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방문, 낯선 풍경 몇 가지

2006.05.22 10:55

정찬열 조회 수:606 추천:18

  지난 달, 고향 방문길에 해남 땅끝을 다녀왔다. 땅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는 포근했다. 안개 속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였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더니 거기에 땅끝을 알리는 토말비가 있었다. 반도가 바다와 만나는 마지막 장소이자 북쪽을 향한 기점이다.
  땅끝을 출발하여 갯가 애돌아 휘어진 길따라 자동차로 서서히 움직이는데 마늘 밭이 끝없이 펼쳐있다. 모처럼 오월의 고향을 방문하면서 보고 싶었던 보리밭, 바람이 불때마다 등성이를 따라 파도로 출렁이던 그 푸르디 푸른 보리밭은 보이지 않고 마늘밭들이 언덕 넘어로 아득히 이어지고 있었다. 보리는 햇빛에 익어가는데 마늘은 바람에 여물까.짭조롬한 갯바람이 마늘밭을 흔들어대고 있다.
  차창을 열어 갯내음을 맡으며 서행하는데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정겨운 소리가 들렸다. 무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 차를 세우고 ‘개굴 개굴’ 오랫동안 잊었던 그 소리를 한참동안 들었다. ‘이랴 이^랴’ 소를 몰아 써레로 논 고르는 소리, ‘어-어루 상사디여’ 모를 심으며 합창하던 농요, 풍년을 기약하는 꽹가리 소리들이 개구리 울음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듯 싶었다.  
  길가 도처에 여관이나 호텔 간판이 보였다. 큰 도시야 그거려니 했지만 산자수명한 명승 처처는 물론이려니와 논두렁 밭고랑 사이에도 덩그러니 호텔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다. 함께 갔던 친구에게 왠 모텔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물었더니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고, 돈벌이가 되니까 저렇게 많은 모텔들이 들어서는 게 아니겠냐고 했다.
  저렇게 호텔이 많다는 것은 밤낮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호텔에서 ‘러브’를 하는데 출산율은 세계 최저라고 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출산 장려금을 주면서까지 애를 낳으라고 장려해도 인구는 늘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많은 모텔들은 다 무엇에 쓰일까.  
  전남대학교 부근의 친구집을 가는 길에, 한 모텔 옥상에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먼데서도 눈에 쉽게 띄었다. 모텔 선전에 여신상이 이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래도 되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풍경이 외국인의 모습에 어떻게 비추일까 걱정이 되었고, 학문의 전당인 대학 가까이 저런 게 버젓이 세워져 있어도 아무도 지적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알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뉴욕만 연안의 리버티섬에 있는 거대한 여신상이다. 오른손에 횃불을 켜들고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전쟁 지원을 기념하여, 미국독립 100주년인 1886년에 기증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동상이다. 이런 의미있는 동상이 모텔 손님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니. 상아탑인 대학과 대비되는 모텔,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은 어울리지 않은 한장의 그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가든’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가서 보니 숯불에 갈비를 구워먹는 곳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발관 사인 위에 스포츠 마사지라는 간판이 보이기에 무엇 하는 곳인지 물었더니 마사지를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끝말을 얼버무린다. 무언가 다른 설명이 필요한 곳인가 싶어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다. 밖에서 오래 살아온 탓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모습들이 많았다.
  땅끝에서 보았던 남해안 풍광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 품속같은 고향을 헤치던 낯선 풍경 몇 가지가 아직도 맘에 걸린다.  <2006년 5월 24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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