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란(風蘭)의 비밀(秘密) / 연규호

2012.06.11 05:59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104 추천:4

2010년 10월 9일, 오전 10시, 서울시장이 시청광장 시상대에서 내 손에 사회봉사 상(社會 奉仕賞), 트로피를 직접 건네주었을 때, 나는 번쩍거리는 은빛 트로피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높이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순간 나를 향한 박수소리와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었는데, 아직도 내 귓속, 고막 뒤에 있는 달팽이관에서 왕왕왕--, 울리고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선(善)한 사마리아사람(Good Samaritan)이라고 대서특필해준 신문 방송과 티비(TV)를 통해 비춰준 뉴스가 아직도 생생하게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는, 2010년 10월 9일 오후 6시. 내가 번쩍이는 은빛 트로피를 두 손에 받쳐 들고 홀로 서 있는 이곳은, 특별한 목적도 없이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영등포역이 가깝고,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달리는 자동차들로 빼곡한 경인로(京仁路)가 지척에 있는 곳. 하급 경찰관들이 신경질을 부리며 24시간, 연중무휴로 근무하는 영등포 경찰서 파출소가 코앞에 있는 '영등포 쪽방 촌'의 한 외진 골목길이다. 오후 한 시가 되면서부터 구름이 몰려오더니 궂은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으며 어둠이 점점 다가오자 여기저기에서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낮잠을 자다가 깬 젊은 윤락녀들이 기지개를 켜며 먹이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좁고 냄새나는 골목길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하면 검은 옷에 검은 안경을 쓴 험상궂게 뵈는 기둥서방 녀석들이 가끔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바쁘고 요란한 쪽방 촌의 저녁 영업시간이 가까워진 듯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라다본 쪽방 촌의 좁고 외진 골목길, 어제까지도 켜졌던 가로등이 오늘따라 들어오지 않아 주위가 캄캄해 보였으나 반쯤 빠끔히 열린 판잣집 문틈으로 나이 든 아주머니와 젊은 색시가 고구마를 먹고 있는 모습이 희미한 전깃불에 비쳐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내게 들려오는 작고 가는 그리고 울면서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분명히 가냘픈 어느 여인이 흐느껴 부르는 유행가의 애틋한 가사를 들으며 나는 내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그 찰라 나는 내 콧속으로 스며드는 천리향, 풍란(風蘭)의 향긋한 냄새를 맡는 듯했는데 마치 코카인 주사를 맞고 환청(幻聽)과 환각(幻覺) 속에서 허상(虛像)을 바라보며 두 손을 뻗쳐 허우적거리는 약물 중독자처럼 내 몸과 마음을 도저히 가눌 수가 없다. * 여기 영등포 쪽방 촌은 물론 온 서울사람들은 나, 김가형(金加亨) 목사를 불러 가련하고 힘없는 쪽방 촌의 윤락녀(淪落女), 독거노인, 불량배 그리고 장애자들을 몸과 마음으로 돕는 진정한 이웃이요 친구라고 불러 주었다. 그러기에 오늘 나는 그 선행이 높이 인정돼 서울시장이 직접 수여한 '사회봉사 상'을 받았다. '김가형 목사는 천사요.'라고 사람들은 나를 칭찬해 주었는데, 남들 눈에는 천사처럼 보이겠지만 오늘까지 오기에 나는 너무나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살아온 불행했던 과거가 있다. 가로등이 꺼진 '저기 저 판잣집'은 내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나의 보금자리였다. 오늘 저녁 나는 저 판잣집으로 달려가 많은 남정네들에게 시달리고 또 시달려 삐쩍 마르고 얼굴에 핏기가 전혀 없는 조순영(趙順永)이라는 여인을 품에 안고 비록 더럽고 냄새나는 이불이지만 머리까지 푹 덮고 하루 저녁 깊이깊이 모든 것을 잊고 잠들고 싶은 마음이다. '목사님? 윤락녀도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울면서 질문을 했던 그녀에게 오늘 저녁에는 사회봉사 상을 받아 대한민국이 다 알아주는 훌륭한 목사의 신분으로 확실한 대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소, 윤락녀(淪落女)도 구원(救援)을 받습니다."라고. <중략> 참으로 감사한 것은 원수지간인 조천영과 박근택의 만남이었다. 세상을 비관한 조천영이 어느 날 술에 취해 그의 쪽방에서 자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보니 온통 오물과 구역질이 나는 음식 찌거러기 속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얼굴에서 아버지, 조 목사님을 발견하였다. 그의 방을 깨끗이 청소했으며 따스한 음식을 제공해 주었다. 며칠 후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쪽방 촌을 위해 협력하는 형과 동생이 되었다. 젊은 조폭, 조천영의 도움은 나에게 천군만마를 얻는 듯했다. 이를 계기로 쪽방 촌을 위한 하루 세끼 급식을 하기로 결정했으며 조천영이 그 역할을 열성으로 전담했다. 다행스레, 조폭들과 윤락녀들이 감동을 받고 모두가 호응하기 시작했다. 1985년 나는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해에 조폭 박근택도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조폭 박근택과 조천영의 앙금을 해결하기가 힘들었지만 우리는 끝내 해결해 냈다. 누이의 인생을 망쳐 놓다 못해 죽게 한 박근택에 대한 원한과 등 뒤를 칼로 찌른 복수의 불꽃이 쪽방 촌에서 언젠가는 일어나리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교도소에서 나온 박근택은 내가 목사가 되어 이곳 쪽방 촌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으며 감동한 듯했다. 더욱이 그의 등을 찌른 젊은 조폭 조천영이 손수 밥을 퍼주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인간인가? 동물이지....아-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소서.'그는 진심으로 통회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천영에게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었다. 세상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과거의 조폭, 조천영과 박근택은 이제 여기 쪽방 촌, 풍란 교회에서 그들이 착취하고 피를 빨아 먹었던 그 윤락녀, 포주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좋은 친구로 변했으니.... 돌이켜 보면 나, 김가형 목사가 사회봉사상을 받게 된 것은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내 뒤에서 나를 도와준 전과자, 노숙자 윤락여성, 장애인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 2010년 10월 9일 저녁, 쪽방 촌에 내리던 궂은비가 점차 걷히기 시작하니 희미한 백열 가로등이 여기저기에서 더 밝게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기 구석진 골목길, 가로등이 꺼져 유독 더 컴컴한 '저 판잣집'은 30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컴컴한 '저 판잣집'에서 윤락녀, 조순영과 한 밤을 지새웠던 30년 전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분명히, 풍란의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떠오르는 '그 윤락녀'의 얼굴은 핏기가 없는 창백한 병자의 모습이었다.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스며드는 사랑의 불길......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리고 멀리 거문도 암벽에서 풍겨오는 풍란의 향기에 취하고 말았다.- 오른 아침 서울시장으로부터 받은 사회봉사 상 트로피를 풍란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그 윤락녀의 방에 보관하기로 마음을 먹고 불 꺼진 그 판잣집을 향해 한 발작 한 발작 걷기 시작했다. 행복했던 그 윤락녀와의 하룻밤을 생각하면서, 풍란의 향기를 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