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꼬리 / 유봉희

2011.08.31 14:12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338 추천:3

그때 고래가 나타났다 수평으로 활짝 펴지는 꼬리 천천히 물속으로 떨어지는 꼬리지느러미 조각조각으로 흐르는 빙하 속을 꼬리로 물레방아를 돌리며 고래 한 마리가 침실 발코니 앞으로 오고 있다 여행객들이 스탠드바나 다이닝 룸에서 저녁을 기우리고 있을 때 멀리서 올린 꼬리가 안테나였는지 모자도 없이 바람에 날리는 한사람을 읽었나 보다 아득한 시간 넘어 바다로 들어간 그가 그의 꼬리로 가장 크고 오래된 책장을 넘긴다. 이 두근거림을 그냥 침묵이라고 말 해 버릴 수는 없겠다 이제 알 것도 같다 왜 자꾸 바다로만 가고 싶었던지 나에게 낮선 바다란 없었다. 이제 어두워 가는 빙하 위에서 몇 천 만년만의 해후를 안타가운 10초의 꼬리로 만났다. 그래, 세상 밖에서도 내가 진정으로 만나는 것들은 머리가 아닌 꼬리였었지 내일 아침 이 배는 항구에 닿고 바다를 떠난 오랜 후에도 고래는 바다를 넘듯 시간을 넘어 나에게 올 것이다 그리움 또한 꼬리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