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조> 산란기--전연희
2015.04.09 06:57
산란기
전연희
뭍으로 굼뜬 걸음 돌길을 지나 왔다
긴 목이 석 자에다 뼈로 짠 거북등짐
어둠 속 붙들고 설 것은 저 열사흘 달밖에
한기로 떨며 지샌 여름밤 식은 기억
창 낮은 방 한 칸에 불어난 식솔만큼
금이 간 등딱지 위로 관절 앓는 긴 날들
잠시 비껴가는 햇살 바라 목을 빼면
끌려온 바닷물이 하얗게 넋을 잃고
운석이 쏟아진 지붕 별이 몇 개 내리고
부화한 꿈이 자라 낮은 창을 밀어낼 즘
목숨의 밑뿌리에 탁본으로 뜨는 물결
귀퉁이 닳고 헐어진 몸뚱이를 얹는다
* '거북이 돌길을 기어 힘들게 낳은 알에서 바다로 살아 돌아가는 생명은 몇
아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성과 사랑을 쏟는 산고’ 속에 태어나고, ‘거북등짐’
고행 같은 여정 속에 한 생이 심화된다.
적절한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근원적인 힘이 되는 진정성을 환기하는데,
시로 가는 나의 길이 이와 같았으면. 혼돈의 세상살이가 이 시조 본연의 절제와
율격미처럼 여운을 남길 수 있었으면.
‘부화한 꿈’은 아버지의 것만은 아니리라.
- 안규복-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65 | 이만구-박꽃 | 미주문협 | 2021.02.18 | 91 |
464 | 곽설리-수련은 | 미주문협 | 2021.02.01 | 52 |
463 | 눈-최경희 | 미주문협 | 2021.01.19 | 41 |
462 | 정국희-일상의 길목 | 미주문협 | 2021.01.04 | 68 |
461 | 손명세-거리두기 | 미주문협 | 2020.12.20 | 54 |
460 | 김동찬-나무 | 미주문협 | 2020.12.02 | 69 |
459 | 조춘-바위의 침묵 | 미주문협 | 2020.11.16 | 164 |
458 | 이성렬-종달새 | 미주문협 | 2020.11.02 | 86 |
457 | 송인자-싱싱한 언어를 찾아서 | 미주문협 | 2020.10.16 | 60 |
456 | 류미야-잠든배 | 미주문협 | 2020.10.02 | 66 |
455 | 웃음회식-류병숙 | 미주문협 | 2020.09.16 | 61 |
454 | 김호길-하루에 시 한편 | 미주문협 | 2020.09.04 | 72 |
453 | 성백군-숨막히는 거리 | 미주문협 | 2020.08.20 | 60 |
452 | 박영숙영-창안과 창밖 | 미주문협 | 2020.08.03 | 41 |
451 | 김원각-글 쓸 때가 더 기쁘다 | 미주문협 | 2020.07.15 | 84 |
450 | 이창범-연어의 강 | 미주문협 | 2020.07.02 | 42 |
449 | 한혜영-큰소리 뻥뻥 | 미주문협 | 2020.06.16 | 61 |
448 | 홍순복-수제비 | 미주문협 | 2020.05.30 | 74 |
447 | 이신우-신전 | 미주문협 | 2020.05.01 | 73 |
446 | 김호길-사막시편 | 미주문협 | 2020.04.17 | 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