우관계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친구네 집을 간다거나 친구가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준일이는 학교 생활에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혼자서 점심을 먹고 혼자 앉아 있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것 뿐이었으니까.
뭔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남편은 곧 고등학교에 진학해야할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와 의논하기 전에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신학대학의 학생들과 먼저 의논을 한모양이었다.
“ 준일이 위해서 다들 기도하고 있어”
나는 다들이라고 남편이 힘주어 말했을 때 그사람들이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그가 말한 다들이라는 무리 속에 내가 포함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서도 나는 역시 빠져 있었다.
“ 미국에 보내기로 했어. 워싱턴에 있는 내 후배가 다 돌봐 준다고 했으니까 당신은 아무 염려 하지 말고 준일이 데리고 떠나라구. 내가 보기에는 당신한테도 새로운 환경이 필요해. ”
남편은 내게 군더더기 없이 말했다. 나는 말없이 짐을 쌌다. 가슴 한켠이 멍울하게 아파왔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덜레스 공항에는 초면인 남편의 후배가 나와 있었다. 땅딸막한 키의 그는 내 안색이 꽤 안돼 보였는지 비행기 멀미를 했느냐고 운전 중에 몇번 씩이나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으면서 무의식중에 핸들을 잡고 있는 그의 손톱을 쳐다보았다. 굵고 몽뚱한 손가락에 조개껍질 같은 손톱이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순간 와락 외로움이 몰려오고 팔다리에서 힘이 쪼옥 빠져 나갔다. 이제는 정말 준일이와 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나를 조여 오기 시작했다.
“선배님, 차암 아까운 분입니다. 학교에 갇혀 있기에는 말이죠”
그가 말을 꺼내며 흘낏 나를 쳐다 보았을 때에 나는 그의 눈빛에서 어쩐지 못마땅해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내 무슨 뜻인지를 알아챘다. 그건 나를 향한 비난이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눈빛 앞에서 더 이상 주눅이 들지 않았지만 나도 기분이 언짢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를 통해서인지 내게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큼은 제대로 갖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남편일 수도 있을테고.
언제였던가. 준일이가 세살인가 네 살인가로 기억되었다. 아무튼 그 아이가 어렸을 때, 그 때는 학생들이 우리 집을 제법 드나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제자들이 일정한 때도 없이 쳐들어와 한끼 식사를 같이 해결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다지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늘 그러려니 하고 지내던 중 그날은 유난히 여러명의 학생들이 찾아와 나는 마음이 부산했다. 갑작스럽게 저녁을 준비하기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마침 잘익은 홍시를 쟁반에 담아들고 거실로 나갔다. 후끈 열기가 느껴질 만큼 떠들썩한 구석에서 남편은 저들의 이야기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달아오른 얼굴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막 이야기를 이어받은 짧은 머리의 청년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은 곧이라도 폭소를 터뜨릴 듯 했다. 나는 순간 들고 나온 홍시를 잊은 채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디 저 사람이 침울한 얼굴로 아침 식탁에 앉던 그 사람이었던가. 준일이가 옆에서 그렇게 달라붙어도 매몰차게 손을 뿌리치고 서재로 들어가던 사람이었나. 그의 손 끝에서 배어 나오던 저만큼의 거리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모르는 그들의 세계가 돌돌 자기네끼리 뭉쳐서 나를 떠밀어 내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그들 중에 서있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마치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홍시를 차 탁자 위에 조용히 놓고 거실을 떠났다. 뒤에서는 와아악 웃어대는 소리가 나를 떠다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허청거리며 거실을 빠져 나온 나는 중국집에 일방적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난 다음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이 우리 집을 들어서면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남편에게 내 감정을 설명하지 않았고 남편도 묻지 않았다. 머잖아 그들은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더욱 침울해진 얼굴로 소리없이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옮겨 다녔다.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한 세사람은 용케 부딪치지 않고 제각기 자기 공간을 지킬 줄 알았다.

*
준일이는 의외로 잘 적응을 했다. 자기가 하는 일 외에는 달리 신경 쓸 일이 없는데다가 혼자서 무엇을 해도 불편한 일이 없는 학교 생활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가끔은 아파트 안에 있는 농구장에서 아이들과 소리 지르며 뛰고 있는 준일이를 볼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풋볼 공을 들고 잔디밭을 구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준일이는 컴퓨터 공학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남편이 원하는 것은 고고학이었다. 이미 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운 준일이에게 대학에 가는 대로 히브리어를 배우라는 남편의 명령이 떨어진 날부터 준일이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을 멈췄다. 그대신에 낚싯대를 사들였고 주말이면 저수지로 바닷가로 낚시를 다니는 데에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 엄마, 이스턴 쇼어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똑바로 선을 그으면 어느 나라가 나오는 지 아세요? ”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 터키가 나와요. 여기 메릴랜드는 지중해 윗쪽이거든요. 엄마, 나는 바닷가에 서서 바다가 끝나는 저쪽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우습잖아요. 만일 그쪽 사람과 내가 동시에 마주보고 서서 낚시대를 잡고 서있다고 해봐요. 전혀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요 ”
아이는 늘 싱거운 소리를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아이가 뭔가 물어왔을 때 제대로 대답을 해준 적이 드물었다. 엄마, 내말 들어요? 아이는 말 끝에 묻는 게 버릇이 되어 있었다.
준일이가 열심히 잡아오고 있는 물고기는 곧장 냉동실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는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것들을 입에 대지 않았다. 왜그런지 집에서 기르던 금붕어를 잡아 먹는 것처럼 찜찜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냉동실이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먼저 잡아다 넣은 것을 버려야만 할 때는 싱크대에 내려놓아 녹인 다음 여러겹의 비닐 봉투에 담아 고무줄로 꼭꼭 묶어서 쓰레기 통에 내다 버렸다. 냉동된 채로 그냥 버리자니 마치 살아 있는 것을 쓰레기통에 유기하는 하는 듯이 꺼림직해서 아예 녹기를 기다렸다가 죽은 상태라는 사실을 내게 환기 시킨 다음에야 버리곤 했다.
“이젠 그만 잡아 오든지 니가 다 먹어치우든지 해라”
나는 손에 늘어 붙은 비늘을 떼어내며 머리를 흔들어댔다. 물커덩 손에 잡히는 녹은 물고기의 감촉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바람에 연신 손을 닦아댔다.
“ 이제부터는 블루피쉬 씨즌이예요. 이 씨즌 놓치면 플로리다로 따라 가야돼요. 뭐 말하자면요. 그렇다고 거기까지 정말 가겠어요? 가을이 되면 쬐끄만 녀석들은 체사픽만을 빠져 나가서 그냥 남쪽으로 가버리거든요. 체사픽만 안에서 충분히 자라야지만 바다로 나갈 수 있는데 바로 가을이 되니까 셸터로 돌아가는 거예요. 먼저 태어난 큰놈들은 케이프 코드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구요. 어떻든 겨울은 남쪽에서 지내야하거든요. 나는 길목에서 녀석들을 기다려요. 이건 엄마, 전쟁이예요. 걔네들이 얼마나 힘이 좋은 줄 아세요? 정신차리지 않으면 낚싯댈 뺏겨요. 그냥 물고 들어가버린다니까요.”
준일이는 흥분되는지 네 대의 낚싯대를 늘어놓고 한 개씩 들어보았다.
“ 벌써 바다 비린내가 나는 것 같네! ”
낚시릴에 감겨 있는 줄을 하나씩 당겨보며 준일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낚시는 날이 갈수록 횟수가 더해 갔고 주말에는 아예 슬리핑 백을 싣고 가서 밤을 새고 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비좁은 냉동실은 차츰 블루피쉬로 채워져 갔다.

*

주방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집안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튀김기름 냄새가 머리카락에 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저녁 준비를 제가 하겠다는 준일이의 말을 듣고 방안에서 서랍장을 정리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다지 정리할 것도 없었지만 딱이 방안에서 할 일도 없는 탓이기도 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었을 때 분홍빛 표지의 사진첩이 눈에 띄었다. 침대에 올라가 쿠션을 등에 대고 두다리를 뻗고 앉아서 그것을 열어 보았다. 첫장에는 결혼식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마치고 찍은 신랑 신부. 나는 그제서야 남편의 얼굴이 지금의 준일이와 흡사하다는 걸 알아챘다. 남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대신에 나는 거의 울상이었다. 실제로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머잖아 쿵쿵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준일이가 방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디밀었다.
“오늘 저녁은 피쉬 스테이크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생선이라니, 저나 나나 입에 대지 않는 생선을 요리하다니 별일이었다. 잠시후 불려 나간 주방의 식탁 위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 토막이 크림치즈와 씨즈닝을 얹은 채 레몬 세조각과 함께 흰 접시에 놓여져 있었다.
“웬 성찬이니?”
“블루피쉬에요. 요전에 한국 마켓에 가보니까 싼 생선은 아니던데요. 요리법은 인터넷에서 찾았는데 이렇게 살짝 튀기는게 제일 맛있대요.”
그런대로 먹을만 했지만 자꾸 목에 뭔가 걸리는 것처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를테면 돼지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든지 칼국수에 동태를 넣었다든지 할 때처럼 비위가 상하는 듯 싶더니 끝내 속이 메슥거려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포크를 든 채로 준일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얼굴이 많이 수척해 있었다. 그러다가 힐끗 나를 건너다보는 눈길과 마주쳤다. 준일이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 왜그래? 너 무슨 할말 있어?”
“.......저어....이번에 아버지 오시면 같이 집으로 돌아가세요”
“얘는, 갑자기 무슨 소리야? ?”
“저도 이젠 대학생이잖아요. ”
“그래서? 그렇다구 널 여기 혼자두고 가?”
“아버지도 혼자라는 건 생각 안하세요? 혼자와서 잘 지내는 애들도 많아요. ”
“......글쎄....., 그건 생각해볼께.. 그건 그렇구 아빠가 너 공항에 못나간다니까 섭섭해 하시더라.”
“이번엔 엄마가 나가세요.”
준일이의 말은 단호했다. 내가 그곳에 까지 운전을 하고 간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가 디렉션을 드릴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그렇게 저녁 만찬은 끝나버렸다. 우리는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부숭부숭 거리며 밤도 그렇게 지나갔다. 새벽이 되어 준일이가 왔다갔다하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일어나지 나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낚시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어쩌자고 또 나서는지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에 출입문이 닫히고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곧 차가 떠났다.
남편이 오는 날 아침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머리가 지근거려왔다. 달리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만큼 집안은 깨끗했지만 정작 내 머리 속이 복잡한게 마음 쓰였다. 집을 떠나온지 사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그곳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이런 저런 이유로 다녀갔고 나는 가끔씩 빠뜨리고 온 살림살이의 안부를 물어 보는게 고작이었다. 당연히 돌아가야 할 곳인데도 집안의 자잘한 것들이 눈 앞에 잘 떠오르지를 않았다. 지난 봄에 다녀간 남편이 서재 창가에 놓여 있는 게발 선인장이 진홍색 꽃을 피웠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아참, 그건 물 너무 주면 안돼요 라고 뒤늦게서야 말할 정도였다. 갑자기 창밖에서 부릉 소리가 났다. 바로 창문 아래에서 차가 떠나는 소리였다. 나는 순간 공항에 가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항약도는 말대로 써놓고 나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주방으로 나가 습관대로 냉장고 문짝을 쳐다보았다. 메모지를 그곳에 붙여 놓는 일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가족간의 의사 전달 방법이었으니까. 약속대로 준일이는 컴퓨터에서 뽑은 약도를 그곳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파란 메모지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나는 웬지 멈칫 그 자리에 섰다. 그러다가 한발자국 더 다가가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오시면 제발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저는 혼자 플로리다로 갑니다. 거기에서 겨울을 나고 올꺼예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내며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떼어서 손에 들고 준일이의 방문을 열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컴퓨터도 제자리, 그 모서리에 붙어 있는 나와 함께 찍은 스틱커 사진. 책상 위에 손거울 하나. 그리고 반창고 상자. 물색 쓰레기통. 그속에 버려진 오렌지 껍질. 변한게 없는데 모두 변해 버렸다. 나는 황급히 웃장을 열어 보았다. 그랬다. 아이는 말대로 떠나 버렸다. 나는 메모지를 맥없이 책상 위에 내려놓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가 몇번 가더니 응답기에서 녹음된 말이 흘러 나왔다.
“......... 보이스 메일 박스 오브, ”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를 뒤따라 준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운”
이름을 길게 끄는 아이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는 걸 알아챘다. 사방 벽에 갇혀 있는 사람이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숨을 토해 내듯이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야, 어디있니? 집으로 전화 좀 해라”
하지만 내 앞의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다급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는 안절부절하여 수화기를 들고 거실로 주방으로 방으로 들락거리며 연신 번호를 눌러댔다. 순간 나는 어디선가 울려오는 벨소리를 들었다. 준일이 방이었다. 아이는 휴대폰을 두고 떠난 것이었다. 아들이 가출을 했다. 아니 내가 버림을 받았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더 멀리 가기전에....... 나는 오로지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크레딧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확인하고 남아있는 현금을 옮겨 담았다. 서둘러 스토브를 확인하고 커피포트에서 커피 찌꺼기를 꺼내 버렸다. 남편은 커피를 내리려고 할 때 먼저번 커피가 그대로 남아있는 걸 아주 싫어 했다. 남편에게 메모를 남기려 하다가 아무래도 전화로 말하는 게 나을 듯 싶어서 아파트를 나왔다. 어차피 남편은 택시를 타고 올테니까. 내가 그곳까지 혼자 간다는 걸 기대하지도 않을 터였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아침 햇살은 물에 씻긴 듯이 투명했다. 잠잠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차를 뒤로 뺐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차안에서 튕기듯이 튀어나왔다. 나는 아파트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출입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의 냉동실을 열었다. 그동안 집어 넣었던 물고기들이 한데 엉겨붙어서 냉동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꺼냈다. 투두둑. 물고기가 들어있는 지퍼백 두 개가 굴러 떨어졌다. 주방 바닥에서 얼음에 갇힌 블루피쉬가 나를 막막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처럼 뿌연 눈빛에서 나는 그들이 헤엄치고 다니던 바다색을 보았다. 그것들의 등줄기만큼이나 청회색으로 빛나는 바다였다. 바다는 나를 삼킬 듯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섬주섬 물고기들을 비닐봉투에 담았다.
95번 도로는 번잡했다. 남북을 가로 지르는 주도로인지라 트럭들이 많이 달리고 있었다. 그대로 곧장 달리면 플로리다라고 지도는 말하고 있었다. 준일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달렸을까. 불과 두어시간 전에 그 애가 먼저 디디고 간 길을 뒤밟아 가면서 나는 줄곧 냉장고에 붙어있던 푸른색 메모지를 떠 올렸다. 아이는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돌아 가세요, 돌아 가세요.”
언덕을 넘어섰다 싶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강물이 기다란 몸체를 드러냈다. 포토맥 강이었다. 마치 커다란 거울이 누워있는 것처럼 느꼈던 건 햇빛이 강물 위에 홈빡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를 바라 보면서 포토맥 강을 건너갔다. 십여년 전이라던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할 때 대부분 애매한 시간 개념을 갖게 마련이었다. 언젠가 그 포토맥 강을 바다에서 준치떼가 올라와 하얗게 뒤덮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한국 사람들이 뜰채를 들고 나와 아우성을 쳤다던 강둑 옆에는 붉은 벽돌의 낮으막한 건물들이 참으로 무심하게 막 퍼져 오른 햇살 아래에서 선명한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차 트렁크에 들어있는 블루피쉬를 생각했다. 그것들은 지금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혀왔다. 나도 저들처럼 보이지 않는 얼음 속에 냉동이라도 된 것 같았다. 언젠가 마음대로 강으로 바다로 다녔을 그들의 유영. 매끄러운 아랫배를 쓰다듬었을 수초들. 그리고 수초 위의 산란. 연필 끝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눈을 가졌던 치어 시절들. 나는 그것들을 그곳으로 보내 주고 싶었다. 다시는 청회색 등허리를 번들거리며 바다를 누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파트 한 구석 냉장고 안에서 허연 성에를 뒤집어 쓴 채 얼어 붙어있는 것보다는 나을 성 싶었다. 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출구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오른 쪽 길로 접어들었다. 옛날 동네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다시 빌딩이 이어지고. 그러도록 금방 닿을 것 같아 보이던 강줄기가 영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물고기가 녹을까봐 애가 탔다. 녹기 전에 그들을 물로 보내 주고 싶었다. 녹아서 물이 뚝뚝 흐르는 죽은 몸뚱이가 아니라 산 것처럼 단단한 몸체를 그대로 물결을 따라 바다로 보내주고 싶었다. 비록 그곳에서 수장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거래였다. 그래야만 준일이를 돌려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거기에다 걸고 있었다. 드디어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모리얼 브리지를 건너 링컨 기념관 뒤 쪽으로 돌아 내려가자 지난 봄 벚꽃이 한창일 때 제퍼슨 기념관 앞의 호숫가를 찾아 왔다가 차 댈 곳을 찾지못해 그냥 드라이브를 하면서 지나가던 길에 발견했던 강가의 벚꽃길이 나타났다. 잎조차 다 떨어진 벚나무들은 언제 그렇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나 싶게 몸피가 터질대로 터진채 쓸쓸히 강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강물은 잔물결이 흔들리는 대로 반짝이며 흘러 가고 있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물고기를 꺼냈다. 세 덩어리였다. 그것들은 아직 녹지 않은 채 한데 엉겨 붙어서 암울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가로 들고 가서 나는 비닐 봉투를 벗겼다. 그리고는 의식을 치르듯이 한덩어리씩 강물에다 던졌다. 잠시 물결이 출렁거리다가 강물은 곧 잔물결로 변했고 그것이 다였다.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블루피쉬는 사라졌다. 도로변에서 하얀 플라스틱 통과 낚시대를 든 흑인이 걸어 내려왔다. 그는 낚시대를 든 손을 들어 올리며 내게 하이라고 말했다. 나도 한껏 웃음을 지으며 하이라고 대답을 했다. 레이건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배를 내 쪽으로 향한 채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한시간 후면 남편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할텐데. 그러자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영락없이 속이 메슥거리고 뒷통수가 당겨 왔다. 나는 울고 싶었다. 두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엉엉 울고 싶었다. 준일이의 편지가 한 글자씩 떨어져 나와 내귀를 울리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문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눈앞에 하얗게 부서지는 햇빛을 보았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빛이었다. 뱅글뱅글 노란 반점이 눈앞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눈을 감으면 빨간 반점들이 반짝이다가 사라져 갔다. 그 가운데 서있는 여자 하나.
“아유 오케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던 흑인이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짐짓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방,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매여 있듯이 서있는 여자는 바로 나였다. 남편의 책상 위에는 말레이 반도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한쪽에서는 붉은 보자기를 머리에 두른 여인들이 오른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화살을 쏘네. 내가 화살을 쏘면 달이 흐려지지. 나는 화살을 쏘네.
그네들의 팔에는 색색의 팔찌들이 팔꿈치에까지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물빛 드레스가 그들의 다리에 감겨들고 고저가 없는 멜로디가 방안에 안개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달빛이 아닌 햇빛을 받으면서.
나는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는 강가를 떠났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차를 움직여갔다. 강변은 적적했다. 머잖아 공항가는 길이 나타났다. 나는 그 도로 표지판을 따라 다리를 건넜다. 내가 건넌 다리 너머로 블루피쉬를 삼킨 강물이 반짝거리며 바다를 향해 아주 느릿하게 흘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