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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당근도 아니고 채찍도 아니다

2018.01.22 12:50

라만섭 조회 수:70

당근도 아니고 채찍도 아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폭력을 써가며 상대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방법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르고 달래는 유화책을 쓰는 방법은 어떨까.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너쥐(Nudge)’의 이론이다.

 

원래 너쥐는 주의를 끌고자 옆 사람의 옆구리를 슬쩍 팔꿈치로 찌르는 행동을 말한다. ‘너쥐의 특징은 강제 수단을 동원하거나 또는 유인책을 쓰는 일 없이 상대를 부드럽게 자극 함 으로써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 하도록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 그 효과에 주목하게 된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리챠드.세일러(Richard Thaler)교수는 인간의 심리 상태가 경제 행동에 미치는 상관 관계를 밝히고 있다. 그는 너쥐효과에 주목하는 학자로 2008년에는 너쥐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동 저술하기도 하였다.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힘으로 상대를 누르거나 꼬임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행동하게끔 선택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남자 화장실 이야기 이다. 남자들이 선자세로 소변 용무를 볼 때 주변에 남겨놓는 진자리 자국이 항상 큰 골칫거리로 남는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찬가지 이다. 서서 용무를 보는 동안 호스에서 물이 한두 방울 씩 밑으로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궁리 끝에 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소변기 안쪽에 파리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았더니 예상 못한 결과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소변기 앞에 바짝 다가선 사수들은 정신을 통일하고 목표(파리 스티커)를 겨냥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열심히 실탄 사격을 퍼부은 결과, 놀랍게도 밖으로 튀어나온 소변 량의 80%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게 됐다고 한다. 네덜랜드의 어느 공항 화장실에서 있은 이야기를 소개한 박재욱 법사의 칼럼 내용의 일부를 빌렸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아름답다등의 구호 호소문 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한 방울이 나올 때 까지 온 몸을 떨어가며 쥐어 짜듯 물 대포를 쏘아대는 사수들의 노고가 드디어 주효 하였다. 버캐의 장식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너쥐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체면 손상 없이 상대의 요구에 호응하면서 실익을 챙기는 행동의 경제학적 효능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지난날 실패로 끝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의 소위 햇볕 정책의 취지도 원래는 그러한데 있지 않았겠나 하고 상정해 본다. 김정은에게도 너쥐효과가 통할 날이 왔으면 하고 상상의 날개를 펴보기도 한다. 냉엄한 국제 정치 무대에서 너쥐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까다로운 상대에게는 흔히 화전(和戰 양면 전술 또는 회유와 처벌 전술을 번갈아 시도한다. 소위 당근과 채찍(Carrot & Stick)을 말한다. 이는 원래 써커스단에서 동물을 길들이고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작용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에서 출발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자존심이라는 오기(傲氣)가 있다. 강압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정신도 오랜 진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아무런 강제성이나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일 없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선의의 동기에서 너쥐를 해온다면, 굳이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근도 아니고 채찍도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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