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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을 위하여     

                                   기영주


 유월이 오고 흰 구름 높이 뜨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여정을 말해 두어야지
 이웃에 진 빚 갚고
 오래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찾아보아야지


 이별은 하나의 맺힘
 조용히, 미소를 남기자
 겨울 나뭇가지에 머무는
 메마른 말들을
 하나하나 풀어야 하는
 여행은 운명에 대한 사랑


 비오는 밤에 들을 지나고
 석양에 눈 덮인 산을 넘어
 살어름 풀리는 강가에 이르면
 정과 운명에 대한 노래를
 그리운 사람에게 띄워야지


 오늘은 가방을 다 비우고
 헌옷 한벌과 땀 냄새를
 유월의 보리밭에 가득한 태양과
 사랑하는 이의 살 냄새를
 그리고 친지들의 주소록을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