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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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에는 출구가 필요하다

2018.01.23 13:05

라만섭 조회 수:56

()에는 출구가 필요하다

 

언젠가 어떤 외국인(이름을 기억하지 못함)이 중앙일보에 게재한 한국의 첫인상에 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그의 시선을 자극한 것이 한국특유의 지형과 나무들 이었다고 한다. 아담하고 운치 있는 궁궐(경복궁)과 그 뒤에 보이는 산들의 독특한 모습에서도 신기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때의 느낌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멀리서 보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모습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는 산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와 그 특이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산속의 바위와 암석들도 그렇거니와 특히 그들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들의 독특한 형태에 감탄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 산야의 어떤 모습이 외국인에게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일까.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물론 외국에도 소나무는 있는데 그들은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위로 드높이 뻗으며 자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는 소나무는 위로 뻗는가 싶다가 옆으로 나오고 또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각별하게 보인다고 한다. 올라가다가 구부러졌다가 기울어지고 휘어지다가 다시 위로 솟는 특이한 모양새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모진 환경 탓으로 그는 내다본다. 토양이 굳고 강한 비바람에 시달리는 결과라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소나무들을 수출해서 다른 나라의 땅에 심으면 곧게 뻗으며 자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같은 나무 일지라도 자라는 토양이 부드럽고 바람이 모질지 않으면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의 의견이다.

 

그는 나아가서 이를 ()의 정서라고 해석한다. 가혹한 시련과 환경적 역경을 이겨내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현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한의 정서를 이어받은 한국 산야의 독특함이 그의 눈에 특이한 아름다움으로 비쳐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끊임없는 외우내환에 시달리며 힘겹게 생존을 이어 가며 주변국가의 침략과 자연재해를 극복해온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부패한 탐관오리의 착취에 시달리면서, 밖으로 할퀴고 안으로 헐뜯기는 고달픈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고향의 산천은 이 같은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온 말없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하지 않을는지.

 

역술인들은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와 운명간의 상관관계를 믿는다. 유사한 논리로 세계지도에 나타나는 조선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모양새를 놓고, 그들은 어떤 운명적 관계를 추출해낼 수 있을까 하고 한번 상상해 본다. 상식에서 벗어난 불합리한 발상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대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세아대륙 끝자락에 맹장처럼 붙어서 서북으로는 대륙세력, 동남으로는 해양세력의 틈바귀에 끼어 출구가 먹혀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하여 유럽대륙의 한복판에 위치한 스위스는 일찍이 1815년 빠리협정에 근거하여 영세중립을 선포한 이래 한 번도 전쟁에 휩쓸린 적이 없는 대표적인 중립국이다. 그밖에 유럽국가중에서 헌법으로 중립을 명시한 나라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스웨덴, 아일랜드, 핀랜드 등이 있다. 중미의 코스타리카와 중앙아세아의 터크메니스탄도 중립을 선언한 국가라고 한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주변의 힘센 열강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지리적 특징 이라고 하겠다. 중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 열강들의 인정이 전제된 국제적공조의 틀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동아시아에는 아직 중립을 내외에 선포한 나라가 없다고 한다.

 

우리 조선민족은 한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굳이 먼 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구한말을 거치면서 나라 없는 설음도 맛보았고 국토분단의 슬픔과 골육상쟁의 6.25전쟁을 겪으며 민족분열 이라는 한 맺힌 고통을 씹고 있다. 갈라진 양쪽은 이념갈등으로 철천지원수처럼 대치를 계속 하면서 위태로운 평행선을 걷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작금의 현실을 놓고 볼 때면 통일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통일은 언젠가는 이루어야할 민족적 과제이다. 민족의 한을 언제까지나 안고갈 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시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한을 안으로 삭이면 병이 된다. 출구를 찾아서 한을 밖으로 내보내야 탈이 없다.

 

한 맺힌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이 통일된 영세중립국이 되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뜬금없이 웬 중립국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이 길이 남과 북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현실적 출구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맺힌 한을 풀어나갈 출구를 찾아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데 지혜를 모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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