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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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변하는 추도 문화

2018.03.30 07:51

라만섭 조회 수:57

변하는 추도 문화

 

은퇴 촌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이웃이 모두 나이가 들만큼 든 사람들 인지라, 세상을 하직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93세의 건너 집 할머니 아이린( Eileen)’이 돌아가셨다. 발목 부상으로 수술도 하고 그 뒤로는 심장문제로 병원에 들락날락 하더니 드디어 가고 말았다.

 

아이린3~4년 전만 하드라도 댄스나 카드놀이 등에 적극적이었다. 얼굴에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따뜻한 인상의 이웃 할머니 이었다. 씰비치에 소재한 맥도넬 다글라스(McDonnel Douglas)에 장기 근속하다가 퇴직하여 넉넉한 은퇴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안다. 아들 딸 7명을 둔 아이린, 건강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행복해 보였다. 나는 수시로 엄마를 방문하는 딸들과도 가까워졌다. ‘아이린에게는 밤낮을 교대해가며 돌보아 주는 간병인이 상주 하다시피 했다.

 

하루는 테레비 화면이 안 뜬다면서 나에게 좀 봐달라고 해서, 얼떨결에 그 집 안방에 들어가긴 했지만, 먼저 체면 구길 일 부터 걱정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전자기기 문맹이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왜 그러시지오? 어떤 문제인데요?” 하고 입을 열었다. 그냥 화면이 안 뜬단다. 내가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접속이 제대로 됐는지를 점검하는 정도가 거의 전부이다. “언제부터 안 나오죠?” “오늘 아침부터.....” “어디 따로 만진 데는 없나요?” “없는데요.” “어디 좀 봅시다대충 살펴본즉 접속에는 이상이 없는 듯 했다. 다음엔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서리다가 무심코 테레비 옆 부분을 한번 툭 쳤더니, 그 순간 깜깜하던 화면에 선명한 화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스스로의 실력(괴력)에 짐짓 놀라면서도, 태연한 모습으로 또 무슨 문제가 생기거든 알려 주시구려하면서 자리를 떴다. 고맙다는 인사말이 등 뒤에 들려왔다. 개선장군의 입가엔 엷은 웃음이 번졌다. 무료 써비스를 베푼 뒤의 흡족 감이다. 나처럼 믿음직한 테레비 기술자를 이웃에 둔 할머니의 마음은 매우 든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린의 시체는 화장 했다. 장례식이 없어서 좀 의아했는데, 둬 달이 지난 다음에 둘째딸 로리로부터 추도행사(Celebration of Life)에 와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씰비치 요트클럽 홀을 빌려서 가족과 가까운 친지와 함께 고인을 추도하는 자리였다. 생전에 크르즈 여행을 즐긴 고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해서 바다근처를 택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장례의식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을 느꼈다.

 

CL(Celebration of Life)에는 특별한 격식이 따로 없다. 판에 박힌 종교의식에서 벗어나 고인과 유가족의 취향에 따라 차분히 고인을 기리자는 취지이다. 슬픔에 잠겨 애도하는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를 떠나서, 생전에 고인과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을 가족과 친지들이 같이 나누며 고인을 추도하는 자리인 것이다. 가족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생전 고인이 즐기던 음악을 들으며 담소하는 가운데, 고인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는 가라앉은 분위기가 온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CL은 소규모의 친밀한 가족적인 자리가 될 수도 있으며, 보다 큰 모임이 될 수도 있다. 유가족의 예산규모나 고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라고 한다. 보통 CL이 치루어지는 장소는 교회나 장례식장이 아니고, 홀이나 야외정원 또는 친구의 집이나 해변 가나 기타 고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 C.L.의 시기는 사망 직후가 될 수도 있고 또는 먼 지방에서 참석하는 사람을 고려해 신축성 있게 몇 개월 후로 미루어 계획할 수도 있다. 사회(司會)의 형식에서도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다. 편 한대로 처음과 끝 부분에만 종교 의식을 가미 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 중심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보통 CL행사에 준비되는 것으로는 간단한 팜프렛, 간식, 음악, 비데오, 방명록 등이 포함된다. CL은 흔히 고인과의 추억담이 담긴 글을 풍선에 달아서 하늘로 띄워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CL의 특징은 우선 절차와 격식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유가족이 진행방식(종교의식여부)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전통적인 절차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행사가 된다. 매장이 아닌 화장의 경우에는 묘지도 필요 없다. 장례문화와 더불어, 추도 문화도 함께 변하고 있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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