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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목록

2018.02.04 03:20

라만섭 조회 수:100

선물 목록

라만섭

주변의 물건들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습관이 생활화 되다 보니 간편 해서 좋다. 여기에는 선물도 예외가 아니다. 백수인 나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꼭 필요한 선물만을 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쓸 일이 없다. 소위 미니말리즘(Minimalism)을 실천 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주어서 행복하고 받아서 기쁜 것이 선물임에는 틀림 없다.


솔직히 말해서 선물에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우선 선물 대상자의 명단을 만들고 종류와 금액을 주어진 예산의 테두리 안에서 조정 하는 일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지날 때의 이야기 이다. 그 시절에는 적시 적소에 선물을 하는데 능숙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입신출세가 빨랐던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가치 체계가 선물 문화에 친숙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설이나 추석 때가 오면 눈치 보며 줄 서는 관행에 익숙하지 못한 체질인지라 거기에 나는 거부감 마저 느껴 왔던 것이다. 하물며 뇌물성 선물에 이르러서야! 미국으로 이주 한 후 서울에 다니러 나갈 때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 하고, 나는 선물을 들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선물 합리화(?)’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 예외를 만들어 가며 원칙을 깨기가 싫어서라도, 더욱 원칙에 충실하게 되었다. 생일, 기념일등 기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누라와 애들에게도 원칙은 그대로 적용 됐다. 은퇴 후 사회생활의 범위가 대폭 축소 됨에 따라, 선물 대상도 최소화된 지금은 선물 걱정에서 해방돼 홀가분 한 기분이다.

현재 나의 선물 대상은, 주로 세 명의 손자 녀석들 이다. 이제는 장난감을 선호할 나이가 아니어서(각각 17, 15,13) 덜 부담스럽다. 그래서 선물도 현물 중심에서 카드 중심으로 전환했다. 모든 선물은 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이어야 진짜 선물 이다. 어떤 때는 생각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물의 값보다도 거기에 담겨 있는 마음이다. ‘. 헨리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머리 빗과 시계줄을 서로 주고 받는 가난한 부부의 마음은 우리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선물을 살 돈이 없어 자기가 애용하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아내에게 머리 빗을 선물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판돈으로 시계줄을 선물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 오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선물로 받은 머리 빗과 시계줄은 이미 쓸모 없는 물건이 돼 버렸지만, 그대신 그들은 아름다운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미국의 추수 감사절 다음날인 소위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선물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날이다. 순수한 목적의 선물은 분명 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매 마른 세상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선물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대인 관계가 보다 부드러워 지는 경우를 본다. 단절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할 수 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소의 스트레스를 극복 하드라도 서로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교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선물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 하는데 기여 한다고 하겠다.

오래 전에 나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지인에게 몽불랑 만년필과 가죽 장갑을 선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얼마 있다가 그 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용인즉 놀랍게도 선물 품목이 마음에 안 드니 도로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엉겁결에 물건을 반송할 것을 요구 했는데, 실제로 물건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이 뜻하지 않은 일은, 큰 충격으로 남아 그 후 선물 기피 심리가 내 안에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연인끼리 주고 받아서는 안될 선물 기피 품목이라 해서, 한국의 한 결혼 중개 업소가 발표한 것을 신문에서 읽은 일이 있다. 기피 품목에는 이별의 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신발(구두)이 그 첫 번째 이다. 신발을 선물 하면 그것을 신고 떠나 버린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구두에 얽힌 이 같은 실증 사례는, 나도 젊은 시절에 한 두번 겪은 적이 있다. 신발에 더하여 손수건, , 비누, 담배 등도 목록에 끼어 있는데, 다소 이외의 품목 들이라 얼핏 이해하기 힘들다.

나더러 가장 선물로 받기를 바라는 품목을 꼽으라면, 단연 허리띠(Belt) 이다. 내 경험으로는 허리띠는 일상에서 필요를 느끼면서도 정작 쓸 만한 것을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현금도 무난 하다. 장르에 따라서 책도 좋겠다. 읽을 만한 인문계 서적이면 환영이다. 선물을 하는 입장 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허리띠나 책을 택하겠다(물론 성인 남자에 한해서). 여자에 대한 선물은 좀 골치 아프다.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가치 있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은, 선물한 사람이 손수 찍은 사진 작품이나 묵화 등이다. 애들이 직접 만들어 보낸 카드나 그림도 볼 때마다 정이 묻어난다.


선물을 할 줄은 모르고, 받을 줄만 아는 노인이 되고 싶진 않다. 받고자 하는 욕심은 버리고, 그 대신 나누는 즐거움을 아는 마음을 간직 하고자 한다. 선물은 무엇보다도 주는 사람의 정성이 그 안에 들어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무리 고가의 물건이라도 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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