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정국희
2011.11.01 08:42
부유하는 미역줄기처럼
사방팔방으로 흔들리다 녹초된 저녁
돈벌이 끝내고
대저 목숨이 무엇이관데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한 끼 식사 앞에 정중히 않는다
해바라진 대접 속
서리 맞은 무 우려낸 듯
희멀건 동치미 국물에
굴수발이 남실하게 담겨 있다
음식이 앞에 놓이면 착해진다 했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고 있는 눈꺼풀 속으로
한소절 연한 마음이 파고들고
아직 용서 못할 일 무엇일까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그토록이나 아득하고 깊은 동굴을 빠져나와
여간내기가 아니게 살고 있는 지금
온종일 작은 깃발로 쉴새없이 나부꼈어도
살아있어 감사합니다
아멘
아무리 거친 것도 물에 담기면 순해지 듯
기도 앞에서 면처럼 부드러워진 나
숙연해진 면을
물살 일지 않게 가만가만 젓는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25 | 이선자-바위 | 미주문협 | 2019.06.01 | 73 |
424 | 안서영-야생화 들녘 | 미주문협 | 2019.05.16 | 70 |
423 | 조옥동-속셈 | 미주문협 | 2019.05.03 | 123 |
422 | 류명수-흙으로 만나다 | 미주문협 | 2019.04.17 | 62 |
421 | 오연희-박제의 시간 | 미주문협 | 2019.04.01 | 99 |
420 | 현원영-인생길 | 미주문협 | 2019.03.14 | 98 |
419 | 전희진-노인 | 미주문협 | 2019.03.01 | 92 |
418 | 이일초-식탁에 샘이 있다 | 미주문협 | 2019.02.19 | 83 |
417 | 안규복-작대기 하나 내리긋고 | 미주문협 | 2019.01.28 | 79 |
416 | 친구-김병현 | 미주문협 | 2019.01.19 | 74 |
415 | 최혜령-반세기를 넘은 화해 | 미주문협 | 2019.01.06 | 77 |
414 | 정용진-여백(餘白) | 미주문협 | 2018.12.30 | 66 |
413 | 고현혜-무엇을 노래하든 | 미주문협 | 2018.12.20 | 97 |
412 | 장정자 시인-자카란타여! | 미주문협 | 2018.12.01 | 119 |
411 | 최용완-숨소리 | 미주문협 | 2018.11.15 | 65 |
410 | 신현숙-가을 하늘에서 만나는 것 | 미주문협 | 2018.10.30 | 436 |
409 | 이윤홍-감나무 [1] | 미주문협 | 2018.10.17 | 538 |
408 | 미주문학상 당선작-분수 | 미주문협 | 2018.10.01 | 124 |
407 | 박복수-우쿠렐레 | 미주문협 | 2018.09.16 | 73 |
406 | 이일영-벼랑의 소나무 | 미주문협 | 2018.08.31 | 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