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아, 수진아 (제 3 회) /김영문

2012.12.03 08:53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281 추천:2

수진아, 수진아 (제 3 회) (4) 여자의 처녀성에 대해서 까달스럽게 구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남녀 평등의 시대를 살면서 여자의 처녀성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고 남자의 동정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여자의 처녀성에 대해서 구태여 언급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신적 결합 없이 이루어진 성교에서 여자는 처녀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처녀막의 파손 여부로 처녀성을 가려내던 구시대적 사고 방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녀석은 멍텅구리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압적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성교로는 여자의 처녀성을 파괴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 일체가 되고 감성과 사랑으로 합일하여 이루어지는 결합이라야만 진정한 의미의 처녀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고문에 의한 자백이 진정한 자백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성행위가 진정으로 처녀성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윤수진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 때 있었던 그 치욕적인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없었기를 바란다. 나는 윤수진이 나의 아파트에서 나와 가슴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팔 안에서 떨고 울면서 결합했던 그 순간을 진정 자기의 처녀성을 남자와 함께 나눈 순간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절실히 바란다. 육체적 교감이 있기 전에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강렬하게 밀착된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남녀 사이에는 성교 이상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둘만이 알고 정신으로 은밀히 서로를 밀통하며 즐길 수 있는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그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토요일 밤이 깊을 때 까지 우리는 마시고 떠들고 울고 웃고 성교했다. 우리는 마치 사막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만난 것처럼 육체적으로 또 지적으로 치사 상태에서 서로를 갈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에서 아무리 애써서 만들어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품을 내놓던 우리 둘은 그래서 더 할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한 마디 좋은 평을 받아보지 못했으면서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대고 있는 윤수진을 보면서 나는 일찌감치 백기를 날리고 항복해 버린 나 스스로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윤수진은 지금 나보고 또 글을 쓰라고 하지 않는가? 남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더 중요하다는 거다. 이 짜식은 나보다 훨씬 강하고 질긴 놈이다. 윤수진과 나는 전날 밤 과음으로 숙취를 느끼면서 일요일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눈을 떴다. 빈틈없이 밀착된 윤수진의 몸이 비단결처럼 내 온 몸에 감미롭게 감겨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전연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동경하기만 했던 녀석이 이렇게 실제로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녀석과 같이 누워서 녀석의 벌거벗은 피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녀석의 보드라운 손이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나는 내 허벅지 근처에서 까실 까실 느껴지는 녀석의 음모에 다시 욕정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녀석의 위로 올라갔다. "또?" 녀석이 속삭이듯 말하고 후후 웃었다. 녀석도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또 한 차례의 길고 부드러운 격정이 지나가고 나는 녀석의 긴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묻고 심호흡하며 머리 냄새를 맡았다. "그, 샬리스던가 하는 데서 살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녀석의 몸이 다소 경직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하면 안 돼?" "지금 듣고 싶은데." 윤수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 있을 때야. 신사동 화랑에 서양화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구경 갔었어. 그 때 거기서 그 노인을 만났어. 이름은 죠세프 스타인버그였어." "그게 언제쯤 이었어?" "그러니까, 너희들하고 헤어진지 한 반 년쯤 지났을 때였어.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미친 것처럼 그림만 그려대고 있던 시절이야." 사람의 관계는 묘한 것이어서 별 이유도 없이 끌려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특별한 이유 없이 배척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 죠세프 스타인버그가 윤수진을 보고 한 눈에 끌려 버린 것도 말하자면 그렇게 특별히 꼬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않을까 짐작하는 수 밖에 없겠다. "나하고는 나이가 너무 차이 나는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는 그 할아버지의 호의 어린 눈이 나를 이성으로 보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어. 어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는데 다가와서 그림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어. 그렇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그 때 내가 보고 있던 그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 그 그림은 혼이 들어있지 않은 영화 간판 그림 같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와그르르 웃더니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는 거야. 그렇게 해서 갑자기 친해졌어."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죠세프는 예술품 수집가이고 미술 평론가였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동양화를 구경하러 왔었다는 것이다. 몇 번 만나는 사이에 그 죠세프는 윤수진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그림을 보자고 해서 자기가 그린 그림 몇 점을 들고 카페에서 만나서 보여 줬다는 것이다. "그 때, 처음 내 그림을 봤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할 거야." 윤수진이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어땠는데?" "아무에게도 주목 받지 못했던 그림인데 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뚫어지게 보았어. 그러더니 빨간 색이 몹시 인상적이라고 말했어. 그건 빈쎈트 반 고흐의 노란색이 주는 전율과 흡사하다고 했어." 빨간 색.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 전에 본 녀석의 그림에도 유독스레 빨간 색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수진아, 혹시 네 그림에 들어 있는 그 빨간 색이 너 어릴 때 마을에 왔던 행상에게서 얻었던 빨간 사과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에게 보여 주려고 급히 뛰어가다 퇴비를 만드는 구덩이 속에 빠트렸다는 그 사과 말이야." 윤수진의 몸이 긴장하며 숨을 멈추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너는 직관력이 있어서 그걸 얼른 짚어내는구나. 너는 역시 글을 써야 해." "본인이 스스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을 옆 사람이 더 잘 알 수도 있는 것일 뿐이야." "내가 왜 그렇게 빨간 색에 끌리고 있었는지 이제 알게 된 것 같아." "그런 후 그 사람과는 어떻게 됐어?" "한, 한 달 동안을 같이 다니면서 미술관과 그림 전시회를 순례했어. 그러면서 내 그림을 여러 점 보고 비판을 해줬어. 마침내 가족 사항을 물어보더니 내가 독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기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데 자기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자고 했어. 결혼하는 것이 가장 빨리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면서 말이야. 더 열심히 그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야. 그 결혼은 말하자면 사랑으로 된 결혼이 아니었어. 나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어쩌면 타산적인 결혼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은 처음부터 말했어. 자기는 성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에 수녀가 되는 기분으로 결혼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너는 결혼을 승낙했단 말이지?" "나는 그림을 더 공부하고 싶었어. 그 사람이 약속하는 모든 것이 내가 꿈처럼 그리고 있던 것이었어. 미친 것처럼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더 아무 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었어. 더구나 그렇게 천덕꾸러기처럼 한 번도 좋은 평을 받아보지 못했던 내 그림들을 그 사람은 무슨 대가의 명화나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면서 도무지 이런 그림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어. 나는 내 그림들이 미국이라는 다른 풍토에서는 이해되고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야. 그림이 좋아서 그리면 그만이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 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어?" 그렇게 해서 윤수진은 그 돈 많은 유태인 노인과 결혼한 후 아이다호 주에 있는 샬리스라는 도시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