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9 17:31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중요한 시기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러다니게 만든 책이 한권 있다. 그 책은 내가 고등학교 영어 시험을 5교시에 맨 왼쪽 창가 줄에 앉아서 보는데 졸게 만든 책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한번도 이 책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를 비록 세상의 명예와 돈버는 기회를 잡지 못하게 하고, 항상 기쁨보다 슬픔에 젖에 있게 만든 책이었다. 한동안 얼마나 나는 이 책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 어려운 주인공 이름도 수 십년을 지나도 잊지 않았다. 나는 많은 것들이 허술하지만 가장 허술한 것이
기억력이다. 기억력이 좋았으면 나도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다. 아뭏든 미국에 온지 15년에 넘어가는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읽기가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만큼 순수함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주 조금씩 읽다가 몇일 전에 책상 옆에다 놓고 가까이 하면서 잘 읽어가고 있다. 쓴 고통이란 지혜의 보약같다. 오늘 밤 이 대목에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어서 그대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않고, 쓰다듬어 주는 사람에게 보낸다면 조금은 오늘 밤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입구에서 허리를 굽혀 계단 안을 신기한 듯이 들여다 보며 생각에 잠긴 어두운 표정으로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대는 소중한 나의 님
함부로 나를 때리지 마세요.
가수의 가냘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스콜리코프는 그 노래가 한없이 듣고 싶어졌다. 마치 그것에 그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듯싶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채수동 옮김, 홍신문화사, 2003,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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