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우십니다 - 노기제

2014.08.13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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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며 산다. 혼자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가능하면 나를 보이지도 말고, 남을 보기도 싫다는 바램이다. 단번에 판단이 들린다. 우울증이다.
혼자 작은 공간에 거처하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산다. 이런 것이 자유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잡음이 안 들리는 공간이다. 비교적 싼 방세를 내지만, 방음이 잘 된 건물이다. 건축자재가 방음에 탁월하고, 인간의 소리를 차단하기 쉬운 건물 구조다. 건물의 구성원들 또한 잡소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모인 듯하다. 나처럼.
자유롭기 때문에 내가 원하면 어디든 찾아 간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에 따라오는, 섞임의 기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일단 내가 원해서 모임에 섞였다면 그 곳에서 얻어지는 결과에 나는 책임이 있다. 가장 쉽게 보이는 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서울 단국대학에서 주최하는 L.A. 문학아카데미에 등록을 하고 칠일 동안 하루에 2시간 반씩 강의를 듣는다. 강의에서 얻는 학구적인 내용보다는 나와 똑같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실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된다. 나와 같지 사람들을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고질병 때문이다.
우연히 같은 조에 편성이 된 일곱의 다른 사람들과 따로 모임을 갖는다. 강사를 모신 자리이니 질문도 하고, 설명도 듣고, 식사를 함께하고, 차를 나누며 서로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간다. 모두들 조심스레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모습들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아낀다. 말 한마디로 남을 다치게 할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배려하는 마음들이다.
“아름다우십니다.”
차를 나르는 분에게 보내는 찬사가 들렸다. 교수님을 포함해서 남자 분은 단 둘. 의례적으로 날리는 남자의 멘트가 아니다. 가볍게 뱉어 내는 농담조도 아니다. 문인들 모임에서 몇 번 만났던, 그리고 이번 강의에 같은 조로 구성되어 함께한, 다소곳한 여자 분의 음성이다. 경의를 보이며 크지 않게 보낸 말이다. 아무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런데 나는 가슴에 뭔가 하나를 콕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얼핏 차 나른 분의 얼굴을 보았다. 별 반응이 없다. 어떤 반응을 보낼 여지가 보이지 않는 굳은 표정이다. 아름답다니? 전혀 아닌데.....
모임이 끝나고 카운터로 가서 다시 그 두 분이 마주하게 됐다. 우연히 내가 지나다 또 듣게 됐다.
“아름다우십니다.”
차 나르던 분이 계산을 받다가 칭찬하시는 분을 힐긋 쳐다 보는 듯 순간을 지나친다.
“아름다우신 분도 거울을 보시는군요.” 반응이 없음에도 보내는 또 한 마디다.
“아 네에. 다른 직원이 거울을 여기 놔둬서. 아름답다뇨, 아니에요.”
비로소 차 나르던 분이 응수를 한다. 끝의 ‘아니에요’ 란 부정은 아름답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도 다시 그 분의 얼굴을 보았다. 전혀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반복되는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동의 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얼굴이 환해지고, 미소가 생기고 그리곤 조금 아름다워 진 얼굴을 보인다.
그 아름답게 변하는 얼굴을 보며 난 알았다. “아름다우십니다”라고 한 마디 해 주면 어떤 얼굴이라도 아름답게 변한다는 것을, 직접 보고 확인 했다. 그렇게 쉽게, 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곱지 않은 얼굴을 진짜로 아름답게 변화 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하는 분의 지혜를 훔쳐야 겠다.
그러면서 난 나를 본다. 그런 쉬운 칭찬 한 마디 얼마나 아끼며 살아 왔던가. 사실에 충실하게 살았노라 자부심까지 가졌다. 입에 발린 말을 어찌 그리 쉽게 하겠느냐며 목이 곧은 나를 본다.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변명 속에 숨겨 진 우매한 나를 본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내게 보이는 사실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라도 내가 한 마디 아름답다고 해 주면, 곧 간질간질 서서히 아름답게 변해 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나의 제한 된 능력. 부끄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화 시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잘 하는 사람’ 들로 바꿀 수 있었던가. 긴긴 나날들을 헛되이 보낸 내 모습이 많이 부끄럽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거짓으로 혀를 놀린다는 결벽증에서 벗어나자. 내가 하는 한 마디 칭찬의 말은 지금의 어떠함이 아닌, 그 사람이 내 칭찬을 들은 후에 변해 질 모습이란 걸 확신하면서 나와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실천하는 연습을 하자.
그러려면, 혼자 있어 평화롭다는 나만의 공간에서 자주 튀어 나가는 실습부터 해야겠다. 낯선 사람들 모임에 내 모습 들어내길 두려워도 말아야 겠다.
“아름다우십니다.” 몇 번의 반복 되는 한 마디를 누군가에게 건넬 생각을 하니 나도 따라서 아름다워 짐을 느낀다. 이 느낌 또한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