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로록(戒老錄) / 손용상

2012.05.21 08:31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137 추천:1

일본의 유명 여류작가인 소노 아야꼬 여사는 그녀의 에세이집인 계로록(戒老錄)에서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멋지게, 곱게 늙어가는 몇가지 덕목을 일깨워줌으로써 많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분의 얘기는 몇년 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글에서도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스님은 “연륜이 깊어지면 우선 얼굴에 주름이 지지만, 그 세월이 보람 없고 여생에 흥미를 잃으면 사람은 얼굴보다도 영혼에 주름이 생기기 마련이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꾸준히 탐구하고 머리가 녹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남기시기도 하셨다. 생각을 모아 소노 아야꼬 작가의 말을 들어본다. 그녀는 우선 이러한 덕목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인생의 결제를 잘 해두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살아가는 동안 저질러졌던 매사를 잘 마무리하라는 뜻이겠다. 사람 속에 숨어있는 온갖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주변에 베풀지도 않은 채 찌적찌적 주머니에 꿍쳐 놓고만 있으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혹 감춰두었던 곡간의 재물이라도 잃어버리면 속으로 여간 배앓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기에 이 항목은 꼭 유념 되어야 할 덕목이라고 본다. 두번째로는 푸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일테면 맨날 남의 탓만 일삼지 말라는 얘기다. 일상에서 “메아꿀바(내 탓이오)”를 접합하면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없어진다. 세번째로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쓸데없이 남을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왕년에 우리 집 장롱 속에 있던 금송아지”는 사람들에게 짜증만 유발시키고, 습관적인 참견은 사람들간 시비를 몰고 오기 때문인 것이다.. 네번째로는 남이 주는 것, 남이 해주는 것에 대한 의타심을 버리라고 일렀다. 그야말로 이것은 빨리 버리지 않으면 나중 배 곯을 때 하다못해 라면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홀로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훈이라 하겠다. 다섯 번 째는 젊음을 시샘하지 말고 여생을 즐기는 혼자만의 진짜 삶을 스스로 찾으라고 했다. 이는 앞서 말한 법정스님의 얘기처럼, 머리를 녹 쓸지 않게 함으로써 영혼에 주름을 지우지 말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것이 그런대로 지켜지고 그리고 혹 그런 삶을 살아가던 중에라도 몸이 불편해지거나 아니면 건강을 잃어 영혼이 육신을 떠날 날이 다가오면, 그때는 가족들에게 기대지 말고 차라리 직업적인 도우미를 구하여 뒷 처리를 부탁함으로써 가족들에겐 항상 좋은 인상만 간직 하도록 하라고 권하였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이렇듯 보람없이 늙어감을 경계하고 경책하며 지난 삶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나머지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자 하는 것- 아마 요즘의 60세 후반을 넘기는 분들의 대다수는 마음속으로 이런 “마무리”를 꿈꾸지 않을까 싶다. 그러자면 나 자신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걸 털어내고 일상을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서랍 곳곳에, 옷장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 더미를 내다버리지 못하고, 아울러 내속에 있는 80% 이상의 허접스러운 생각도 정리하지 못한 채 지금도 일상에 배어있는 옛적의 그 되삭임 질로만 남은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그냥 답답할 따름이다. 이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북망 열차에 오르지나 않을까… 요즘은 가끔 마음이 조급해지는걸 보면 이제 계로록을 읽고 새삼 공감을 가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