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살아있는 불씨 / 조옥동

2011.03.27 14:40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580 추천:2

대재앙은 다시 한 번 인간의 한계를 일깨웠다.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과 쓰나미로 원자로의 방사능 유출이란 가공할 피해를 생각하며 이웃 한국은 물론 수천만리 떨어진 미국도 두려워한다. 이번 재난의 고통과 상처는 꽤 오래 우리 주위에 머무를 것 같다. 공포의 무거운 사슬도 결국 풀어지고 눈물 젖은 자리에서 두려움을 털고 그들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죽음과 상실의 편에 서면 망각이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전쟁이나 분쟁은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편을 향하여 폭력이나 힘의 수단을 사용한다. 싸움은 피해를 남긴 채 언젠가는 승자와 패자로 끝나지만 자연의 재해 앞엔 인간은 무력해지고 허탈해진다. 자연은 삶의 터전이 되고 삶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감성을 자극해 우리의 희로애락까지 다스려 베풀다가도 한 번 화를 내면 너무도 무섭다. 지진과 쓰나미 홍수와 태풍 화산 폭발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류 뿐만 아니고 생명이 있고 없고 구별없이 품고 있던 모든 존재를 한낱 무용지물로 만든다. 자연의 분노는 선과 악을 추려내는 기준도 사랑과 증오의 구별도 없이 함께 엎어뜨린다. 그 냉혹함 앞에 달려들어 저주할 대상이 없어 망연할 뿐이다. 한반도와 일본의 동해안을 통째로 이동시키고 지구의 축을 2.5cm 기울게 만든 지진의 위력은 인류가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와 전자 프로그램으로도 당해낼 수가 없다. 수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계를 관찰하는 천체망원경이나 바다밑 수천 미터 아래 유전을 찾아 기름을 퍼 올리는 장비로도 언제 어디서 어떤 크기의 지진이 일어날지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함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다. 자연이 숨겨 놓은 비밀을 누가 찾아 낼 수 있단 말인가. '시크릿'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시크릿 가든 시크릿 베이비 시크릿 스토리 등 현대인은 비밀을 좋아한다. 정보화 시대는 대부분 X레이 앞에 선 존재 같아서 비밀을 간직하기 어렵고 전에는 남이 알면 부끄러웠던 일도 자유와 개방 사회로 발전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는 세상이다. 문명의 공간을 바삐 움직이느라 비밀을 간직할 여유가 없기에 역설적으로 비밀이란 뉘앙스 자체가 흡인력이 있다. 인간의 가슴을 누가 시크릿 챔버라 했던가. 영혼이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사람은 물론 공중을 나는 새까지 그 비밀의 방 속에는 '사랑'이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전쟁과 재난으로 부서지고 나눠지는 불행의 역사에도 인류의 멸망이 없음은 그 가슴속에 살아있는 작은 불씨 사랑 때문일 것이다. 1988년 옐로스톤국립공원 대화재 후 수색원들이 한 나무 밑 잿더미 속에서 몇 마리의 어린 새를 발견했다. 어미는 이미 숨져 있었다. 그 날개 밑에 새끼들을 모아 품고 뜨거운 화염 속에서 어린생명을 살려낸 것이다. 산불을 피해 훨훨 날아갈 수 있었음에도 사랑의 날개 밑에 새끼를 보호한 것이다. 일본 지진이 발생한 날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주민을 대피시키는 방송을 하다 숨진 엔도 미키라는 작은 동사무소의 위기관리과 여직원이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며 주민을 살려냈던 그는 일본인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숨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