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과 무릎 사이 간판 나붙은 단성사 배경이 70년대 흑백영화처럼 침침하다 대부분 영어권인 젊은 1.5세들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술을 따라 마신다 둘러보니 주점의 컨셉이 보시기에 노란주전자다 음악은 디지털 팝송, 분위기 묘한 퓨전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우리는 더듬거리며 안주를 집고 오랜만의 회포는 소란스런 젊은이들의 치기에 묻히고 만다 주거니 받거니 들리지 않는 속내를 탁주로 대신해 마시는데 어느새 나는 빈 주전자 들고 충남 당진군 면천면 문봉리 2구 어디 쯤, 노랗게 고개숙인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심부름값으로 주막 술 받아오며 홀짝홀짝 입대고 마시면 달큰한 바람과 함께 신작로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했다 두어 모금의 취기로 벼이삭 그늘에 설핏 잠들라치면 고무다라이 주위에 둘러 앉은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장날 같다 구수한 정담 한 사발씩 나눠 마시며 갑갑한 시간을 뉘이면 안개 속 같은 나날도 걷히고 체증같은 빚더미도 내려앉고 껄껄 허탈 웃음 지어도 내일이 두렵지는 않았다 노란주전자 하나면 아저씨, 아줌마, 더벅머리 총각. 새탬말 욕쟁이 할머니...... 나직나직한 사람들이 마주보며 같은 생각, 같은 걱정 ,같은 웃음, 그날이 그날이어도 서로 보듬고 나누고 끌어당기는 유심한 마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