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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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신기루

2018.03.26 12:50

라만섭 조회 수:7

신기루

어릴 적 학교 선생님에게서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가치라고 배웠다. 그러면서 진리에 대한 한없는 경외심을 가졌었다. 한때 심미주의(審美主義 Aestheticism)에 심취하여 영원한 미 의 상징으로 희랍의 석고 조각상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영원 불변의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를 흠모 할 때도 있었다. 죽어서도 변치 않는 영원한 지고 의 사랑을 꿈꾸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 없는 영생을 갈구 하면서 그 해답을 종교에서 찾아 왔다. 창조주(기독교)는 우주를 창조 하고 그 안의 만물을 관장하는 영원한 절대자이므로, 누구나 그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베드로 후서 3:8에 나오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one day is with the Lord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라는 구절도 시간의 영원성을 함축하는 기도교 정신의 한 단면이 아니겠나 하고 생각 하게 된다. 나약한 인간의 정신 세계에 있어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 하는 절대자가 필요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우주 삼라만상은 끊임 없이 변한다. 우리의 인생 또한 유한한 시간적 제약 속에서 맴돈다. 역사는 만물의 유한성을 증거 하고 있으며 과학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형이상학적으로 운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일상 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현실 감각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형이하학적인 관점에서 말할 뿐이다.

비영구성(Impermanence)이라는 개념에 관하여, 이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사실이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그러면서 생로병사의 윤회 과정은, 궁극적으로 열반(Nirvana)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과연 영원(Eternity) 으로의 길이 열린다는 것인가. 이에 대한 상쾌한 해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분명하고 확인 가능(Verifiable)한 것은, 모든 존재는 끊임 없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속의 만물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쇠퇴(Decay)는 모든 구성물의 속성이다. 존재하는 모든것은 흐름(Flux)과 생성의 연속이다. 삶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순간 순간이 이여지면서 흘러가며 하나의 지속적인 흐름을 이루어 간다.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그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이순간의 강물은 다음 순간의 그것이 아니다. 이는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다. 순간 순간을 거치면서 항상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사람의 삶을 놓고 볼때, 전생애를 통하여 그가 똑 같은 사람 이였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그는 끊임 없이 변해 왔다. 매 순간 마다 삶과 죽음의 과정을 반복해 온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 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세포분렬(Cell Division)이 일생 동안 몸안에서 끊임없이 행해 진다는 것을 안다. 우리 몸에는 약 60조에 달하는 세포가 있는데, 1초에 50만개가 죽고 생겨 나고 하는 재생과정을 끊임 없이 반복해 나간다고 한다. 낡은 세포는 죽고 대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항상 같은 사람 이라고 말 할 수가 없다. 누구나 변하게 되어 있고 계속 변해 간다. 이렇게 볼 때, 비 영구성이라는 개념은 현실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결코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에는, 과거의 원인 행위에 의한 결과적 산물인 현재 만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것이 다 하나의 현존하는 실제라고 착각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볼때,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는 각각 다른 국면 들이라는 것이다. 소년이 성장하여 청년이 됐을 때와 노년에 접어 들었을 때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씨가 나무를 가져 오지만 나무 그 자체는 아니며, 열매는 나무에서 나는 것이지만 열매가 곧 나무는 아닌 것처럼.

인생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고 비영구성의 고리로 부터의 해방을 얻기 위하여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깊이 깨닫고 바르게 이해 함으로써,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 감성과 감정을 더불어 가지고 태어난 속세의 인간에게 있어 현세의 모든 것이 다 일시적인 허상에 지나지 않는 개시허망(皆是虛妄)에 그친다고 한다면, 인생 자체가 너무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행복한 허상이 너무나 많이 존재 한다. 영원한 가치, 영원한 이상, 영원한 진리, 영원한 사랑, 영원한 삶, 영원한 전통, 영원한 민족. 국가관, 영원한 아름다움 등등의 영원한 꿈을 간직한채, 그 꿈을 실현 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애쓰며 살아 가는 인간이 아닌가.

잡힐듯 말듯 끝까지 애태우는 (tantalizing) 꿈을 현실화 해보려고 헤매이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가게 되 는 것이 인생 인가 보다. 장래에 대하여 품는 이상적인 꿈의 실현은 결국 신기루(Mirage, 蜃氣樓)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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