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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황제의 세가지 질문

2019.06.02 10:30

라만섭 조회 수:79

황제의 세 가지 질문

 

최근 우연한 기회에 틱낫한(Thich Nhat Hanh)이라는 월남의 불교 선승이 쓴 단행본(140페이지))을 읽게 됐다. 원래는 그가 가까운 친지에게 보낸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역자가 편집 번역하여 1975년에 출간한 것인데, 이외로 큰 반향을 일으켜 그 당시의 베스트 쎌러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The Miracle of Mindfulness’인데, ‘마음 챙김의 기적이라고 한국말로 번역돼 있는 사실을 뒤 늦게 알게 됐다.

 

참선(Zen Meditation)의 여러 안내서 가운데서도, 이 책은 영어권 독자들로 부터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고 마티 루터 킹 목사는 생전에 낫한 스님을 살아 있는 유일한 부처라고 칭송하면서, 그를 노벨 평화상후보로 적극 추천한바 있다. 참선을 일상으로 실천하는 것도 아닌 필자가 굳이 이 책의 독후감을 쓰게 된 이유는, 마치 피어오르는 연꽃을 연상케 하는 저자의 꾸밈없는 자세에서 받은 감흥 탓도 있겠지만, 실은 그가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교훈에 관한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데에 기인한다. 이야기의 요지는 대충 아래와 같다.

 

황제가 포고문을 발포했다. 세 가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데 만족스러운 대답에는 상응한 포상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 이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일을 실행에 옮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는 어제인가 둘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모든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은 무엇인가. 갖가지의 수많은 응답이 답지 하였으나 모두가 황제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실망한 황제는 항간에 신통하다고 소문이 나있는 은자(Hermit)에게 묻기로 하였다. 깊은 산속에 은둔 하고 있는 그 은자는 산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고 들었다. 호위병들을 산 밑에서 대기 하도록 조치하고 농부로 위장한 황제는 홀로 산속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한참을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어떤 허름한 헛간 앞에 이르러, 조그만 공터를 삽으로 파고 있는, 한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과 마주쳤다. 지나는 나그네에게 눈인사를 하는 둥 하고는 계속해서 삽질을 하는 노인은 매우 지쳐 있었다. 황제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노인장 피곤해 보이는데 제가 좀 도와 드리지오.” 노인은 고맙다면서 삽을 건네주고는 땅위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지금 찾고 있는 은자가 바로 앞에 있는 이 노인임을 직감한 황제는 슬그머니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노인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느 듯 해는 산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노인장의 대답을 구하러 먼 길을 찾아왔소이다. 만약 대답을 줄 수 없다면 그렇다고 일러 주시오. 나도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겠소.”

 

그때 노인이 머리를 들더니 나그네에게 말했다. “저기서 누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소?” 황제가 머리를 돌려 보니 멀리 숲속에서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피가 흘러내리는 배를 움켜쥔 채 정신없이 뛰어 나오던 그는 황제 앞에서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워낙 상처가 치명적이어서 생명이 위독해 보였다. 피 묻은 옷을 벗긴 황제는 그의 하복부와 가슴팍의 깊은 상처를 보고는 얼른 자신의 옷을 벗어 상처를 감쌌다. 황제의 옷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삽시간에 붉게 물들고 말았다. 그는 옷을 빨아 상처에 동여매고 지혈에 최선을 다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든가,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의식이 돌아 왔는지 부상자가 손을 휘저으며 물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을 고비는 이제 넘긴 듯 보였다. 황제는 얼른 냇가로 내려가 물 한 동이를 떠왔다. 물 한 사발을 벌컥 벌컥 단숨에 들이켜고 그는 가쁜 숨을 내 쉬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해는 완전히 서산에 지고 깊은 산속의 밤공기는 매섭게 파고 들었다. 노인과 황제는 부상자를 헛간에 있는 노인의 잠자리에 눕히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느 듯 황제는 문가에 기댄 채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튼 날 해가 뜨자 황제의 얼굴을 보고 부상자는 매우 혼란스러워 했으나 곧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제발 용서 해 주십시오” ‘당신이 무슨 용서받을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요?“ ”저는 폐하를 압니다. 저는 폐하의 원수 입니다. 지난 전쟁에 동생을 잃고 그의 전 재산마저 몽땅 잃었지오. 오늘 폐하가 여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복수 차 폐하를 시해하려 왔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황제의 행차가 없길래 잠복장소에서 빠져 내려오던 중 폐하의 병사에게 들켜서 큰 부상을 입게 됐습니다. 만일 제가 여기서 폐하를 못 만났다면 저는 출혈 과다로 인해 지금쯤 죽었을 것입니다. 나는 폐하를 죽이려 했지만 폐하는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남은 생을 폐하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는 기뻤다. 그리고는 다시금 은자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물었다. 파종을 하던 일손을 멈추고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이미 답을 얻었소” “어떻게요?” 그의 긴 설명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당신이 어제 연민의 정으로 나의 밭일을 돕지 않았다면, 그 시간쯤에 아마도 당신은 그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러니까 어저께 당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때는 당신이 땅을 파고 있을 때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노인) 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돕는 일이었던 것이오. 그러고 난 다음 또 가장 중요한 때는 부상자의 상처를 돌보고 있을 때이었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고 그러면 둘이 화해할 기회도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오. 따라서 그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상자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의 상처에 응급처치를 가하는 일이었던 것이오. 항상 명심할 것은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사실 이오

 

위에서 보는 톨스토이의 고전적 교훈은, 오늘날 널리 회자되고 있는 평범한 진리에 불과하다. 흔히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 대한 봉사를 논하고 평화를 운운한다. 여기 자신의 가족이나 부모 또는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도외시한 사회봉사가 있다고 할 때, 거기에서 어떤 지속가능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낫한 스님은 톨스토이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평소 마음 챙김(mindfulness)”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마음 챙김의 기적이란 그의 책을 통하여 힘주어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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