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연 단상 / 최문항

2010.05.17 14:36

미문이 조회 수:944 추천:1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양은 현재의 10% 정도면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남겨서 버리는 양의 음식이면 북한사람들의 호구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양이 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한 적도 있다. 우리들의 욕구 중에 식욕만큼 참아 넘기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불어나는 체중을 걱정하면서도 오늘만 실컷 먹고 내일부터 절식하겠다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대한 잔칫상 앞에만 서면 또다시 오늘만 하면서 접시에 더는 담을 수 없을 만큼 욕심을 실어 나른다. 옛날 어른들께서는 잔칫날에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았었나 보다. 과년한 딸을 둔 친구에게 하시는 말씀이 “언제 국수 먹여 줄건 가?” 정도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잔치는 어떠한가? 물론 직접 음식을 안 만들고 유명한 식당에 주문하여 육, 해, 공을 총망라하고도 부족해서 중국식 일본식에 할 수만 있다면 세계 각국의 별미들을 총동원하기 일쑤다. 호텔에서 피로연을 할 경우에는 보통은 한 시간 이상을 식장 밖 통로에서 기다리며 잘 마시지도 못하는 양주잔을 냅킨 종이에 돌돌 말아 들고 아주 조금씩 감질나게 입질을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식장 문이 열려 주기를 기다리며 시장기를 달래야 한다. 이때쯤 되면 신랑 신부가 연회 복으로 갈아입고 리셉션 준비를 마치게 된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정해진 번호를 찾아서 자리에 앉고 나면 한국어가 서툰 사회자가 젊은이들 위주로 순서를 진행한다. 웨이터들이 다가와서 생선이나 육류를 구분해 주문을 받아간다. 짓궂은 신랑 친구 녀석들이 빈 유리잔을 두드려 소리를 내면 신랑 신부는 수줍은 듯이 살짝 뽀뽀를 해 보인다. 샴페인 토스도 하고, 드디어 채소 살라드가 나오고 주문한 대로 생선이나 스테이크 메인 디쉬를 웨이터들이 정중하게 날라 다 주면 하객들은 몹시 시장하지만 품위를 지키면서 칼질을 시작한다.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 사진을 편집한 비디오를 보여 주면서 축하 케이크가 나오면 잔치는 무르익어간다. 젊은이들이 소음에 가까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하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게 된다. 그러면 중국식 피로연은 어떠한가? 하객들이 식장에 다 입장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를 선두로 양가의 부모님들과 친척들이 입장하여 자리를 잡으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랑 신부의 간단한 인사가 있은 후에 십수 명의 웨이터들이 두 줄로 입장하여 첫 번째 요리를 각 테이블마다 갖다 놓는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서두를 것 없이 적은 양의 음식을 자기 접시에 옮겨 담고 아주 천천히 우아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왜냐하면, 앞으로 맛있는 요리가 여덟 번은 더 나올 터이니 끝 부분의 요리까지 즐기려면 적당히 안배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순서를 정해 놓고 보니 여흥을 주도하는 사회자도 여유가 생기고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에서도 시간을 가지고 정성을 더 기우려 따듯하고 정결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어서 서로 좋을 것 같다. 머리 큰 생선 튀김(Steamed Whole Fish)이 나올 때쯤이면 슬슬 일어나도 별 실례가 안 되는 것이 그때쯤이면 얼추 잔치도 끝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은 양식과 중국식의 음식 잔치를 칭찬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우리 한국식 뷔페 문화의 폐단을 비판하고 싶어서 글을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까운 친구나 교회 분들을 모실 때에는 으레 집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했고 또 상투적이나마 주부의 음식 솜씨가 대단하다고 칭찬도 주고받았었는데 요즈음은 “어느 뷔페집에서 맞춰 왔느냐?”라고 스스럼없이 물어봐도 크게 실수하는 것 같지 않다. 음식이 그 집안의 전통과 문화를 말하고 체질을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어진 것 같아 유감이다. 잔치가 크면 클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뷔페에 나온 음식의 종류를 세어 본 적이 있었다. 무려 23가지의 음식을 정성껏 차려 놓았는데 하객들은 나눠 준 10인치짜리 접시에 어떻게 담아 가야 할지 난감해진다. 음식을 선별하여 조금씩 집었는데도 어느새 접시가 가득하다. 하는 수없이 고기 위에 김치를 놓고 떡까지 올려놓고 보니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마치 잔칫집에 몰려와서 각설이 타령을 질펀하게 불러주고 나면 인심 좋은 부엌 아주머니가 큰 바가지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섞어서 아무렇게나 담아준 각설이 밥그릇 꼴이 아닌가.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어떻게 접시에 고름 하게 담아가고 접시를 바꿔서 두 번 올 수 있겠는가? 점잖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 분들이 겹겹으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산타아나 시청 앞에 줄지어 늘어선 홈레스피풀처럼 보였다면 좀 과장된 표현이었을까? 좀 지나친 경우에는 결혼 기념사진 찍고 신부가 옷 갈아입느라고 조금 지체하면 앞서 식사를 끝낸 분들은 벌써 자리를 비워 주고 서성거리다가 신랑 신부에게 축하 인사도 제대로 못 해주고 떠나게 된다. 결혼을 축하해 주려고 왔는지 아니면 값 비싼 한 끼 저녁을 해결하려고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구분이 잘 안될 때가 있다. 요즈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문제에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능청을 떠는 것을 보았다. 국가가 나서기 전에 우리 교포 사회에서 지혜를 모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요구하셨던 것처럼 “언제 국수 한 그릇 먹여 주려나?” 정도로 말이다. (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