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일터 - 노기제

2005.04.10 17:54

미문이 조회 수:209 추천:14


노 기제

내가 성장한 시대에는 엄마가 아빠 사무실에 나가보실 기회는 전혀 없었다. 기회가 없다라기 보다는 세상에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다라고 내게 인식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나 자신도 남편의 직장에 얼굴을 보이는 일은 내 사전엔 없다고 믿어왔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여기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말이다.
외국사람인 직장 동료들의 부인이 간혹 자기 남편을 찾아 왔을 경우 내 시선은 곱지 않게 그들을 맞곤 했다. "어디 감히 남편 일하는 곳에 나타난담? 아니, 왔으면 얌전히 앉아 기다릴 것이지. 웬 수다 까지? 저 사람은 마누라 교육을 잘 못 시켰구먼. 저 여자는 대가 쎄서 남편이 꽉 쥐어 사는 모양이구나. 에구 보기 흉해라." 억측이 꼬리를 물며 상상의 날개는 제법 큰 폭으로 펄럭이고 우물 밖을 모르는 내 좁은 지식은 언성을 높였다.
이민 초기시절 직장 생활 할 때의 그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 사업체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 거리낌없이 남편 직장에 찾아오는 부인들을 보면서도 "여자는 남편 직장에 얼굴을 보여선 안 된다." 라는 앞 뒤 꽉 막힌 근거 없는 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내 사업을 경영하게 되었으니 보고 듣고 깨우치고 새로운 관념을 가질 기회를 영영 놓지고 만 셈이다.
남편이 병원 약국에 근무할 당시에도 기껏 가까이 가본 것이 파킹장 정도다. 그러다 남편도 자신의 약국을 경영하게 되었다. 동네 탓에 일하는 사람은 세 사람 모두 백인들이니 자연히 미국 사람 사는 방식대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날마다 남편의 얘기를 들어보면 히안한 일도 다 있다. 다나의 남편이 와서 뭘 어쨌다는등 린의 남편은 소방원인데 아주 건장하더라는등....... 뭣 때문에 식구들이 배우자 일터에 드나드는 것인지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남편은 아무 내색이 없다.
나는 매사가 조심스러워 절대 약국에 얼굴을 안 보이는 상태인데 그 또한 남편은 아무 내색이 없다.
혼자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전혀 발길을 약국 쪽으로 향하지 않는 나와는 달리 남편 동료들의 경우는 다르다. 대부분 안사람들이 가게에 나가서 주인 행세를 톡톡히 한다. 물론 동네가 달라서 손님의 분포도가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으로 차이가 있고 다른 집 안사람들은 직장이 따로 없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한 달포쯤 되었나? 약국을 길 건너로 옮기게 되었다. 이사를 하는 날이니 가기는 가야하는데 도무지 내 처세가 불편하다. 이사는 전문가들이 여섯 명이나 와서 하고있고 남편 친구들이 전기공사와 선반 조립을 돕고 있었다. 나도 있고 조카사위도 왔는데 종업원들은 뭣 하러 오라 했는지 빈둥빈둥 시간만 때운다. 게다가 주말을 이용해서 하는 이사이니 토요일은 한배 반, 일요일은 두배를 줘야하는데, 도무지 일하는 태도들이 게으름 그 자체이다. 그 꼴을 못 봐 심기가 불편한 나를 보고 남편 하시는 말씀. "신경 쓰지마, 다들 그래. 그래도 제네들이 정리해야 뭐가 어디 있는지 알지. 자기가 날마다 올 것도 아니구."
이사만 끝낸 상태에서 주말은 후딱 지나갔다. 빠른 정리를 도울 맘에 월요일에도 약국에 갔더니 로라가 대뜸 "오늘 사무실에 안가도 되느냐?"고 놀란 눈을 한다. 휴대폰 하나면 내 사업은 지장 없이 잘 돌아간다니까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왜 나는 엄연한 반쪽 주인이면서 주인 행세를 못하고 남편 종업원에게 주눅이 드는 걸까. 혹시라도 남편에게 불이익이 돌아 갈까보아 노심초사다. 내가 자칫 종업원들 심기라도 거슬렸다간 내일 당장 출근이라도 안 하면 어쩌나.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가 너무 힘겹다는 것이다. 결코, 혼자 힘겨워 않도록 언제든 피해 쉴 길을 마련해 주자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바로 나로 하여금 일자리를 확보하게 했다. 월급이 못마땅해서 상사와 자주 다툴 때도 옮길 곳을 마련한 후에야 큰소리 치고 사표를 썼다. 내가 성질대로 당장 그만두면 남편이 받을 위험 부담이 얼마나 커질까 싶어서다. 여자들이야 앞 뒤 생각 없이 성깔부리고 직장 박차고 나올 수도 있지만 부양 가족이 있는 남편들이야 어디 감히 성질 난다고 직장 버릴 수 있겠는가. 억울하게 상사에게 깨지는 날에도 말대답 한번 시원스레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텐데.
이런 사정을 한국에선 알지 못했었다. 직장 생활을 길게 하지 않아서 미처 이런저런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 온 후로 이어지는 직장생활에서 남편들의 고충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남편이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아래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주인이고 직접 경영하니 아무 문제도 없으려니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 종업원들 시집살이가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도와 줄 수가 없다. "여차하면 결근이나 하고 꼴 보기 싫은데 내가 나가서 일이라도 배워 놀까? 급하면 나가서 도와주게?"
"자기 일은 어쩌구?" 내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준비를 해야 할까보다. 아주 급한 경우엔 나라도 발벗고 뛰어 주어야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람 산다는 것 자체가 온통 시집살이 뿐이다. 무엇하나 내 뜻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있었나? 나 혼자 사는 세상이라야 내 맘대로 하지. 좌우 전후 모두 더불어 살아야하니 피하지 못하고 끌려가기도 하고, 멍청하니 숨죽이고 기다리기도 해야한다.
차라리 직장생활 안하고 이런저런 사정 몰랐을 때가 편했었다. 엄마세대처럼. 그래서 하나님께선 남자에게 돕는 배필로 아내를 주셨나보다. 남편이 일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다 알 필요는 없어도, 알아도 도울 수가 없으니, 그저 잘 돕는 역할에 항상 신경을 써야겠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야 하는데 어쩐지 무지 어려운 일처럼 겁이 난다.
오늘도 출근하는 남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넌 좋겠다. 집에 있어서. 나도 집에 있고 싶다." 강아지에게 던지는 한마디가 농담만은 아니리라. 따라가서 뭔가 해줬음 좋은데 역시 남편 일터엔 조심스러워 못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