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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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온고 지신

2018.01.05 06:30

라만섭 조회 수:100

온고지신

 

종이에서 배어 나오는 고유한 냄새 그리고 활자 속에 가득 묻어 있는 삶의 무게를 나는 좋아한다. 오랫동안 익숙해서 편안한 느낌이 든다. 신문 이야기다. 조용하게 혼자 앉아 신문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만이 가지는 즐거움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문은, 물론 전자 신문이 아닌 종이 신문 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없이는 잠시도 견디지 못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친구인 듯한 젊은 남녀 넷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아무런 대화도 없이 각자 열심히 스마트 폰을 만지고 있는 장면을 얼마전 한 식당에서 보고 삭막 함을 넘어서 왠지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몇해전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면서 내심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었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유럽 사람들은 휴대전화 없이도 별 불편 없이 생활 하는 것을 봤다. 이동 전화기의 접속이 취약하여 통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는데도 전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태연한 자세를 지키는 그들의 얼굴에서 아무런 불안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그 대신 그들의 손에는 종이 신문이나 책이 들려 있었다. 간혹 전자책(E. BOOK)도 보였다. 이런 풍경은 미국 대도시에서 보아오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한국의 사정은 미국 보다 더 심하다고 듣고 있다. 거의 하루 종일 텍스팅을 주고받거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게임등 동영상을 들여다 보면서 소일 하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듣고 있다. 운전시의 스마트폰 사용이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된다거나 심지어는 암 발생과 관계가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과 밀착된 생활 습관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편지의 경우도 웬만한 것은 전자 우편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우체국에 갈일이 많지 않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우표도 메일 오더로 처리하다 보니 우체국에는 소포를 보낼 때나 가게 된다. 그래도 우체부가 다녀가면 습관대로 얼른 우체통을 열어 보게 되고 어쩌다가 혹 손으로 쓴 글씨라도 발견 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까지 한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스마트 폰의 출현은, 사람끼리의 대화와 독서 시간을 빼앗아 갔다고 한다. 전자책과 종이 책을 읽을 때의 차이에 관하여 일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깊이와 집중력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전자책에 비하여 종이책을 읽을 때, 다소 느린 감은 있으나 독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홀로 종이 신문이나 종이책을 읽으면서 가지게 되는 사색의 시간은, 인간의 소통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 자신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지인들과 이메일을 통하여 소통 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아직도 전자 편지 보다는 자필 편지가, 전자 책 보다는 종이 책이, 전자 신문 보다는 종이 신문이 편하고 익숙해서 더 좋다. 더 정겹게 느껴진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마음에 없는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지만, 끝내 옛 애인을 잊지 못해 했다는 옛 소설 속의 여주인공을 떠올려 본다. 때로는 편지 부치러 우체국에 가던 시절의 추억이 낭만으로 다가 올 때도 있다. 병 주고 약주고 하는 요즘의 세태에 실증을 느낄 때도 있다.

 

세월 따라 살다 보니 나도 이제는 뉴스매체를 인터넷으로, 웬만한 소통도 인터넷으로 해결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스마트 폰이 아닌 보통(구식) 쎌폰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흔한 텍스팅이나 폰 타임도 안하고 지낸다. 전자책은 이용해 본적도 없다. 전화도 휴대폰이 아닌 유선 전화(Land-Phone)를 주로 사용 하고 있다.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도 없이 지낸다. 언제까지 이런 내 스타일이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버릴 때 버리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옛것을 간직 하고 싶은 심정 이다.

 

굳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옛것을 지켜가며 그것으로 미루어 새것을 익혀 가는 삶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애써 합리화 하려 드는 한 낙오자의 변()인지도 모르겠다.

 

 

 

 

2015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