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톤 비치 풍경

2005.11.23 15:56

정찬열 조회 수:365 추천:26

                            
                                                        
" 배구네트를 합한 길이가  2마일이라고요?"
"그렇다니까, 키로로 치면 3키로메터가 넘는다고요."
매년 메모리얼 대회 연휴면 이곳 헌팅톤비치 시에서 '비치발리볼 대회'가 열린다. 비치발리볼이란 한 팀 2명으로 구성된 약식 배구대회로 모래사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다. 금요일 오후부터 대회 예선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대회를 치르기 위해 세워진 배구장의 네트길이를 합하면 2마일이 넘을 거라는 얘기였다. 도대체 배구장이 몇 개나 될까 하는 호기심도 일고 바닷가에 가보고 싶기도 했는데, 친구가 모처럼 배구대회 구경이나 한 번 하자고 해서 다음날 비치에 나가기로 했다.  
헌팅톤 비치는 이곳 오렌지카운티 태평양 연안에 있는 도시다. 북쪽으론 무역항으로 한국에도 꽤 알려진 롱비치항구가 있고 남쪽으로 가면 뉴포트비치를 거쳐 센디에고 항구에 이른다. 필자의 집에서 자동차로 3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일요일 아침, 우리가 도착했을 땐 비치는 벌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 줄에 세 경기장씩 길게 늘어선 배구장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회 스폰서인 닛산자동차 로고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대회장에 들어갔다. 날씨도 뜨겁지만 선수나 관중의 열기도 그에 못지 않다.  수영복만 입은 남녀 선수들이 배구공을 치고 받으며 모래밭에 나 뒹군다. 관중들도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신문, 라디오, TV기자들이 취재에 열심이다. 응원석 한쪽에 어린아이 세 명이 아빠와 함께 앉아있다. 한 아이는 대회엔 관심이 없는 양 모래를 퍼담으며 놀고 있고 다른 아이는 독서에 열중이다.  
경기장을 빠져나와 친구부부와 함께 맨발로 모래밭을 걷기 시작했다. 비치파라솔을 펴고 독서를 하며 휴일을 즐기고 있는 모습, 수영복차림으로 누워 선텐을 즐기는 여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돛단배 한 척이 지나간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모래성을 쌓고 있다. 저렇게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청년들이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다. 파도 끝자락을 잡아타고 물결과 함께 밀려오다 솟구쳤던 파도와 함께 부서지고 있다.
헌팅톤 비치 18마일 모래사장을 따라 자전거용 도로가 이어진다. 그 길 위로 사람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자전거로 달린다. 2인용 자전거를 연인이 같이 타고 가는 모습도 보이고, 아빠와 어린 딸이 함께 타는 광경도 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 엄마는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멀리 연을 날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장애인이 특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놓인 다리인 피어에 올라갔다. 이 피어는 500미터쯤 된다. 피어가 시작되는 곳에 이 공사를 위해 돈을 내 놓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10만 달러, 5만 달러, 천 달러 등, 액수에 따라 적혀있다. 이렇게 애써 번 돈을 공공복리를 위해 아낌없이 기증하는 전통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미국의 힘이 아닐까. 피어 곳곳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피어 끝 자그마한 식당에선 조깅복 차림의 젊은 연인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웰빙(WELL BEING) 바람이 불고있다고 한다. 웰빙이란 무엇일까.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사람과 자연이 친화를 이루어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바닷가 모래밭에서 하루를 즐기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웰빙을 요란스럽게 주창하지 않으면서도 웰빙을 만끽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맨발로 모래밭을 걸었지만 발가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놓은 모래사장. 휴지조각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공중도덕과 질서의식. 이런 것들을 보면서 웰빙은 개인의 욕심만으로 충족되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생활환경이 개선 발전되면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월 2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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