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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결론은 이마 나와 있다

2018.03.30 04:47

라만섭 조회 수:9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서로 양보를 모르는 갈등의 불씨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출발은 나는 옳고 합리적인데, 너는 틀렸고 불합리 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정치나 종교에서 보이는 개인적 입장(취향)의 차이도 알고 보면, 입맛(口味)과 같은 감성 이어서 그 이유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즉 식성이나 미각처럼, 선천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한 연구에 의하면, 보수성향의 사람은 세균 감염이나 소음과 같은 외부로 부터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진보 성향의 사람은 보다 개방적이고 모험적으로 대처 한다고 한다. 왜 보수와 진보의 대화는 어려운가. 결론부터 말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상대방과의 논의 과정은 형식적인 절차 일뿐,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감성(직관)이 이성(도덕 기준)에 앞서는 예를 흔히 본다. 이때 이성은 명분(이유,구실)을 정당화 하는데 동원될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뇌를 관찰해 보면, 우선 결론부터 도출해낸 다음에 이유(구실)를 찾노라고 그들의 뇌는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왜 저쪽은 이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하고 탄식해 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의 감성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진리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독선은, 개인이나 집단을 특정 가치관에 묶어놓고 눈을 멀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옳다고 하는 믿음은, 위선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궁극적으로 항상 진리를 말하고 정의 편에 있다. 따라서 내가 필요에 의해서 사실을 부인 하고 거짓을 고하는 행위가 있더라도, 이는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믿는 진리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될 수 없으며, 반대자에게는 오직 파멸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맹신자(극렬분자)들이 자기 정당화를 꾀할 때 즐겨 쓰는 자가변(自家辯)이다. 자기의 행동을 진리에 충실한 입장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의 편에 있으니까, 상대방은 불의의 편일 수밖에 없다. 나는 불의에 의해 핍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사를 관찰 하다 보면, 간단한 비판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정신 착란적 멘탈리티(Mentality)의 소유자가 돼버린다. 종교적인 문제에 이르러서는 심각성이 더해진다. 비판이 허락 되지 않는 곳에는, 진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맹신은 비문명적이다. 어떠한 일에도 반론은 허용돼야 한다. 모든 주장이나 이론은 자유로운 비판을 거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거듭 보편타당성이 입증 될 수 있어야 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미 도출된 결론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거기에 맞추어 수정을 가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 여러 다른 주장과 의견을 수렴 하는 거듭된 객관적 검증 과정에서, 하나의 보편타당성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응분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2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