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 / 노기제

2012.03.19 07:45

관리자_미문이 조회 수:217 추천:3

지구촌 어느 곳에 살던지 같은 공간을 공유 할 수 있는 사이버세상. 그중에 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을 이끌어 주는 동기동창 사이트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활력소 역할을 한다. 물론 한국에서 주관하고, 한국에 있는 동창들이 주로 애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극소수 외국에 거주하는 동창들에게는 얼마나 감격스런 공간인지 알리고 싶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 사이트를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몸과 마음은 이미 타임머신을 탔다. 까마득한 옛 교복차림의 사춘기 적 학생으로 단숨에 변하는 나, 너, 그리고 친구들...... 아무래도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이니 컴퓨터에 서툴다.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있지만 실행하기엔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그중에 소수가 컴퓨터에 익숙해서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더러는 소식을 올리며, 사진이나 음악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자기가 잘 하는 분야를 올려서 친구들과 나누며 의견을 듣기도 한다. 참여하는 친구들 보다는 발뒤꿈치 들고 살살 들어 왔다가, 눈으로만 즐기고 살짝 나가는 소극적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자기가 보고 싶던 동창의 사진이라도 뜨면, 소리 없이 다운로드 해서 자신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저장 해 놓곤 수시로 얘기하고, 만남을 즐긴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다. 어느 날 우연히 가까운 친구와 전자메일을 주고 받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요즘 많이 아프단다. 그런 사실을 단숨에 여러 친구들에게 알릴 방법은 역시 웹사이트에 소식을 올리면 된다. 그런데 그게 망서려 진단다. 어느 친구가 댓글을 달 것인가. 얼마나 많은 댓글이 달릴 것인가. 혹여 비난하는 친구도 있을 터, 그런저런 것들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아예 살짝 들어가, 보고 읽고 흔적 안 남기고 시침 떼고 나온다는 얘기다. 맙소사. 이 남자 동창은 매우 활발하게 글을 올리던 친구다. 문체도 매끄럽고 묘사가 절묘해서 다들 그의 글을 기다린다. 물론 댓글도 많이 달리는 편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런 자잘한 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글 올리기를 주저하고 있다니 그렇담, 누가 이 사이트를 장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안 보이던 친구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른 친구들이야 오죽할까. 그리고 보니, 날이 갈수록 웹사이트는 눈에 띄게 썰렁 해 진다. 안타깝게 여긴 두 세 명이 바쁘게 여기저기 뒤져서 좋은 글을 찾아 올리고, 음악을 퍼다 올리고, 가끔 때 맞춰 카드를 올리는 친구, 그 정도다. 다행히 동아리 모임이 있은 후, 모임 후기와 사진이 올라온다. 너 나 모두가 반기지만 여전히 허기가 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친구들에겐 새 소식이 턱 없이 부족 하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던 안타까운 순간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왜 딴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야 했나. 잘한 일엔 꼭 칭찬 듣기를 기대하고, 글 한 편이라도 세상에 내 놓을 땐 숨죽이고 주위 눈치를 살핀다. 누가 읽었을라나? 어째 조용하지? 칭찬이 아니라도 읽은 티나 내 주면 좋겠다. 머뭇거리다 혹 읽었는가 물어보면 “아 참, 내 정신 좀 봐. 얘기 해 준다 하군 깜빡 했네. 응 읽었어.” 아니면, “아니, 어디 났는데? 못 봤는데.” 뭐 그 정도의 반응이다. 아무도 내가 기대하는 만큼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워낙 바쁘게 사는 세상에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너 잘났으면 잘났지, 그게 나와 뭔 상관인데?” “세상에 신경 쓸 일이 한 둘인가. 먹고 살기 바쁜데, 여유 있는 사람들 일엔 관심 없어.” 이 정도가 돌아오는 양상이다. 그 동안 맘 조리며 초조하게 기다렸던 에너지가 아깝다. 애초부터 남의 표정, 남의 언어, 남의 반응에 눈 감았어야 한다. 내가 뜻을 두고 하는 일에 혼절할 만큼 최선을 다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끝을 내야 한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반응에 대해선 일절 기대를 걸면 안 된다. 좀 더 나은 다음을 위해서, 평가를 들어 볼 필요도 있지만, 대부분 관심 분야나 전문 분야가 다르다면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자신 있게 살자. 언제까지 주위 반응을 두려워 하며 노심초사 할 것인가. 내가 사는 삶은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공개하고 싶어서 나의 어느 부분을 열어 놓았다면, 그걸로 끝내자. 뭔가를 기다릴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 그냥 내가 잘 했다고 나를 칭찬하고 내가 나를 인정 해 주자. 생각을 정리해서 말은 잘 했지만, 글 한 편 써서 올려놓고 자꾸 로그인 한다. 아래쪽으로 나 보다 먼저 글을 올린 친구는 조회 수가 세 자리다. 난 한 번도 세 자리 수를 기록한 적이 없다. 은근히 비교 되는 입장이 되어 기분 언짢다. 그 친구 글엔, 댓글도 주렁주렁 숫자가 많아 진다. 그래도 내 글은 열어 보는 친구가 아주 적다. 좀 창피하단 생각도 든다. 이러지 말아야지. 함께 나누고 싶어 올린 소식이면 원하는 사람이 들어와 읽을 것이고, 필요한 사람이 그 내용을 고마워 할 것이고, 단 한 사람이면 어떠랴. 나와 같은 마음이 되고, 고개 끄덕여 인정 해 주고, 함께 웃을 수 있고, 또 함께 아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 해 하고, 기뻐 해야 할 일이다. 성격상 댓글로 표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바빠서 댓글을 달지 못할 수도 있고, 가슴에 감동을 받았지만 소중히 간직한 채 돌아 설 수도 있다. 그냥 따스하게, 들러 간 체온을 느끼면서 나름대로 행복 해 지자. 초조한 마음 버리고 평안하게 친구들과의 공간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