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에, 아버지를 생각한다

2005.11.23 15:57

정찬열 조회 수:462 추천:26



6월 셋째 일요일은 아버지날이다.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이곳 미국에선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하고 따로 아버지날을 두고 있다. 아버지날을 맞아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회상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새삼스레 아버지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자기를 키워준 것이 8할은 바람이라 했지만, 돌이켜보면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키워주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좋은 점은 물론, 싫었던 모습까지도 쏙 빼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닮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흠칫 놀라게 되고, 다시금 나를 추스르곤 한다.
교단에서 평생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금은 고향 산자락에 묻히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말없이 일러주신 그 가르침이 내 삶 속에 녹아 있음을 나는 안다.
  초등학교 시절, 무슨 잘못을 했었을까. 아버지가 화를 내며 집 뒤 대밭에 가서 매를 만들어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방안에 회초리가 보였다. 아무소리 못하고 낭창낭창한 시누대를 잘라 회초리를 만들어 왔다. 종아리를 걷고 매를 맞았다. 그 후, 왜 방에 회초리가 있는데 새로 매를 만들어 오라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아마 매를 새로 만들어 오는 동안 당신도 화를 삭이시고 나에게도 반성할 기회를 주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했었다. 그 기억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나는 화가 날 땐 가능하면 아이들을 꾸중하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연유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얻은 회초리 사건의 교훈, 무의식중에 자리잡은 그 기억이 내가 아이들을 꾸중할 때 적용 되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놀라게 된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글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즐기시던,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인생의 멋을 알던 우리 아버지.  생시의 아버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의 회초리가 그립다.  
우리 어릴 적엔 아버지의 기침소리 한 번으로도 온 가족이 긴장하곤 했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시대는 대부분의 집에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했고, 아버지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직장에 다니던 중 어린 두 딸이 재능이 있어 보여 이민을 왔다. 자그마한 마켓을 인수하여 운영했다. 강도에게 죽을 고비를 세 번씩이나 넘기면서 열심히 일했다. 일에 묻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세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쉰 살이 훌쩍 넘어있더란다. 두 딸은 잘 키웠지만, 어찌된 일인지 딸들이 엄마하곤 얘기가 잘 통하고 샤핑도 다니며 궁짝이 잘 맞는데, 아버지인 자기는 모르는 사이 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혼신을 다해 희생을 하면서도 예전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데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많은 아버지들이 영어에 주눅이 들고, 일터에서 기가 막히고, 때론 아이들이나 아내에게까지 홀대받으며 기죽어 살아가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이 아버지들의 권위를 추락시키고있다. 어깨가 쳐지고 고개 숙인 아버지가 늘어간다. 이러다가 아버지 무용론이 대두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아버지가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사소하고 작은 말 한마디 자잘한 행동하나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소중함을 심어 준다. 가정에서 인정받는 아버지는 밖에서도 가슴을 편다.
아버지는 내게 어떤 분인가, 남편은 나에게 있어 누구인가.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푸르른 유월, 아버지날을 맞아.
<6월 16일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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