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012.07.13 04:03

서용덕 조회 수:509 추천:90

등산 앵커리지 동쪽으로 긴 산맥은 승천하려던 용이 서리 맞은 기상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많은 산봉우리에 만년설은 아니지만 9월이면 첫눈으로 분칠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 7월까지 골짜기마다 잔설을 안고 있다. 시내 어디서든지 보아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산이지만, 산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언감생심 등산은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몇 해 전, 하지가 지난 6월 마지막 주일날이었다.친교 시간을 마친 무료한 시간에 커피만 홀짝거리고 있는데, 또래의 최 집사가 등산을 하자고 하길레 처음 듣는 일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따라가기로 하였다. 등산 준비는 운동화만 갈아 신으면 된단다. 산은 자동차로 5분을 달려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 주택가를 끼고 산 중턱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내려보니 10대 시절 고향에서 등산이라 하던 경험과는 별다른 흥미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등산이라 하니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잘 다듬어 놓은 등산로를 오르다 보니 산은 1.2.3단 구분되어 있다. 1단은 야산 같아 봉오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를 빙 둘러서 오솔길로 만들어져 놓았고, 2단은 가파른 곳에 침목으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앞장 서 가던 최 집사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산봉우리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민 생활에서 처음으로 산에 오르는 일이라 정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용기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싸움질하다가 결국은 산 중간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최 집사는 어느새 봉우리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가깝게만 보이는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중도 포기하니 비로소 야산하나 오르지 못하는 체력이 검증되었다. 봉우리를 정복한 최 집사의 탄탄한 건강을 감탄하면서 작아지는 자존심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최 에게 언젠가는 내가 기필코 저 봉우리를 정복한다고 장담 아닌 약속으로 자존심을 내세운다. 내려오는 길에는 다리 힘이 빠졌던지 축 늘어져 흔들흔들 거렸다. 그러나 해마다 오르지 못한 저 산봉우리를 볼 때마다 기어이 오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면서 어느덧 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쳐 버렸다.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봄부터 벼르고 있었다. 알래스카는 3월 춘분이 지나면 날이 풀리는 징조는 하루에 3분씩 일조 시간이 늘어나면서 따뜻해진다. 5월이면 밤 10에 해가 지면서 하루 이틀 사이로 싹이 자라고 꽃이 핀다. 그리고 6월 하지를 분기점으로 백야 현상이다. 이때에는 초목들이 온종일 받아먹는 일조량으로 미친 듯이 웃자라는 무성한 녹음이 첩첩으로 밀림이 된다. 또 하나는 6천m 이상 고산만을 찾아다니는 세계 각국의 최고 등반 원정대가 북미 최고봉인 만년설을 자랑하는 데날리 산 (멕켄리 20,320ft.6,194m)정복하려 다 모이는 마지막 날 절기이다. 나는 6월 말 오후 3시 아무런 장비(물병조차)없이 가벼운 운동복으로 혼자 집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등산은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었다. 완만한 1단계의 산은 준비 운동하듯이 올라 섯지만, 침목 깐 2단계 산은 가파르다. 얼굴은 후끈거리며 등허리에 땀이 흐르고 허파까지 숨이 차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냥 입만 벌리고 헐 떡 헐떡거린다. 2단 봉우리도 올라서지 못하는 체력의 한계점이었다. 이제는 죽어도 이 산에서 죽는다는 정신력으로 버티는 의지로 지친 육신을 끌고 올라가야만 했다. 몇 해 전에 포기한 2단 봉우리에 어기 적으로 이르렀다. 한 눈 팔지 않고 곧바로 3단계 등반 코스를 올라섰다. 올라갈수록 바윗돌이다. 일정한 길이 아니다.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봉우리는 머리 위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가 몇 걸음 앞인데 온몸이 지쳐서 휴대 전화기 충전량이 바닥친 것 같이 정신력마저 빠져 버린다.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시간이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 몽롱하니 어지럽다. 신발코에 겨우 걸쳐진 여지(餘地)는 뽀쪽한 바윗돌을 붙잡은 양손에 목숨이 붙어 있다. 만에 하나 바윗돌에 걸친 여지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끝나버리는 목숨 아닌가. 죽을 힘으로 바윗돌을 껴안듯이 바싹 붙어 기어오른다. 숨소리도 없는 힘까지 손가락에 다 모아진 것이다. 이러한 힘은 목숨이 일각에 달려있는 위기 때에만 발동하는 초능력의 힘일 것이다. 드디어 올라섰다. 정복이다. 성공이다 하는 환희보다는 가슴에 가득 찬 뜨거운 입김만 휴~유하고 길게 품어져 나온다. 바람이 새파랗게 차갑다. 펄펄 달아온 몸이 어느 사이로 식어 버린다. 건너편에는 더 높은 산봉우리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저 산에도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여기까지 죽을 힘을 다해 올라온 것에 비하면 또 다른 희망처럼 보인다. 산 이름은(Flattop 플랫탑) 상고머리 산이라 하며, 해발 (3.510ft,1.070m)이였다 주차장에서 오른 등정은 어림셈으로 (2.000ft,610m)가 되었을까. 그렇다.'산은 올라가 봐야 알고,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음식은 먹어 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안다'고 했다. 이런 일들을 삶에서 체험하지 않고 생트집만 잡으려고 하는 나는 무엇일까. 삶은 등산으로 깨달게하는 특별한 가르침이라면, 등산은 삶의 가장 짧은 축소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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