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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잘 죽을 권리

2017.12.29 13:19

라만섭 조회 수:68

 

잘 죽을 권리

 

사람들은 잘살기 위하여 온갖 정렬을 쏟으면서도 정작 삶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잘 마무리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잘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잘 죽고 싶은 욕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을 권리도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에 가서 끝맺음을 잘 매듭짓는 일(Well-Dying)’이 인생을 잘 사는 길이 되지 않을까.

 

태어나는 일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예외 없이 다 죽게 마련이다. 그런데 태어남과는 달리 인간의 죽음에는 선택이라는 예외가 있는 것을 본다. 이런 저런 사연을 간직 한 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가끔 주변에서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회복의 가능성 없이 임종을 눈앞에 둔 말기 불치병 환자들의 경우 이다. 대부분의 그들 에게 있어 숨을 거둘 때까지의 매순간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가능한 대로 이 같은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품위 있는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사회적 도리가 아니겠는가 싶다. 이것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Dr. Jack Kevorkian을 기억 한다. 화가,작가, 작곡가로도 활동한 인도주의자인 그는 1990년 당시 미국에서 불모지대 이었던 안락사 논쟁에 불을 지핀 당사자 이다. 그는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고통 없는 죽음을 도왔다는 이유로 9년간 옥고를 치루고 난후 몇 년 전에 타계 했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취지에는 차이가 없지만, 명칭과 방법에서 약간 다른 접근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안락사요 또 다른 하나는 존엄 사 이다. 안락사(Euthanasia)라는 것은 원래 고통 없이 죽기를(자살) 원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적극적으로 약물 투여를 함으로써 자살에 협조 한다는 취지이다. 미국에서는 오레곤을 제외한 다른 주에서는 이를 불법적인 살인 방조행위로 규정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와 스위스 에서는 정식으로 합법화 된 것은 아니지만 묵인 하는 상태이고 네덜란드와 벨지움에서는 합법 행위로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사형수 에게도 안락사 방법을 선택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화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있어온다.

 

한편 존엄사 라는 것도, 안락사와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고 하겠다. 그래서 소극적인 안락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굳이 차이점을 지적 한다면 존엄사의 경우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 없이 투약도 하고 의료행위를 거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유언장에 명시된 대로 단순한 생명 연장 장치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유럽과 일본에서는 그의 필요성을 인정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이미 3개주에서는 합법화 되었고 캐리포니아를 포함한 20여개주 에서도 준비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렇듯 죽을 권리는 살 권리와 함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오늘에 와서 활발히 진행 중에 있음을 본다. 종래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일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해 왔다. 생사 문제는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치 기준은 기성 종교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온 것인데 그것이 빠르게 변해 가는 오늘의 현실을 대변 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죽음의 질도 삶의 질 만큼 중요하다. 고통 없는 편안한 마지막은, 후회 없는 선택으로 남을 것이다. 리빙윌(Living Will--Directives to Physician)을 준비해 놓는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사회가 간여할 일이 아니다. 결국 잘 죽는 삶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될까. 많은 중증 환자가 부질없는 생명 연장 장치에 의존한 채 마지막 순간을 고통 속에 마지하게 될 때의 의료 행위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직 고통의 연장 일뿐이다. 모두가 되새겨 볼 일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 하는 사람의 잘 죽는 삶의 자세를 매우 간략하게 소개 하면서 이글을 끝맺을까 한다. 스캇.니어링(Scot Nearing)1883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펜실바니아 대학 출신으로 최고의 지성과 양심을 겸비한 당대의 유수한 경제 학자였다. 평화주의자, 이론 사회주의자로서의 이상을 펴보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두터운 현실의 벽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과격한 사회운동가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후 그는 학계를 등지고 손수 일군 메인주의 자작 농장에서 사랑하는 아내 헬렌과 더불어 60여년을 행복하게 살면서, 전국에서 찾아드는 방문객을 맞으며 강의와 저술로 사람들의 존경 속에서 겸허한 생을 살아갔다. 그를 퇴출시킨 펜실베이니아 대학은 1973년 뒤늦게 그를 명예 교수로 복권 시킨바 있다. 1983년 드디어 생명이 다해 가는 것을 직감한 그는 스스로 단식을 거쳐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순간순간을 의식해 가면서,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한 채 아내의 품에 안겨 삶의 의식적인 마무리(Conscious Leaving of Life)를 택하고 극적으로 생을 마감 한다. 100회 생일은 맞은 지 18일 만의 일이다.

 

나는 가장 이상적인 삶과 죽음의 자세를 그를 통해서 보게 된다. 진정한 용기와 슬기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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