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시집 <떠나도 지키리> 평론.유한근

2009.11.15 13:13

서용덕 조회 수:693 추천:79


평설/ 서용덕의 시 세계
                

남루한 영혼에 청결과 역동적 힘을 주는 시


유 한 근
문학평론가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가장 한국적인 시인
서용덕 시인은 모국권 밖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모국어 안에서 살아가는 시인이다. 알래스카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한 시인이다. 그래서 그러한지 그에게서는 한국의 여타 시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냄새나 색깔이 없다. 모국 시의 모방이 없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꿈꾸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개성적인 세계를 끌어내는 특별한 시인이다.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그는 코올리지의 말을 떠올린다. “시인『새뮤얼 코올리지』는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며,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다.’ 하여 ‘화가는 말이 필요 없어서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말을 아끼기 때문에 詩를 쓴다.’ 하여 詩가 곧 말이라서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세상 보는 법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곧 깊은 생각이며 내면의 싸움이었다.”는 토로가 그것이다.  “시인은 말을 아끼기 때문에 詩를 쓴다.”와 “세상 보는 법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 그리고 “내면의 싸움”이라는 말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라는 코올리지의 말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시는 그림인데, 소리가 있는 혹은 말이 있는 그림이며, 그 그림은 곧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로 그림 그리듯이 그리는 이미지, 그것을 중시하는 것이 시(詩)라는 정의와 다르지 않다.
그것을 서용덕 시인은 ‘절제된 말’ ‘다른 시각으로 보는 세상’ 그리고 ‘내면의 싸움’ 또는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은밀한 그림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시는 은밀한 내면의 그 무엇을 절제된 언어와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는 같은 글에서 시인 자신은 “외로움을 삭이는데 익숙해졌다고 할까, 대자연이나 사물에 친해졌다는 것인가, 아무튼 혼자 있으면 홀가분하게 편안해진다.” 토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그려내려는 내면 깊숙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인가?
나는 서용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평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소리꾼의 역할을 시인의 역할로 서용덕 시인은 동일시하는 것일까? 자신을 시인으로서 ‘영혼의 소리꾼’이기를 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결론을 지금으로서 유보해도 좋겠지만(다음 작품을 좀 더 접한 뒤에 내려도 좋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이 영혼의 탐색자이기를 원하며, 청결한 영혼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좀 더 나아가서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육자배기에 능한 지혜로운 소리꾼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서용덕 시인의 천상 한국적인 서정시인이다. 그리고 자신의 안과 밖을 두루두루 살필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는 시인이기도 하며, 소리꾼이 되기를 원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제2시집 해설에서>

그는 분명 ‘영혼의 소리꾼’이기를 원한다. 자신의 영혼을 탐색하여 한국적인 정서를 끌어내려는 ‘한국적인 서정시인’이다. 김소월 이나 박목월 시인 같은 서정시인이 아니라, 코올로지의 이미지를 간과하지 않는 서정시인이다. 내면의 한국적인 정서 뿐만 아니라 내면의 신비한 세계를 탐색하는 시인이다. 한국적인 인식과 영혼을 가진 시인이다.  

하늘일까
구름일까
바람일까

생각일까!
소리일까!
느낌일까!

보이면서 안보이고
있다가도 없고
비어있으면서 가득차고
나갔다가 다시 찾아오는

눈 뜨면 하늘에서
눈 감으면 가슴에서
뼈가 있는데도 뼈가 없고
죽어 있었는데 살아나 있다.  
          -시 <마음 2> 전문

위의 시에서 처럼 “보이면서 안보이고/있다가도 없고/비어있으면서 가득 차고/나갔다가 다시 찾아오는” 마음을 가진 한국 시인이다. 의미를 확대해서 이해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세계,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의식을 가진 시인이다. 비어있는 것이 꽉 찬 것이며, 꽉 찬 것이 비어있는 것이라는 동양적 의식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처럼 “뼈가 있는데도 뼈가 없고/죽어 있었는데 살아나 있다” 의식을 지닌 시인이다. 서양의 어느 시인이 이러한 의식을 갖고 있을까? 미국의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시인이 이러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도 놀랄 것이다. ‘하늘, 구름. 바람.’이 ‘생각, 소리, 느낌’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이 미국 땅에 어디 있을까?    

멀리 보이는 것도
자세히 보이는 것이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가슴으로 보이는 것
눈감아도 보이는 것

안 밖으로
멀리 보이고
가까이 보이는

희미한 물체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기다림은
마음으로 보는 시력이었다.
             -시 <시력> 전문

위의 시처럼 ‘그리움’과 ‘사랑’을 멀리 모이는 것, 자세히 보이는 것. 가슴과 눈 감아야 보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 이 시를 한국적인 시인 아니며 누가 쓸 수 있을까? 멀고 가까운 것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며, 기다림을 마음으로 보는 ‘시력’으로 인식하는 시인. 그 시인이 서용덕 시인이다. 이 경지는 동양적인 탁월한 인식 없지는 깨달을 수 없는 경지이다.

  현실 인식과 초월 의지
시는 비언어적인 마음을 바탕에서 해서 시작된다. 사물이나 사상(事象)은 언어 이전의 것이며 비언어적인 것, 즉 침묵 속에서 드러난다. 시의 마음은 비언어화의 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마음을 비우는 정화 상태는 언표(言表)의 과정 또는 언어화 과정을 거친 후 얻게 된다. 언어화를 통한 침묵의 깨우침, 언어화 과정을 통한 비언어화 상태에서의 심적인 깨달음의 결과로 시가 나온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 혹은 하나의 관념 즉 위의 시에서처럼 그리움과 사랑과 같은 것도 언어화를 통해서, 또는 시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그 본체를 깨닫게 된다. ‘기다림을 마음으로 보는 시력’을 갖게 되는 것도 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시인은 명상하고 마음을 꿰뚫어 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하늘보다 드높은
품은 뜻이 넓다든가
티끌만한 믿음이라도 가졌던가

바다보다 넓어
텅 빈 가슴으로 망망한가
베푸는 사랑이 크다던가

높고 넓은 천지에
마음과 가슴은  
티끌에 불과하다만

부족한 믿음과 사랑을
가득 채워주는 바다와 하늘같이
은혜로 주시는 것은
어디에 있을까?
        시 <어디에 있을까?> 전문

이 시처럼 높은 하늘, 넓은 바다가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은혜보다 티끌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종교적인 힘, 혹은 초월적인 안목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이 시를 신앙 고백적인 시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 종교적인 시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시를 시인의 초월적인 인식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시인은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다. 세상의 온갖 것에 묻혀서 사는 시인이지만,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일탈하여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이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이 땅의 표상물인 ‘건물’에 대해서 서용덕 시인은 연작시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연작시 <건물>은 부제 ‘병원’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학교, 백화점, 아파트, 법원, 도서관, 종탑으로 끝난다. 이 모든 글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표상물들이다.

하지만 쉬운 길이 어려운 것은 세상 등용문이 높기 때문에 뛰어야 오를 수 있고 가진 학과   뛰어 넘는 높은 벽을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이 건물로 뛰어 넘어주지 않아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탑이며 넘어야 할 벽.
                -시 <건물2-학교>에서

  시인은 이 시에서 누구도 대신하여 넘어주지 않는 학교. 스스로 인생에서 만들어 가야 하는 탑이며, 넘어야 할 벽으로 학교를 인식한다. 초월해야 할 벽으로 인식한다.  

가진 것 없는 사람마저
강한 것에 중독되어  
진열장의 명품으로
새 것만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하나 바꾸지 못하는 것.
          -시 <건물3-백화점>에서

인간들이 진열장의 명품에 중독되어, 마음 하나 바꾸지 못하는 건물로 시인은 백화점을 인식한다. 마음 바꾸기를 위해 초월해야 하는 것을 건물로 표상하고 있다.

간편한 주거 공간 높아진 기둥은
독을 품은 가시처럼 세워져 있었다.
         -시 <건물4 -아파트>에서

독을 품은 가시처럼 기둥으로 세워진 아파트. 그 속에 갇혀 사는 인간 군상으로 시인은 건물을 인식한다. 시인은 편안해야 할 아파트를 독 가시로부터 자유로워야할 초월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죄악이 바람같이 지나도
붙잡아 집을 짓는 것이
일순간에 갇혀버린 건물
마음으로 짖는 죄
생각으로 짓는 죄
머리 위 새가 되어 날아 간다
      - 시<건물5 –법원>에서

위의 시에서, 시인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로 갇힌 건물로 법원을 인식한다. 마음과 생각의 자유를 초월의 대상으로 법원을 인식한다. 이러한 모든 건물을, 시인은 아래의 시에서 그 초월의 기미를 찾는다.

탑에 매달린 종을 쳐대듯
아픈 만큼 울려 퍼지는 소리
간절히 두 손 모우는 마음
가슴을 열어 높은 탑으로 세운다.
        -시 <건물7 -종탑>에서

종탑의 종소리를 “아픈 만큼 울려 퍼지는 소리/간절히 두 손 모우는 마음”으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종탑을 높이 세워야 한다고 기도하며 노래 한다. 하늘을 향해 초월의 의지를 높게 세워야 함을 인식하고 있는 시이다. 초월은 현실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속에서 그 의지가 생긴다. 현실을 직관하고, 그 본체로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 방법을 사고해 낼 수 없다. 시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현실의 인식 과정이 언어화 과정에서 나오며, 그 과정을 통해서 초월의 의지가 하나의 세계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그 세계가 종교관에 의해서 형성 될 수도 있고, 거기에 시의 형상화 과정을 통해서 구축된 의미 공간이 덧붙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고향 회귀와 시인의 발칙한 힘
이 시집 <떠나도 지키리>에서도 시인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홀로 서기를 다짐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향, 모국을 떠난 시인의 시심(詩心)은 고향에 대한 회귀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원천이 되어 샘물 솟듯이 시로 형상화됨은 물론이다.        

정든 곳 떠난 지 오래 되어도
늘 상 떠나지 않은 고향은
철따라 논밭 누비며  
뿌린 땀이 삭지 않은 것이
억세게 자란 씨앗으로 붙들고
지금 내 몸 편한 것 게딱지 졌어도
고급문화 생활을 모르며
소박한 풍물에 만족할 줄 알고
여린 마음조차 아름다운 것은
흔들리는 호롱불도 밝아서
책 보다가 가려우면 이螭를 잡다가
구멍 난 문풍지 바람에 춥다고
이불 속에 파 묻혀 곪아 떨어진 잠
아침이면 상쾌한 바람으로 살찐
그을린 얼굴이 팽팽하던 젊음이
밤이 대낮 같이 밝아 있어도
어둠 속에 파 묻혀 잠들어 가는
여문 씨앗으로 갔다가
떨어진 씨앗으로 찾아오는 고향.
              -시 <떨어진 씨앗> 전문

이 시 <떨어진 씨앗>은 서용덕 시인의 존재 인식을 ‘씨앗’으로 표상하고 있는 시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나는 시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존재를 “어둠 속에 파묻혀 잠들어 가는/여문 씨앗” 혹은 ‘떨어진 씨앗으로 고향 찾아가는 씨앗’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이다. 시 <홀로서기>에서 처럼 “허허벌판”에서 “떠나는 것이 /찾아가는 것이라고/마음이 모”으고 “가진 세월만큼 자라난/뿌리 없는 사랑을/소용없음 이제 알고//한 알로 심어지는 씨앗”으로 “생 살점 도려내어/새로이 뿌리내릴/홀로 떠나는 길이었”음을(시 <홀로서기>에서) 인식하며 홀로서기를 다짐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지친 듯이 서산으로 걸터앉아
바랜 빛마저 식어 가는데
그 모습이 길쭉하게 늘어져
긴 세월 거둔 허물 덩어리
종일토록 오랜 시간 달구어
살아있는 나이로 헤아려 보고

스스로 잘할 수 있었던 일보다
하지 못할 일들이 목매인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시 <그림자 1>전문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는 너였고/너는 나였다//몸도 마음도 //뜻대로 모양대로/우리는 하나다/신神이였”음도, 시 <그림자2>에서 깨닫는다.
하지만, 서용덕 시인은 시<바람 빠진 공>에서 “바람 빠진 공을 가진/어머니 젖가슴은 물렁물렁 하다/어머니는 자식들의 공놀이만 본다.”에서 남루하지만 고향과도 같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옹기 물동이 머리에 이고
우물길을 걸어오시는 얼굴에는
물이 출렁거려 넘친 물방울이
눈물처럼 흐르는데

한눈팔지 않는 걸음걸음은
험한 길 숱한 세월을 따라
물이 가득 담긴 그릇 같은
자식들이 물동이가 되었던 것

밤 낮 숨소리조차 숨죽이는
몰입의 정신집중이 가슴팍에서
어머니의 숨소리는
우주의 호흡으로 아끼지 않고

어머니는 언제나
사랑의 호흡이 잔잔한
강물이라도 머리에 이고
출렁거리는 하늘을 길어 채워
목마른 자식들이 커가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어 마신다.
                    - 시 <어머니의 숨소리> 전문

어머니는 고향이다. 어머니의 숨소리는 사랑의 호흡이며, 고향의 숨소리이다. 기존의 시가 어머니를 촉각으로, 시각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지만, 서용덕 시인은 어머니를 후각과 청각이미지로 그린다. 어머니의 호흡은 우주의 호흡이며, 자연의 호흡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대신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 시를 간과하지 못하게 한다.

기러기 돌아오듯
꽃대 올라서며
여린 이파리보다 꽃이 먼저라 피어나고
  
동풍 불러 강물을 풀어서
연어 떼 모천으로 찾아들면
기러기마저 급하게도 알을 품어댄다
  
어둠속 긴긴 겨울 헤맨
허기진 발걸음이 질질대던
앙상한 뼈 가죽 황소 사슴은
햇빛 앉은자리 찾아 뜯으며
얼룩덜룩 털갈이를 하고나면
  
시린 태양은 만년설에 빛 부셔
한 눈 팔다 갈 길 잃어  
서산이 멀기만 하여라.
                          -시<알래스카의 봄> 전문

알래스카의 봄이 가슴 속에 그려지는 감각적인 시이다. 알래스카는 시인이 사는 현실적인 체험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그는 ‘모천’과 ‘서산’이라는 시어로 고향을 떠올린다. 이국적인 풍경과 정취 속에서 시인은 원체험 공간인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리움을 절창으로 노래한다. 분명 그는 천상 서정시인일 수밖에 없는 감성을 지니고 있어 시<그림자 1>와 <텅 빈자리> 등 일련의 시로 독자를 감동케 한다. “ 지친 듯이 서산으로 걸터앉아/바랜 빛마저 식어 가는데/그 모습이 길쭉하게 늘어져//긴 세월 거둔 허물 덩어리 /종일토록 오랜 시간 달구어/살아있는 나이로 헤아려 보고//스스로 잘할 수 있었던 일보다 /하지 못할 일들이 목매인/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그 모습이 내 모습이던가.” (시 <그림자 1>전문)를 읊조리게 한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창밖이었나
어쩌다가 마주친 눈빛으로
한 몸 되어 같은 길을 따르다가
어쩌다가 떠나는 당신은
먼저라야 합니까
가고 없는 빈자리 가득한
가슴으로 흐르는 빗속을
아 ~ 아
저 하늘에 망울진 눈물이었나.
                      -시 <텅 빈자리>에서

텅 빈자리를  암송하게 한다.
문학은 슬프다. 시는 더욱 더 슬프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시가 개털에서 풍기는 악취 같은 영혼 때문에 슬프고, 잊혀진 사람의 외로움 같아 슬프고, 초로의 남자 어깨같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때문에 슬프다. 그런 시를 서용덕 시인은 발칙하게도 아름답게 만들고, 노마드(Nomad)인 우리의 남루한 영혼을 위로해 준다. 우리의 영혼이 청결하고 역동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시를 보여준다. 그것이 서용덕 시인의 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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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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