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웬 욕심이 그리도 많으냐"

2006.08.29 02:33

정찬열 조회 수:312 추천:21

    헬렌켈러를 기억하시는지요. 아시다시피 그녀는 볼 수 없고 듣지도 못하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이겨낸 사람입니다. 그녀가 쓴 “The Story of My Life"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헬렌켈러가 쓴 “ 내가 3일 동안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일 나에게 3일 동안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무엇보다 우선 나를 가르쳐주신 셜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첫날은 온종일 셜리반 선생님과 하루를 보내겠다. 그리고 다음날은 햇빛 쏟아지는 푸르름 넘치는 숲 속을 거닐며 나무들이나 이름 없는 들꽃들, 그리고 미풍에 흔들리는 갈대들과 하루를 보내야겠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종일토록 거닐며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지막 지는 해가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저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 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3일 동안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훨씬 긴 글을 내용만 간추려 보았습니다만, 단 3일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한 이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만, 볼 수 있는 날이 단 3일 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심정을 다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간절한 얘기를 최근에 어느 목사님으로 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이 분이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촌을 방문했답니다. 나병에 걸리면 눈이 멀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곳엔 장님 환자들만 따로 수용하는 병실이 있었답니다. 그분들을 위해 설교를 해달라는 병원 측의 요청으로 설교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한 늙은 장님이 바지가랑이를 꼭 붙들며 애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단 하루라도 좋으니 내가 다시 눈을 떠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니 한 순간만이라도요 네...”
  저는 시몬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입니다. 지난 밤,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를 잘 보살펴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리고 온 가족 건강 지켜주신 것을 비롯한 몇 가지 일들에 대해 감사 드렸습니다. 그리고 욕심이 발동하여 필요한 만큼 돈도 많이 벌게 해 주십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아,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 너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마.” “아이쿠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대신, 한 가지만 너로부터 가져가야 겠구나”. 나는 영문을 모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님.”하고 물었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 가운데 한 가지를 포기한다면, 내가 대신 너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이고 주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마자 “ 이놈아, 웬 욕심이 그리도 많으냐”하시며 그분께서 제 머리를 쥐어박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헬렌켈러의 글이 머리에 남아있어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나보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주신 것을 온전히 감사드리지 못하고 자꾸만 무얼 달라고 떼쓰는 나를 그분이 꿈속에서 나무라셨다고 생각하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생시인양 말씀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 이놈아, 웬 욕심이 그리도 많으냐”.   <2006년 8월 30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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