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종소리

2009.12.03 02:18

서용덕 조회 수:824 추천:100



종소리 종소리
                                                        



12월 동지 끝으로 기울어진 해 길이가 날마다 짧아지더니, 쌀쌀한 바람은 빛 고운 단풍잎을 싹쓸이 훑어갔다. 그것도 기다릴 것 없이 북극에서 밀려오는 매운바람은 사정없이 서릿 구름으로 깔아댄다. 무거운 잿빛 하늘에서는 간밤에 한바탕 분칠을 하였던지 천지가 온통 하얗다.

내일은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거두어들인 알곡을 감사드리는 추수 감사절이다.
나는 오늘부터 12월 24일까지 한 달 동안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원으로 자원했다. .
출근 첫 날 모금원의 작업 내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작업장인 구세군에서 지정한 장소는 초대형 슈퍼마켓이었다.
덩치 큰 마켓 자동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안전 걸대에 빨간 냄비를 걸어서 바싹 마른 장작이라는 종을 흔들어 불을 지피는 일이다.
이 때 나는 솥 걸이에 빨간 냄비를 걸어 놓았듯이, 퉁퉁한 입술을 길게 잡아 늘려 귀에다 걸어 놓는다. 늘여  뺀 입을 귀에 걸어 놓은 모습은, 내가 전에 하던 일이 아닌 일이라서 좀처럼 어색하였다.
맡겨진 일을 시작한다. 종은 흔들린 만큼 땡그랑 딸랑, 땡그랑 딸랑 울린다. 종소리가 불이되어 타오른다.
냄비는 한푼 두푼으로 모아지는 뜨거운 불길로 달구어 질 때, 불을 지피는 소리꾼이 되어 소리를 한다.
‘God Bless You’ ‘Thank You sir’ ‘Thank You madam’ ‘Happy holiday’
로 외치며, 하던 소리를 종소리 장단을 맞추듯이 계속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디서든 구세군의 빨간 냄비를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본체만체 외면하였다. 빨간 냄비를 지나치면서 구리 동전하나 아까워 떨어뜨리지 못하고 피하였다.
그러던 내가 책임진 종소리를 울리고 마감 시간이 다 되면, 빨간 냄비는 불덩이로 펄펄 끓을 것이다.  뜨겁게 끓는 냄비는 소외되고 외롭고 배고픈 사람들을 찾아 간다.  모두에게 한 조각의 빵이 되고, 한 아름의 웃음꽃이 되고, 기쁨이 되고, 마음이 아픈 고통의 자리에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
이렇게 한참을 쳐대는 종소리가 깨우는 영혼을 처음으로 알 것 같다.
처음으로 종소리가 들렸다. 아니 직접 피부로 느껴졌다.
사랑은 종소리에서 있었다. 그 소리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그 소리로 허공으로 퍼져 나갈 때 잠자는 영혼을 불러 깨운다.
사랑은 춥고 외롭고 배고플 때 간절하랴.

빨간 냄비가 끓는 일은, 춥고 시린 겨울 한 철을 종소리로 소리 내어 울리고 있다.
하나님! 종치는 일을 하는 것도 부족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종을 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이 종소리가  어떤 사람에게 크게 들리고 어떤 영혼에게 안 들리는지요.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 세상은  종소리가 들리지 않게 파묻어 버리는 소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지나는 어떤 사람들이 종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발걸음을 붙잡아 줍니다. 닫힌 마음이 열렸나 봅니다.
닫힌 지갑을 열어 얼굴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백발노인도  종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걸음을 멍춥니다.
그런데 젊은 아낙은 미안한 것인지 어색한 표정으로 빨간 냄비를 비켜 갑니다.
지금까지 나도 저 아낙의 모습으로 보인 것이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귀에 걸린 입이 덜커덩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감추려 떨어뜨렸습니다. 왜 이런 마음까지도 추한 몰골이 됩니까.
다 함께 나누는 사랑을 전하려는 종소리도 갑자기 깨지는 소리로 들립니다.

나는 저들을 맞이하는지, 그들이 나를 맞이하는지, 눈빛으로  말하는  소리는 종소리였는데, 종을 치는 이유는  하늘의 소리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원으로 기도하는 소리입니다.
축복과 은총을 베푸는 소리입니다.
내가 흔들어 울리는 종소리를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면 다 들을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릴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고 가슴에 담아 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누구 한사람 두둑한 지갑을 다 털어 넣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지폐 한 장, 동전 몇 닢으로 행세하는 폼 잡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들이 많은데 인색 하는 것조차 잘난 체를 합니다. 오직 마음이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들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종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가. 봅니다.
그런데 종소리를 비켜가는 사람들 보다, 종소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욱 반가웠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따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나누는 사람보다 감추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중에 간혹 주머니를 더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마 열리는 마음을 피하지 않으려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종소리가 부담스러운 것이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지는 것도 부끄러운가. 봅니다. 마켓으로 들어올 때나, 나갈 때에 들리는 종소리가 무거운 마음을 울려 주었지만 장바구니에도 가득 넘치게 담아 있는가. 봅니다.

종을 치면서 구세군의 빨간 냄비에 나누는 천사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근처에서 구걸하던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였습니다. 알래스카의 겨울 노숙자는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팽개친 막장 인생이지만, 차갑게 언 손에 꼬낏한 지폐 한 장은 그가 구걸한 것입니다. 그것을 아깝지 않은 듯이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내 가슴이 찢어지듯 찡하게 울립니다.  
그 때 곁눈으로 훔쳐 보았던 지나던 청년이 문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서 찾아와 같은 마음을 함께 하였습니다.
한 무리로 지나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던지 모두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바탕 불꽃이 크게 일어나 뜨거워졌습니다.
나는 뜨거운 불길같이 갑자기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종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종을 치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많이 봅니다.
그것도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푸짐한 식탁으로 온 가족이 모여 감사드리는 즐거운 일로 마켓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입니다.
장바구니 가득한 행복을 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표정들이 밝아 보입니다. 어느 한사람도 아픈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천태만상의 사람들 중에 곱게 차려 입은 중년의 부부가 들어 왔습니다. 남편이 뒷주머니 지갑을 꺼내 큰 액수를 집어내니,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의 눈이 확 뒤집어 집니다. 그렇게 많은 액수로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았다는 부인의 놀라움인가, 아니면 많은 액수가 아깝다듯 놀라는 표정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두 살 박이 어린아이 손에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다 쥐어주며 빨간 냄비에 넣어보라는 것을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벌어진 입이 다물지 못해  박장대소하며 행복해합니다. 아이는 평생 동안 부모님이 가르쳐준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이 고운사람, 향기가 풍기는 사람, 구린내가 고약한 사람들이
똑같은 종소리가 각각 다르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종이 울리면 마음이 울린다. 마음이 울린 아름다운 사람들이
빨간 냄비에 마음을 담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끓는 냄비에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지나는 사람은
마음이 열리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모르는 사람들일까.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을 치는 일은 천하의 이목집중이었다.
가만히 보니 종은 사람이 치는데, 하나님은 듣는 일만 하였다.
종소리. 종소리, 하나는 사람이 들었고 하나는 하나님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땅으로 떨어진 빈 종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끝)
  

Good News 편집인
cdavidkim@hotmail.com   (Dec/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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