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죽이지마 / 최향미

2012.10.29 08:35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243 추천:1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막 시작하는데 아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생활 이 년째인 녀석은 학교공부로 바쁜 건지 기숙사 생활이 신 난건지 에미에게 가끔씩 목소리 들려주는것도 참 인색하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를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었지만 전화 통화는 몇 마디 오가지도 못하고 “ 오늘 꼭 끝내 알았지? 이 게으른 놈아 ! ” 하는 에미의 언성 높임과 함께 일방적으로 끝나 버렸다. 내년도 학교 등록을 위해 제 작은 고모가 서둘러 세금 보고 서류를 마쳐 준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자기가 마무리해야할 서류 처리를 안 해 놓았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 안으로 끝내라고 윽박지르고 끊은 전화기 앞에서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히다가 생각하니 내가 좀 심하지 않았나 싶어진다. 제딴에는 서류작성을 하다가 질문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화를 내니 늦어진 이유를 변명할 여지도 없이 야단을 맞은 꼴이다. 내 마음이 상 한 것은 ‘바쁜 와중에도 밤늦도록 서둘러서 서류 준비를 도와준 시누이에게 면목 없음’ 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의 ‘예의 차리기’ 에 걸려 듣게 된 꾸중이란 걸 아이도 감지했을텐데, 막무가내로 화 낸것이 슬며시 아이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유치원 선생 일을 하게 됐지만 소위 버릇없이 구는 아이들은 그냥 넘겨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아이들 눈높이로 잘 놀아 주다가도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로 버릇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가르치는데 유난한 사명감을 가진 호랑이 선생이었다. 학부모들은 훈육 안에 담긴 아이들에 대한 나의 애정을 알기 때문에 다행히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줄만큼 버릇없는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대하면, 내버려 두는 그 부모를 참아 내느라 나는 속으로 화산을 몇 번씩 폭발해 낸다. 때로는 그런 부모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애꿎은 내 자식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쨘한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친구가 오페라 공연 티켓을 선물해 주었다. 당시 딸아이는 여덟 살, 아들아이는 다섯 살 정도였던 것 같다. 비록 그리 크지 않은 극장이고 배우들 중 한국인들이 대다수인 공연이지만 명색이 오페라 공연 아닌가.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첫 경험에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딸아이에게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히고 아들아이에게는 옆집 형이 물려준 양복까지 입혀서 극장에 도착을 했다. 아이들에게 오페라가 무엇인지, 공연 중에 지켜야할 공중도덕을 몇 번씩 일러 주고 드디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미의 당부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들도 조금은 흥분되고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죽이고 어른스럽게 오페라 감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중반부쯤에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들리는 소리에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 앞자리에 앉은 젊은 한국인 여자가 아들인 듯이 보이는 꼬마와 과자를 꺼내 먹고 있는 것 이었다. 의자에 누운 듯이 깊숙이 앉아서 과자를 소리 내서 먹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난 그 여자의 과자 봉지를 나꿔채고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손에 힘을 쥐다가 애꿎은 옆자리의 아들 어깨를 툭 치고 한마디 나직히 ㅂㅐㄷ었다. “현진아 저 아줌마 어글리지. 영화구경 하는 것도 아닌데...근데 우리 현진이는 참 점쟎게 잘 보네..” 아이는 그 말에 등을 다시 곧추세웠다. 그리고 그 젊은 여자는 그 과자 말고도 몇 가지의 군것질을 더했고, 난 신경이 계속 곤두섰었고, 울 아들 허리는 계속 꼿꼿했고 그리고 아이의 어깨선으로 작은 한숨이 간간이 흘러 내려왔다. 나는 앞자리의 무례한 여자를 흘겨보면서도, 그래도 점쟎게 어려운 관람을 잘 해내고 있는 울 아들의 대견함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하지만 십 수 년이 지난 그때 일을 기억할 때 마다 아들에게 미안해진다. 조금은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첫 오페라 관람을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한 것 같다. 즐기기보다는 예의범절만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내 무모한 객기였던 것 같다. 게다가 무례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에 대한 욕지기를 내 아이들을 닥달하며 화풀이한 셈이기도 한건 아니었던가싶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남편이 함께 테니스를 치는 회원들끼리 산으로 캠핑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일박 이일의 짧은 캠핑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뜬금없이 “ 우리만 그런가봐” 한다. 회원이 모두 남자들인데 이번 캠핑에 아이들을 데려온 젊은 아빠들이 몇 있었단다. 원래는 회원끼리만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은 가정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아이들이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소리를 지르고 어른들의 행사를 방해하며 수선을 피워도 나무라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 깊은 산속 캠핑장에는 밤 열시만 넘어도 주변이 아주 조용해진다. 특별히 지정된 단체 캠핑구역을 제외하고는 서로에게 소음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저녁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우리 가족은 첫아이가 한 살이 되기 전부터 해마다 캠핑을 다니고 있다. 덕분에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일에 익숙해 있는 우리 아이들만 봐오던 남편은 한동안 신경에 거슬려서 한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 우리만 그랬었나봐...” 하면서 마음을 가라 앉혔단다. 아무래도 젊은 아빠들이 자기 자식 기 죽일까봐 아이들의 모든 행동들을 내 버려두는 것 같아 보였단다. 우리 젊었을 때 아이들 다루던 기억이 떠오르고, 요즘 부모들의 모습과 비교를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었나보다. 우리가 혹시 훈육을 한답시고 아이들 기를 죽여 놓은 일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자기반성도 좀 있었나보다. 글을 쓰고 있는 중간에 아들 녀석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 엄마, 작년하고 틀려서 이해가 안되는데 지금 고모한테 전화하면 너무 늦은거지? ” 한다. 밤 열한시가 넘긴 시간이다. “ 아무래도 내일 고모랑 통화하고나서 하는 게 좋겠지? 내일 모두 끝낼 수 있을거야. 그러니 엄마 걱정마 ” 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좀 전에 엄마한테 야단맞은 아이의 목소리답지 않게 밝고 화창하다. 내 미안했던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내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고르고 “ 현진아, 우리 일에 고모가 그렇게 애쓰셨는데 정작 너는 이렇게 게으름 부리고 있었으니 고모한테 면목이 없쟎아. 내일 고모한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엄마한테 야단맞았어요.... 꼭 그렇게 말씀드려. 알았지? ” 라며 당부를 한다. 그리고 아까 화 낸 거 미안해 라고 말하려는데 “ 알았어. 근데 엄마 나 빨리 나가 봐야 되. 전화 끊어! ” 한다. 이번에는 아들 녀석이 거의 일방적으로 끊은 통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잠시 멍해진다. 그리고 비 맞은 중처럼 속으로만 궁시렁거린다. ‘엄마 객기 때문에 그동안 어린 아들 기죽이며 키운 건 아닌가 은근슬쩍 드는 미안한 마음에 반성문 비슷한 걸 쓰고 있는데....혹시... 다짜고짜 성질낸 엄마 때문에 울 아들 기가 조금이라도 죽었었던 거야 아님 오늘도 자식 짝사랑하는 내가 나한테 또 속은거야....에고고...’ 그러더니 기어코 콧등으로 툭 말 한마디가 올라탄다. “그래도... 기죽지마 아직도 엄마쟎아. 아쟈 아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