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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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감사하며 산다

2018.03.29 13:03

라만섭 조회 수:4

감사 하며 산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린 시절 예배당에서 듣던 말이다. 그때는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화자가 위선자나 이중인격자로 비쳐지기도 하였다. 나 자신(Ego)은 죽이고 제3자 위주로 살아가기를 종용하는 인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나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 말의 타당성에 의심을 품어 왔으며, 현실적 보편성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냥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생리반응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나타내던 때 였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기복을 다스려 나가는데 있어서 온갖 견디기 힘든 역경에도 그저 만족하고 감사 하라는 것인데, 감성과 감정의 영향을 받는 평범한 인간에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지금 당장 내가 힘든데 누구한테 감사 한단 말인가. ()을 빙자한 위선이 아닌지. 솔직함이 결여된 헛소리가 아닌지. 기계의 부품 다르듯 개성을 무시한 발상으로 들렸다. 반발심의 근원에는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상충에서 오는 불협화음(이율배반)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 하는 마음(Gratitude)이 곧 나 자신을 행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미처 몰랐다. 근시안적인 안목이 나의 의식세계를 지배해 왔던 것이다. 나 자신이 행복해 지기 원한다면, 먼저 현실에 만족하는 방법을 배워서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긍정은 다른 긍정을 불러들이고 부정은 또 다른 부정을 가져온다는 것을.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면 인생이 행복해 진다는 것을. 불만으로 가득한 짜증스러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인생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마련인 것을. 여기에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 하는 이유가 있다. ‘은 선택을 우리 인간에게 맡겼다고 말한다. 일찍이 의 창조 과정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솔직히 나는 그 결과(선택)에 만족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설정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타의(他意)-신의 뜻-에 의하여 이미 마련돼 있는 것이라는 논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선택은 인간의 몫이고 따라서 행불행은 그 결과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실 세계는 냉엄하다. 고통에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실과 당위(當爲)간의 조정(Reconciliation)이 힘들다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원수를 사랑하는 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랑과 응징, 감사와 복수 사이를 넘나들면서 적당히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치는 이중 잣대(Double-Standard)가 일상에서 당연시 되는 현실에서, 좋은 일에 감사하기란 쉬워도 궂은일에 감사 하기란 힘들다. 치매나 반신불수로 침상에 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까. 모든 것을 다 잃은 실직자 가장이, 배고파서 울부짖는 애들의 모습을 앞에 놓고도 감사의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아직 거기까지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뭐라 확답을 할 입장이 못 된다.

하지만 석양을 등지고 황혼의 언덕을 넘어 가면서 나는 감사하는 쪽을 택하겠다. 알 듯 모를 듯 불확실한 장밋빛 약속을 믿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확실한 유한(有限)의 증거를 내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즐비하다. 우선 건강하여 감사 하고 내 옆을 지켜주는 마누라가 있어 감사 하다. 틈나는 대로 글 쓸 수 있어 감사하고 책과 음악이 함께해 주어서 감사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산과 바다 하늘과 들에서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자연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축복위에 더하여 앞으로도 한결같은 축복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황혼 길을 찾아 나서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면서 만족 하는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생활철학을 몸에 익히자. 지나친 욕심(노욕)에서 비롯되는 불평불만과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Ingratitude)은 파탄으로 가는 길일뿐이다.

 

 

 

 

201411월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