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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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계약 효도

2018.01.05 10:29

라만섭 조회 수:78

 

계약 효도

 

6.25 사변 직후 한국에서의 일이다. 당시에는 대학은 졸업했어도 일자리가 없어 직장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던 시절이었다. 한 신문사의 신규 기자 채용 시험에 삼강오륜에 대하여 묻는 문제가 있었다. 정답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기상천외의 황당한 답안도 나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삼강은 한강, 압록강, 두만강을 일컬음이고, 오륜은 자동차의 네 바퀴에 스페어 타이어를 합한 것 이라는 웃지 못 할 답이 있었다는 내용의 신문 칼럼을 읽은 생각이 난다.

 

유교사상의 압축 이라고 할 삼강오륜에서 특히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윤리강령인 셈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저기 저기 저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지어 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어릴 적에 많이 듣던 정서 어린 고전 시 이다. 효사상을 이보다 더 정감 있게 나타낼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은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동방예의지국의 긍지를 자랑 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효도도 계약서를 작성해 가면서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 전 한국의 대법원이 불효자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돌려주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는 신문 보도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에 한동안 젖어 있었다. 가끔 재벌가의 부자지간 재산분쟁이 법정으로 비화되는 사례를 보긴 하였지만, 이렇듯 나이든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세태에 한 가닥의 환멸마저 느끼게 된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윤리적 측면을 지탱해 오던 효도 정신마저 사라져 가는 현실을 목격 하면서 그저 씁쓸한 느낌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한 푼도 주지 않으면 맞아 죽고, 조금만 주면 무서워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를 넘어서, 현실 세태를 실감 나게 풍자해 주고 있다고 본다. 요즈음 한국의 법률 사무소는 효도계약서를 작성 하노라고 바쁘고, 국회 에는 불효 방지법이라는 것이 상정돼 있는 상태라고 한다. 법을 만들어 가면서 까지 효도사상을 유지해 보겠다는 당국의 고육지책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이긴 하지만 어쩐지 찜찜한 기분 이다. 효도를 법적. 제도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설령 법적인 요건을 갖춘 계약효도행위를 주고받는다 하드라도, 이미 그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천륜의 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계약이라는 학술 용어는 옛날 학창시절에 듣던 사회 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 16~17세기에 죤., 쟝 쟈크 르쏘 등이 주창)을 상기케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부의 권한은, ‘사회계약에 의하여, 국민이 정부에 맡긴 것이라는 주장이다. ‘계약 결혼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오는 터이다. 일정한 조건하에 결혼하기로 합의한 남녀가 계약서에 서명한 후 동거에 들어간다는 개념이다. 계약결혼의 대표적인 예찬론자는 단연 프랑스의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이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일은, 실존주의 작가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와의 계약결혼이었다고 고백할 정도 이다. 그 외에도 계약결혼의 예는 종종 있어 온다.

 

하지만 계약효도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원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주고받기(Give and Take)식 상거래 개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물교환 시절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생활양식 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효도에도 주고받기씩 계약행위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족 사이에서 사랑의 정신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무너져가는 효 사상을 언제까지 법으로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륜을 중요시 하는 인성교육 체계의 확립이 요구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 할 수 있는 마지막 유산을 지킬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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