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했나요? / 이영숙

2011.09.26 14:56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276 추천:5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번호가 낯설어 잠시 망설이다 받았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의 전화를 받기 망설이는 습관이 있기에. 뒤늦게 신문을 보았다며 문예공모 입상에 대한 축하전화였다. 그동안 한 번도 통화를 하거나 연락한 적이 없던 문인협회 회원이었다. 가까이 지낸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그 먼 거리에서 축하를 보내주는 성의가 너무 감사했다. 열심히 글 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격려도 함께 곁들여 주었다. 잠시 축하의 말을 한 후에 그분의 질문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미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죠?” “아니요, 십년이 훌쩍 넘은걸요.”라는 내 대답에 “주소를 보니 아파트에 살고 계신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순간, 무슨 말인가 하여 잠시 머뭇거리다 ‘아!’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아파트에......?’라는 의미를 깨달았다. “십년이 넘었는데 제가 능력이 없어서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라고 웃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내 주소가 아직도 아파트구나.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미국에 오자마자 바로 맞벌이를 시작하여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돈을 벌었다. 삼 년 동안 열심히 일만 하며 그 흔한 햄버거 하나 사먹지 않고 돈을 모았단다. 고기를 사먹기도 아까워 소고기 돼지고기는 먹을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기에 미국에서 가장 싼 닭고기만 계속해서 사먹었단다. 그 아내는 닭고기로 요리하는 것을 연구하여 거의 닭고기 요리사가 될 만큼 되었다고 했다. 굽고, 조리고, 삶고, 튀기고, 볶고, 찌고...... 입에서 닭 냄새가 날 만큼 먹었다니 알만하다. 그 결과로 그 가족은 삼 년 반 만에 제법 큰 집을 장만할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 짧은 기간에 그렇게 큰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난 정말 능력이 없다. 올해로 미국에 온지 12년. 아직도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니, 아파트 정도가 아니다. 싼 곳을 찾고 또 찾아서 지금 이곳에 왔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어디 그뿐인가. 이렇게 오랫동안 미국에 살아왔지만 난 정말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마켓에 가서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골라 담지 못한다. 어느 것이 더 싼 가 가격을 따져보고, 이것저것 실속도 비교해보고 나서야 물건을 하나 골라 쇼핑카트에 담는다. 그 긴 세월동안 아파트만 전전하며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미국에서의 내 삶이 실패라고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자부심이 내 가슴속에 가득했다. 한국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글을 쓰게 되었다. 거기다 남들이 칭찬할 만한 상을 두 번씩이나 받았으니. 그것만으로 성공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왔다. UCLA에 있는 백인들이 90%가 넘는 합창단에서 그들과 함께 노래하며 일 년에 서너 차례 UCLA 음악 홀과 디즈니 홀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그 합창단에 들어가기 위한 오디션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가 본 사람만 알 일이다. 특별한 은혜가 없었다면 나 같은 능력으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돈이 없어도 불행하지 않고, 좋은 집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비싸고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어 안달해본 적 없고, 몇 백 달러하는 티셔츠 입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느끼지 않는다. 수천 달러한다는 명품 백을 들고 있어도 내가 갖고 있는 몇 십 달러짜리와 그 가치를 구분조차 하지 못한다. 신은 사람들에게 가지가지 재능을 주었다. 각자는 자기가 받은 능력만큼 살 일이다. 모두가 다 돈을 버는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찌 땅덩이 넓은 미국에 왔다고 모든 이들이 고래등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돈을 벌 능력이 없지만 신은 나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했고, 음악을 가까이 하며 작게라도 그 재능을 나타내게 했다. 그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니던가. 이렇듯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가 한통의 전화를 받은 후 혼란에 빠졌다. 이제부터 혹시라도 누가 “당신은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